뉴야야 크레스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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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와 재위



1. 개요[편집]


Newaya Krestos (그우즈어: ንዋየ ክርስቶስ), 제호: Sayf Ar'ed[1]

뉴이야 크레스토스는 1344년 1372년까지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였으며, 정복군주 암다 세욘 1세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들로 뉴야야 마리암다위트가 있는데, 둘 모두 에티오피아의 황제가 된다.


2. 생애와 재위[편집]


그의 생년은 불명이고 재위 이전의 행적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아버지 암다 세욘의 재위기에 아달 및 모라 술탄국과 전쟁을 벌일 때 참전했다고 한다. 이걸 고려하면 적어도 1320년대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황제로 즉위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기독교를 믿고 있었으나 부족적 관습에 따라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는데, 즉위 직후 아버지가 재위하던 시절 교회와의 갈등으로 쫒겨난 사제들을 다시 복권하고 일부일처제를 준수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역시 얼마 안가 세 명의 아내를 들였고, 이에 항의하는 사제들과 수도자를 추방해버렸다.

선대 시절 복속시켰던 이파트 술탄국의 술탄 알리 이븐 사바르 앗 딘 1세[2]는 암다 세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황제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력상으로 에티오피아에 비해 한참 딸렸던 데다가 계속된 전쟁과 파괴에 신물을 느낀 이파트 백성들이 전쟁에 반감을 느껴 협조하지 않으면서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황제는 그를 폐위한 후 투옥하고는 자말 앗 딘의 아들 아흐마드를 술탄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8년 후 알리는 감옥에서 탈출해 아흐마드를 폐위한 후 복위에 성공했고, 얼마 후 사망해 아들 하크 앗 딘 2세에게 술탄위를 물려주었다. 하크 앗 딘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즉위에 반발하는 삼촌들과 친척들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해 크게 이겼고, 그들이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하크 앗 딘이 반란을 진압해 삼촌을 투옥하는 것이 먼저였다. 결국 황제는 하크 앗 딘을 이파트 술탄이자 지배자로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이파트의 국력이 많이 소모되어 더이상 주변 이슬람 국가들 및 주변 영토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암다 세욘의 치세 때처럼 이슬람 국가들이 연합군을 조직해 제국을 공격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재위 말기에 맘루크 술탄 알 살리가 이집트 콥트교회 총대주교 마크 4세를 투옥하자, 황제는 즉각 총대주교 석방을 요규하며 이집트 상인들을 투옥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진군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결국 총대주교는 석방되었고, 맘루크 술탄은 황제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해야 했다.

그의 통치 동안 제국은 세그레와 티그라이 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립할 수 있었고, 황제는 또한 여러 종교적 건축물을 짓는 등 교회의 보호자로서 황제의 영적 위치와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패자로서의 정치적 위치를 모두 사수하고 더욱 떨쳐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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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포의 칼'이라는 뜻이다. [2] 암다 세욘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참수된 사바르 앗 딘 1세의 아들로, 삼촌 자말 앗 단과 후임 나스르 앗 딘의 사망 이후 술탄위를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