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한국/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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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문학
2. 역법
3. 인쇄


1. 천문학[편집]


천문관측과 역법계산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사천대(서운관)가 설치되어 관리들이 첨성대에서 관측업무를 수행하여 일식, 혜성, 태양 흑점 등에 관한 관측기록이 고려서 천문지(일식의 기록은 130여 회, 혜성 관측기록은 87회)에 풍부하게 남아 있는데, 이런 기록들은 당시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서 있던 이슬람 문명의 기록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역법[편집]


초기는 신라 때부터 선명력(唐) → 충선왕 때 수시력(元) → 공민왕 이후 대통력(明)


충선왕 때에는 원의 수시력을 받아들여 사용하였지만, 고려의 천문관리들이 수시력의 개방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일월교식(日月交食)의 추산법을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선명력의 방법에 의하여 그대로 추보하니, 일월식의 추산에 오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3. 인쇄[편집]


팔만대장경의 목판 제조기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즉 재조대장경의 목판 제조기술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훌륭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목판의 자재는 주로 산벚나무를 썼다. 크기는 가로 72.6cm, 세로 26.4cm, 두께 2.8~3.75cm이고 무게는 2.4~3.75kg이다. 판목은 양쪽에 편목을 끼워 붙이고 네 귀에는 구리판으로 된 직사각형의 띠를 둘러쳤다. 이것은 판목이 뒤틀리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보존할 때 판목의 양쪽 면이 다른 판목의 표면과 밀착하지 않고 사이가 뜨도록 해서 통풍이 잘 되어 새긴 글자가 늘 깨끗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야만 목판이 단단해져 뒤틀리지 않고 새겨 놓은 글자가 갈라지지 않는다. 거기에다 또 전면에는 얇게 옻칠을 했다. 벌레가 먹지 않도록 하고 목판이 부식되지 않게 한 것이다. 또 판의 한쪽 끝에는 작은 글자로 된 경전의 이름과 권수, 장수 및 천자문 순서로 된 함수의 번호가 새겨 있다. 인쇄의 능률을 높이고 판본을 조직적으로 관리 보존하기 위한 분류 기술인 것이다. 8만여 장의 방대한 목판의 보존 관리와 필요에 따라 인쇄를 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조대장경은 그 내용이 정확하고 글씨가 아름다우며 목판 제작 기술이 뛰어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판본이다. 그래서 그것은 고려대장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의 목판 인쇄는 팔만대장경의 제작 과정에서 최고의 기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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