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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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忍訓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후삼국시대의 인물. 양주(良州)[1]의 세력가였다.


2. 생애[편집]


[2]

이 해(903년)에 양주수(良州帥) 김인훈(金忍訓)이 위급함을 알려오자, 궁예(弓裔)가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고려사》 권1 태조총서


세상에서 전하기를, “김인훈(金忍訓)이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서 벼슬이 문하좌시중에 이르렀는데, 그가 죽어서 사신(祠神)이 되었다.” 한다.

世傳金忍訓佐高麗太祖,位至門下左侍中,死爲祠神。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태조총서에 의하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903년 후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했다. 궁예왕건에게 명해서 김인훈을 구원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언제 출사했는지는 불명이나 고려 태조를 도와서 벼슬이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3]에 이르렀다고 하며, 사후 양주 지역의 성황신으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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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상남도 양산시에 해당된다.[2] 이 앞에는 왕건의 금성군 함락기사가 다뤄졌다.[3] 다만 문하시중이 설치된 시기는 태조 시기가 아닌 성종(고려) 시기인 982년이며 좌시중은 고려 말에 새로 생긴 관직이다. 아마 기록의 오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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