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미얀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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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기원과 성립의 배경
2.2. 전성기
2.3. 쇠퇴와 오스만 술탄국의 정복
2.4. 부활과 최종 멸망


1. 개요[편집]


13세기 말부터 1429년까지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을 통치했던 아나톨리아 베이국. 13세기 말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했던 세력이었지만, 14세기부터 쇠퇴하여 다른 베이국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세력으로 전락한다. 결국 게르미얀은 1389년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바예지트 1세에게 정복당했지만, 1402년 앙카라 전투 이후 오스만의 혼란을 틈 타서 독립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1413년 오스만의 내전을 끝낸 메흐메트 1세에 의해 다시 복속되고, 1429년 오스만 술탄국에 완전히 흡수당하였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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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기원과 성립의 배경[편집]


게르미얀 부족은 본래 파르스 지역에 살던 오구즈 튀르크계 유목민이었는데, 다른 많은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13세기에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게르미얀 부족은 13세기 초에 말라티야 지역에 정착하였다가, 13세기 중후반에 일 칸국의 공격을 피해 그 곳에 살던 쿠르드족들과 함께 더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당시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던 룸 술탄국은 쾨세다그 전투 이후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으며, 동로마 제국은 1261년 미하일 8세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 시칠리아 왕국을 주축으로 하는 반동로마 연합의 공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2.2. 전성기[편집]


이러한 상황에서 게르미얀 부족을 막을 만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나톨리아 중서부 지역으로 이동한 게르미얀 부족은 1283년 룸 술탄국의 술탄 케이휘스레브 3세가 현지 총독 쿤쿠르타이와 연대하여 일 칸국의 통치에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당해 1284년 처형당하고 술탄이 메수드 2세로 교체되자, 중앙 권력에 반기를 들었다. 이로 인해 촉발되어 1290년까지 이어진 전쟁은 사실상 룸 술탄국을 붕괴에 이르게 하였고, 게르미얀 부족은 아나톨리아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고히할 수 있었다. 이후 게르미얀 부족은 이미 1260~1280년대의 튀르크 공세에 이미 서서히 붕괴되어 가던 동로마 제국령 아나톨리아를 공격하여 많은 영토를 탈취하였다. 그 결과 13세기가 끝날 무렵 게르미얀 부족은 야쿠브 1세의 주도 하에 룸 술탄국에서 공식적으로 독립, 쿼타히아를 근거지로 삼아 게르미얀 베이국을 확립하고 서쪽으로는 에게해, 동쪽으로는 앙카라까지 이르는 세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13세기 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게르미얀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아이딘, 사루한, 라디크, 멘테셰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나톨리아 베이국들이 본래 게르미얀의 산하에 있던 부족들이 세운 것이니 말 다했다. 게르미얀은 13세기 말에 아나톨리아의 또 다른 강자 카라만 왕조와 함께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양분하고 있었다.

2.3. 쇠퇴와 오스만 술탄국의 정복[편집]


그러나 14세기 초부터는 점차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게르미얀의 산하에서 계속 서진하던 다른 부족들이 에게해로 인하여 진로가 가로막히자, 그 지역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세력 기반을 구축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본래 게르미얀의 산하에 있던 아이딘, 사루한, 라디크, 멘테셰 등의 아나톨리아 베이국들이 점차 게르미얀의 산하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게다가 게르미얀은 에게해 연안의 알짜배기 영토들을 본래 산하에 있던 베이국들에게 빼앗겨 점차 강국의 위치를 잃어가게 되었다. 동북쪽에서는 잔다르 왕조와 아히 등의 베이국들이 게르미얀 세력을 측출하였고, 라이벌이던 카라만 왕조는 14세기 초에 룸 술탄국의 수도였던 콘야를 정복하고 게르미얀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세력을 확보하고 게르미얀을 압박하여 게르미얀의 세력은 쿼타히아와 그 주변 지역만이 남게 되었다.

14세기 중반부터는 오스만 베이국이 아나톨리아의 패권국으로 급부상하였고, 이제는 다른 베이국들과 별반 다름 없는 수준의 세력이 된 게르미얀은 카라만 왕조의 침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스만의 패권에 순순히 굴복하고 1378년 오스만과 결혼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지참금으로 수도 쿼타히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토를 오스만에게 넘긴다(...) 그런데 제1차 코소보 전투 이후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무라트 1세가 사망하자 게르미얀은 1389년 오스만에 반기를 들어 넘겼던 영토를 회복한다. 그러나 이에 분노한 바예지트 1세가 게르미얀 베이국을 정복해버린다.

2.4. 부활과 최종 멸망[편집]


이 당시 게르미얀의 베이였던 야쿠브 2세는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399년 탈출에 성공해 시리아로 달아나 티무르와 접촉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야쿠브 2세는 티무르의 편에서 싸웠고, 결국 오스만 술탄국은 티무르 제국에 패배하였다. 아나톨리아를 제패한 티무르는 그에게 14세기 중반의 게르미얀 영토를 돌려주었고, 게르미얀은 다시금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때 바예지트 1세의 막내 아들 무사가 게르미얀으로 망명했고, 게르미얀은 오스만 내전 초기 메흐메트 1세와 무사의 편을 들어 쉴레이만이 패배하는데 한 몫 거들었다. 그러나 메흐메트 1세가 무사를 제거하고 내전을 끝내자 게르미얀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게르미얀은 1413년부터 다시 오스만의 봉국이 되었으며, 아들이 없던 야쿠브 2세가 1429년 사망하자 게르미얀은 자연스럽게 오스만 술탄국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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