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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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화이트헤드
Gustave Whitehead, Gustave Albin Whitehead

본명
구스타브 앨빈 바이스코프
Gustav Albin Weisskopf
출생
1874년 1월 1일
바이에른 왕국 로이터스하우젠
사망
1927년 10월 10일 (향년 53세)
코네티컷 브리지포트
가족
아버지 칼 바이스코프
어머니 바베타
배우자 루이스 튜바 화이트헤드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복수국적)[1]
직업
발명가
기계공
승무원[2]

1. 개요
2. 생애
3. 최초의 비행기 발명가?
4. 왜 알려지지 못했는가?
5. 기타


1. 개요[편집]


라이트 형제가 처음 1903년에 처음 시연했던 동력 비행기보다 무려 2년이나 앞선 1901년과 1902년에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장본인이다.

2. 생애[편집]


1874년 바이에른 왕국의 로이터스하우젠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비행에 관심이 많아 을 가지고 놀았다.[3]
어릴 때인 1886년, 1887년에 부모가 모두 별세했고 기계공으로 훈련을 받고 함부르크로 떠나 범선의 승무원이 되었다. 1년 후에는 다시 독일로 귀국해 가족과[4] 브라질로 여행을 떠나 비행에 대해 더 연구하였다.

1893년에 미국에 입국했고 자신의 성인 바이스코프를 화이트헤드로 바꿨다.[5] 그는 어느정도 비행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때문에 뉴욕의 장난감 제조업체인 EJ Horsman에서 그를 연과 글라이더 장난감 제작을 목적으로 고용하였다.

1896년에 Boston Aeronautical Society의 기계공으로 고용되었고 동료인 앨버트와 함께 릴리엔탈 글라이더오니솝터를 제작, 글라이더는 비행에 성공하였으나 오니솝터는 실패하였다.

3. 최초의 비행기 발명가?[편집]


파일:Gustave_proof.jpg
브리지포트 해럴드≫에 실린 삽화.

1901년 8월 14일 ≪브리지포트 해럴드≫ 신문에 구스타브가 직접 제작한 비행기를 탄 채로 무려 라이트 형제의 최고기록인 260m의 약 3배인 750m를 비행했다는 기사와 삽화가 있고, ≪Scientific American≫ 기사에도 구스타브의 비행기 설계와 실험이 기록되어 있고 1904년의 산업발전에 관한 책에도 그의 비행기 발명이 언급되어 있으며 목격자도 있다. 이런 신문 같은 경우 개인이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없기에 더욱 신뢰성이 높은 증거이다. 하지만...

4. 왜 알려지지 못했는가?[편집]


간단히 말하자면 자본과 증거 때문이다. 물론 전술했던 기사라는 증거가 있으나, 라이트 형제는 그보다 뚜렷한 비행 당시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었고, 구스타브는 애초에 이 발명품을 상업화할 생각이 없어 사진으로도 남기지 않고 후에 자본이 떨어져 작업도 그만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5. 기타[편집]


  • 사망하기 12년 전인 1915년부터 인지도가 떨어지더니 결국은 1927년에 향년 53세의 나이에 무명 상태로 사망했다.

  • 이례적으로 이름이 아닌 성을 개명하였다.

  • 비행 당시 탑승했던 비행기는 Whitehead No.21으로 자신이 설계, 제작한 비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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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2] 1889년 이후 그만둠.[3] 그 때문에 새가 어떻게 나는지 궁금해해 친구와 함께 새를 잡아 묶어서 관찰했는데 경찰이 이를 제지시켰다.[4]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전에 사망했으므로 이때 가족이 가리키는 대상은 결혼 후의 가족이다.[5]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은 칼 바이스코프이지만 후에 결혼한 부인은 루이스 튜바 화이트헤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