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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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돈.jpg
출생
1887년 9월 12일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
사망
1950년?
사망지 미상
이명
김돈(金敦,金燉), 김재학(金在學), 김성속(金聲俗)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돈은 1887년 9월 12일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1925년 3월 10일 만주 영안현에서 김규식, 김좌진, 조성환, 현천묵 등과 함께 신민부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 심판부위원장 등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12월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개최된 신민부 총회에서 군사부(軍事部) 활동에 대한 비난으로 김좌진의 군정파(軍政派)와 최호(崔灝) 등의 민정파(民政派)로 분열되자, 신숙 등과 함께 민정파를 이끌면서 1928년 5월 하순 정의부(正義府)의 김동삼·현익철·최동오·김원식(金元植), 신민부의 이연·송상하·여호림, 참의부(參議府)의 심용준·김소하·임병무 등과 3부통일협의회(三府統一協議會)를 개최하고 재만동포의 자치문제와 혁명전선의 통합 등에 관해 논의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8년 6월에는 고려국민당(高麗國民黨)의 이름으로 군정파의 리더 김좌진과 정신을 성토하는 격문을 발표하였으며, 동년 11월 길림(吉林) 동북 대둔(大屯)에서 개최된 정의부·신민부·참의부 대표와 함께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하였고, 이듬해 4월 정의부·신민부·참의부를 통합하는 자치기관으로 국민부(國民府) 결성에 기여하고 교통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9월 길림(吉林)에서 이탁·최동오·현익철·유동열 등과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조선혁명당이 조직한 길흑특별위원회(吉黑特別委員會)의 특별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만주사변 이후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고, 이후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했으며, 8.15 광복 후인 1946년 1월에는 임시정부 비상정치회의 주비회의에 조선혁명당 정당대표로 참여했고, 같은해 2월에는 비상국민회의에 후생위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 12월부터 1948년 5월까지는 과도 임시정부의 관선 입법의원으로 활동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조선인민군에 의해 납북되었고, 추위와 굶주림 등에 의해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김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김돈의 차녀 김경필 씨는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아버지의 업적을 높이 평가, 건국훈장을 받게 돼 기쁩니다.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 하나로 독립운동을 하다 52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편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라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