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복 교수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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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수사
4. 판결
5.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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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5년 3월 14일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김성복(金成福)[1]이 금룡학원 재단[2] 이사장이었던 부친 김형진(金衡鎭)을 살해한 사건. 사건 경과


2. 상세[편집]


1995년 3월 14일 오후 11시 20분경 금룡학원 이사장 김형진은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덕암빌딩에 있는 자택에서 아내와 TV를 보다가 방으로 가 잠들었다. 약 7분 후 방에서 김형진의 신음소리가 들렸고 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목에 칼을 찔려 피를 흘리던 김형진의 모습을 보고 큰아들 김성복을 불러 김 이사장을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3. 수사[편집]


동맥을 예리하게 찔러 단번에 살해했을 정도로[3] 일반인이라면 할 수 없을 법한 전문적인 수법인 데다 숨진 김씨가 수백억에서 1천억에 이를 정도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청부살인 등 외부인의 소행으로 여겨져 초기 수사에 혼선이 빚어졌으나 물증이 연이어 발견되었고 결국 김성복은 이를 수상히 여긴 어머니의 설득으로 범행을 자백하였다. 기사 범행 동기는 금전적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성복은 사업 실패로 20억원 가량의 빚이 있었음에도 다시 사업을 준비하며 아버지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유산 상속에서 장남인 자신의 몫이 적다고 생각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김성복은 사건 발생 이틀 전부터 미리 범행 도구를 구입하고 예행연습을 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장례식에 참석하여 슬픔을 호소했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영상#1, #2

김성복은 4월 15일에 구속기소되었다. #


4. 판결[편집]


김성복은 1심에서는 1995년 10월 10일사형이 구형되었으나 10월 17일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

2심에서는 1996년 1월 25일에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2월 10일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

5월 12일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5. 이후[편집]


2016년 이후 덕원중학교, 덕원예술고등학교 등 금룡재단에 소속되어 있던 학교들이 부영재단으로 매각되면서 더 이상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이 되어 버렸다. 참고로 부영재단의 대표인 이중근은 다름아닌 덕원중학교와 덕원예고를 설립한 우진학원의 설립자였다. 근 30여년만에 설립자 품으로 돌아간 셈.

재단이 바뀐 이유도 좀 씁쓸하다. 이 사건 이후 그의 어머니가 학교 이사장을 맡았는데 이후에 건강이 많이 나빠진 데다 아들 김성복이 2016년에 가석방되면서 출소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아들에게 물려주기도 좀 그랬고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자니 학교 경영권을 놓고 다툼의 소지도 있었기 때문이라 덕원학원의 전신인 우진학원을 최초로 설립한 설립자 이중근에게 다시 경영권을 되팔게 되었다고 한다. 경영권을 넘긴 지 5개월 후에 전 이사장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중 김성복 교수는 76억 원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형제들이 반발해서 2018년에 또 갈등이 있었다는 기사가 났다. # 이후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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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6년 Y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웨스트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 테네시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한 뒤 1992년 3월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돼 1995년 당시 조교수로 승진한 상태였다.[2] 덕원중학교, 덕원예술고등학교 등을 보유한 재단이었다.[3] 해당 상처 이외에 외상은 전혀 없었고 저항의 흔적도 없었다. 한마디로 일격에 급소를 바로 찔렀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