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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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의사다.
2. 생애[편집]
1930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가난한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그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비까지 면제인 해양대를 가려고 했으나 선친의 권유로 서울대 의대를 진학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생했고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부산으로 피란 내려가 대학들이 공동으로 임시 설치한 '전시연합대학'에서 천막 수업을 들으며 의술을 익혔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해군 군의관 복무 시절 청각학 발상지로 알려진 미 필라델피아 해군병원에 유학한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각학 강의를 시작했다. 해군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강단에 선 그는 1995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40여년 동안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 등에 매진했다. 실제로 재직 당시 서울대병원에 국내 처음으로 난청진료실을 개설해 오늘날의 언어청각장애진료실로 발전시켰다. 그렇게 중이염 치료의 최고 명의로 발돋움했고 국내 청각학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대한청각학회 창립과 발기인 대표로 산파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라이온스 히어링 센터(Lions Hearing Center)를 설립하여 무의촌 진료와 청력개선 수술, 보청기 보급 등의 많은 봉사활동을 수행하는 등 진료 및 사회봉사에 역시도 헌신했다.
은퇴 이후에는 박윤형 순천향대 의대 석좌교수가 경기도립의료원장으로 있을 때 "요즘 젊은 의사들이 지방의료원에 오기를 꺼려 큰 걱정"이라고 하자 "그러면 내가 가서 도와주겠다"고 나서며 2005년부터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난청센터장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그의 건의로 경기도립의료원이 국내 처음으로 노인난청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3. 사망[편집]
2023년 2월 4일 오전 10시 38분 향년 92세로 사망했다.
4. 저서[편집]
- 이비인후과학 (두경부외과)
- 이비인후과학:두경부외과학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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