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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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배우, 가수, 모델이다.
2. 활동[편집]
생후 8~9개월부터 아기 모델로 활동하며 아주 일찍부터 업계에 익숙해졌지만 본격적인 데뷔는 1991년, 4살의 나이에 드라마 《The Royal Family》에 힐러리 윈스턴 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글을 읽을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모든 대사를 통째로 암송하듯이 외웠고, 촬영장에서 대사를 빨리 외우고 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후일 성인이 되어 배우가 되었을 때도 이 기술이 유용했다고 한다.
1992년부터 2002년 동안 미국은 흑인 시트콤의 황금기를 지내고 있었는데 당시 아역배우였던 리베라는 이 황금기의 중심에 있었다.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 《베이워치》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했고, 여러 토크쇼에도 종종 출연했다. 당시에는 라틴계 배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못했지만, 리베라는 계속해서 인종차별에도 부딪히며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2009년부터 드라마 《글리》의 산타나 로페즈 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총괄제작을 맡은 라이언 머피의 전작 《닙턱》의 팬이었던 지라 '노래, 춤, 연기를 모두 할 줄 아는 배우'를 구한다는 소식에 오디션에 응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해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을 활용했고,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등을 보며 준비했다고 한다. 첫 번째 시즌을 함께 하며 라이언 머피는 리베라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계속해서 출연시키기 위해서 제작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 그리하여 시즌 2부터는 주역으로 올라가며 비중도 늘어갔으며, 극 중에서 산타나가 레즈비언으로 커밍하웃 하며 인기가 급격하게 늘었다.
3. 인기 및 위상[편집]
1990년대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아프로-라티노'의 아이콘이 되었고, 드라마 《글리》에서 레즈비언인 산타나 로페즈를 맡으며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 여러 기사에서 리베라를 유색인종 여성으로 인기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을 연기한 것을 두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소녀들을 위한 동성애자 아이콘'이라 묘사했다. 리베라도 이러한 시선을 잘 인식하고 있어서 2010년, 코믹콘에서 영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 《글리》에서 산타나 로페즈의 비중도 커지며, 서사도 쌓여감에 따라 리베라와 산타나를 긍정적으로 보는 목소리 역시 높아졌다. 미국의 프로듀서 Steven Canals는 리베라의 사망 이후 "그녀가 한 일은 믿을 수 없다. 블랙 푸에르토리코인인 리베라가 황금 시간대에 TV에서 아프로-라티노를 연기한 것에 대한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라며 극찬하는 한편, 추모에 동참했다. #나야 리베라의 산타나 로페즈는 주인공의 적수로 나오기 시작했다. 라틴계 여성들은 황금시간대 TV에서 늘 심술궂고, 지저분하고, 복합하게만 묘사되었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섹시하고, 너무 불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야는 이 모든 걸 부수고 관객들에게 복잡하면서도 기묘한 흑인 푸에르토리코 여성을 선사했다. 나야는 산타나에게 (다른 배역들과) 동등한 단단함과 나약함을 불어넣었고, 산타나가 레즈비언이 되는 순간 나야도 영웅이 되었다. 나야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그릇의 역할을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프리카-라틴계들이 TV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표현되게 만들었다.
산타나처럼 나야는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우리 글리 팬들에게 인종, 계급, 젠더 정체성, 성적취향에 관계없이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녀는 우리 모든 아프로-라티노 창작자들에게 진실되고 당당한 우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캐릭터를 만들도록 조용히 영감을 주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난 계속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고마워요, 나야. 당신은 정말 대단한 선물이었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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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망[편집]
2020년 7월 8일, 캘리포니아 벤추라 카운티에 있는 국립공원의 피루 호수에서 리베라와 4살 아들 조시는 바베큐 파티를 열 계획이었고, 오후 1시에 선착장을 떠나 4시에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실종신고가 접수되어 경찰에서 수색에 들어갔으나, 5시 경에 보트 위에서 홀로 구명조끼를 입고 잠이 든 조시만 발견 되었다. 조시의 증언에 따르면 함께 수영을 즐기고 있었으나 갑작스레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3]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리베라는 아들을 먼저 보트 위로 올려보내고 본인은 올라오지 못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조시는 또한 리베라의 요청에 따라 보트 위에서 밧줄을 던져 도우려 했다고 진술했으며, 당시 리베라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두 사람은 이 호수에서 오후에 흔히 보이는 이안류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리베라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다 쓴 바람에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들 조시가 발견되고, 경찰은 보트 위에서 성인의 구명조끼와 리베라의 신분증도 발견했으며, 선착장 옆 주차장에서는 리베라의 자가용도 발견되었다. 밤에는 너무 강한 바람 때문에 수색작업이 중단되었으며, 다음 날에 재개되었다. 호수가 너무 넓었던 탓에 일반 구조팀도 참가했으나 9일까지 진전이 없었고 결국 경찰은 구조가 아니라 시신 발견을 더 우선에 두고 CCTV 영상을 대중에 공개하고, 음파탐지기에 탐지견까지 동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색에 나섰다.
11일과 12일에는 리베라의 부모님, 동생, 전남편 라이언 도시, 친구들까지 나서서 수색에 들어갔지만 위험한 지형 때문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13일 오전 9시 30분경 한 잠수부에 의해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시신이 가라앉으며 물 속의 초목에 끼어있다가 떠오른 것으로 추정했으며, 사망증명서에 따르면 물에 빠진 지 몇 분 이내에 바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14일, 경찰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리베라의 체내에서 소량의 카페인과 암페타민, 다이아제팜이 발견되었지만 신체적인 능력에 영향을 줄 만큼 강한 것들이 아니었으며 알코올 역시 취할 정도가 아니라 극소량이었다고 한다.
장례식은 7월 24일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묘소는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잠들어 있는 할리우드 힐의 포리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에 마련되었다. 사망 이후 피루 호수는 1달간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되었고, 이후 다시 개방되었지만 앞으로 호수 내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리베라의 시신이 발견된 날이 드라마 《글리》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코리 몬티스의 기일이라 더욱 안타까움을 모았다. 또한 드라마에서 리베라가 몬티스를 위해 불렀던 추모곡인 'If I Die Young'의 조회수가 급증했으며, 리베라가 피쳐링으로 참여했던 2CELLOS의 곡 Supermassive Black Hole 역시 음원차트에서 갑작스레 순위가 증가했다.
여러 연예인들과 리베라가 참여하던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했다.
- 리베라가 캣우먼 역을 맡은 유작 배트맨: 롱 할로윈의 엔딩크레딧 전에 추모글이 나온다.
5. 사생활[편집]
5.1. 유년기[편집]
부모로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 독일인, 푸에르토리코인 혈통을 물려받았고, 2010년대에는 스스로를 'Afro-Latinx'라고 여겼다.
나야는 1남 2녀 중 장녀로 NFL 선수인 1990년생의 남동생 마이칼과 모델인 1994년생의 여동생 니카일라가 있다. 어린 시절 가정의 재정상황은 급격한 변동을 겪었기 때문에 어느 때는 굉장히 부유하게 살기도 했지만, 어느 때는 무척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 부유했던 시절에는 보트를 소유하여 자주 타기도 하고 즐기기도 했다는데, 그 중에서도 피루 호수에 나가는 것을 일종의 안식처럼 느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이 곳은 리베라가 사망한 곳이다.
생후 8~9개월 무렵부터 아기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업계에 아주 일찍부터 친숙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마이클 잭슨의 조카와 친구가 되어 두 번 정도 네버랜드에 방문해봤다고 한다.
다만 10대 시절의 학창생활은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노래에 재능이 있었지만 인종차별로 인해서 좌절했고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5.2. 연애사[편집]
타 모우리라는 배우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사귀었다. 두 사람은 리베라가 4살 때 찍은 광고현장에서 처음 만났으며, 후에 1990년대에 《스마트 가이》를 함께 찍으며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헤어진 이후에도 친구로 남았으며, 모우리의 가족들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함께 드라마 《글리》에 출연했던 마크 샐링과 사귀었다. 나중에 본인의 자서전에서 샐링이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를 회고하며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했다.
라이언 도시와는 2010년에 잠시 사귀었는데 커리어가 중단될 것을 우려하여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낙태했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도시에게는 알리지 않았으나, 2014년에 재결합하면서 알렸다고 한다.
2013년 4월, 가수 빅 션과 사귀기 시작하여 10월에 약혼까지 했지만, 2014년 4월 일방적 통보를 당해 헤어졌다. 자서전에 따르면 스마리아나 슈만데(Smariana Schmande)와 라임이 맞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환승이별을 당했다고 한다.
헤어진 이후 빅 션에게 자신에 관해서는 곡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빅 션은 오히려 Dark Sky Paradise에 디스곡 I Don't Fuck With You을 수록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에 리베라는 2018년 립싱크배틀에 출연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영상
빅 션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전 연인이었던 라이언 도시와 재결합했고 2014년 7월 19일에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5년 2월, 첫 아이를 임신 중임을 밝혔고, 같은 해 9월 17일에 아들 조시 홀리스를 출산했다. 조시는 스페인어와 영어 모두를 구사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스페인인이라 여긴다고 한다.
2016년 10월, 도시와 별거를 시작한 끝에 11월에는 이혼을 신청했으며, 양육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도 있었지만 결국 2018년 1월, 양측 다 단독양육권을 포기하고 공동양육권에 합의했다. 그러다 2020년 3월, 리베라에게 우선 양육권이 제공되고, 도시는 교섭권을 갖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이혼 후에는 2020년, 은퇴한 축구선수 저메인 존스와 잠시 사귄 것 외에는 연인이 없었다.
5.3. 종교[편집]
자서전에서 평생 기독교인이었으며, 어머니가 특히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에 10대 시절에 리베라와 남동생은 가스펠 뮤직 외에 다른 음악은 들을 수 없는 정도였다고 한다.
드라마 《글리》에서 레즈비언인 산타나 로페즈 역을 맡았을 때 리베라의 어머니는 전혀 우려하지 않았고, 리베라는 이를 두고 본인의 어머니는 "일방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분이며, 가장 멋진 분"이라고 표현했다. #
6. 출연작[편집]
6.1. 영화[편집]
6.2. TV[편집]
6.3. 뮤직비디오[편집]
7. 디스코그래피[편집]
7.1. 싱글[편집]
7.2. 글리[7][편집]
8. 수상 및 후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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