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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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의 영화배우. 청주 문화공단,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배우이다.
2. 생애[편집]
1923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6살에 아버지를 여의어 삼촌 집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이후 당시 청주상업학교(現 청주대성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했고 사무원으로 취업했다.
해방 전 청주시 문화공단에서 일본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했는데, 친하게 지낸 월북배우 박학[1] 과 훗날 장모와 사위 역할로 만나게 되는 월북배우 유경애[2] 와 서울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6.25 전쟁으로 조선인민군에 의해 석방되어 1950년 월북했다.
월북 이후 '소년 빨찌산' 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그러나 60년대까지 월북 동료 박학보다도 뜨지 못하다가 70년대 들어 뜨게 되는데[3] , <자랑끝에 있은일>, <안해의 일터> 등에 출연하다가 북한 코미디 영화의 대명사 우리집 문제에서 주인공 부부의 남편인 우편국장 역할을 맡아 성공했으며 이후 우리집 문제 시리즈에 전부 출연했다.
3. 출연작[편집]
- 소년 빨찌산(1950)
- 또 다시 전선으로(1952)
- 정찰병(1953)
- 흥부전(1963)
- 끝없어라 나의 희망(1964) - 세포위원장 역
- 새살림(1965) - 철수 역
- 영원히 이길에서(1966)
- 명랑한 무대(1966) - 의사 역
- 인민을 위한 숨은 투쟁(1968)
- 한 자위단원의 운명(1969)
- 보충병(1969)
- 자랑끝에 있은일(1970)
- 아내의 일터(1970) - 남새반장 역
- 사과 딸 때(1971)
- 공중 무대(1972)
- 우리집 문제(1973) - 우편국장 역
- 두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1974) - 지배인 역
- 도루메기소동(1974) - 부장 역
- 보람찬 우리 생활(1975) - 배우 아버지 역
- 대지에 뿌리내린다(1976) - 관리위원장 역
- 우리 선전원(1976) - 영만 역
- 북은 내가 치겠소(1977) - 만수 역
- 유원지의 하루(1978) - 아버지 역
- 우리 옆집 문제(1979) - 우편국장 역
- 우리 웃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아래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처가집 문제(1980) - 우편국장 역
- 우리 큰집 문제(1981) - 우편국장 역
- 우리 누이집 문제(1981) - 우편국장 역
- 우리 사돈집 문제(1982) - 우편국장 역
- 우리 작은집 문제(1982) - 우편국장 역
- 두 선장(1982) - 경윤 역
-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 우편국장 역
- 그가 받은 꽃다발(1984) - 만섭 역
- 은비녀(1985) - 빠찡꼬집 사장 역
- 봄날의 눈석이(1985) - 강득보 역
- 다시 시작된 우리집 문제(1986) - 우편국장 역
- 우리 삼촌집 문제(1988) - 우편국장 역
- 림꺽정 3부(1988) - 봉산리방 역
- 정다운 불빛(1989) - 상수 역
- 발동소리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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