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대한제국)

덤프버전 :

김인수
金仁洙 | Виктор Ким


파일:김인수 장군.jpg

이름
金仁洙 | Виктор Ким
김인수 | 빅토르 김
출생
생년 미상
조선국 함경도
사망
1925년 1월
중화민국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조선 → [[대한제국|

대한제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제국"
행정구
]]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display: none; display: 러시아 제국"
행정구
]]
[1]
복무
대한제국군 (1896년 ~ 1904년)
러시아 제국군 (1904년 ~ 1917년)
러시아 백군 (1917년 ~ 1922년)
봉천군벌 (1922년 ~ 1925년)

최종 계급
소장
참전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적백내전
직봉전쟁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대한제국러시아 제국의 군인.

2. 생애[편집]


1896년 고종의 요청으로 조선에 입국한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통역을 맡았다. 러시아 외무부의 통역관이였다고 하며 고종의 명으로 대한제국군 시위대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김인수는 고종에 눈에 들었고 시종무관[2]으로 임명되었다. 1903년엔 대한제국군 참령[3]이였다.

이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로 탈출, 러시아군에 합류하였다. 대한제국군 시절보다 한 계급 낮은 러시아군 대위로 임명되었고 첩보원, 기병 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러일전쟁 종전 후에도 대한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러시아에 남았고 1908년에는 이범윤-이위종-최재형의 연해주 의병 창설에 관여하였다. 러시아 여인과 결혼 및 이르쿠츠크 정착은 이 시기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돈 카자크 사단 소속으로 1914-15년 바르샤바 전선에서 공훈을 세워 대령으로 진급. 성 게오르기 훈장을 포함한 다수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김인수는 고려인 통합 부대 창설을 1917년에 제안하지만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자 1918년 김인수는 백군 남러시아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1918-19년 기간에 백군 소속으로 싸웠지만 결국 백군이 패퇴하게 됨에 따라 1920년 1월에 배를 타고 터키로 망명하였다.

1920년 6월에서 터키에서 백군이 남아있는 극동 러시아로 향하지만 결국 백군은 1922년 최종적으로 극동에서마저 패퇴하였고, 김인수는 백군 잔당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다수의 백군 잔당들이 중국 군벌의 용병들이 된 것처럼, 1924년 김인수도 봉천군벌 장쭤린 휘하 러시아 여단 참모가 되었다. 장쭤린 휘하로 활동하던 도중 1925년 1월 사망한다.


3. 기타[편집]


  •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독립운동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았고 패배한 백군 출신이라 그런지 한국 내에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 현재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백군이 패배한 이후 그의 아내는 성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김인수가 남긴 사진들과 친필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2018년, KBS에서 김인수를 다룬 방송을 방영하였다.#

  • 대체역사 소설 조선, 혁명의 시대에 등장한다. 이 소설 속 대한제국은 러시아를 적대하기 때문에 러시아 측에서 파견한 스파이로 등장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06:04:02에 나무위키 김인수(대한제국)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중국적이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 국적은 사실상 소멸된 듯.[2] 현대로 치면 경호원.[3] 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