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제18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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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제14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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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요덕 제15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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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덕''']]
[[명간 제16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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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간''']]
[[개천 제18호 관리소|'''

18

개천''']]
[[청진 제25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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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
[[83호 병원|'''

83

83호''']]
명칭 불명
[[대흥 수용소|'''

-

대흥''']]
[[아오지 탄광|'''

-

아오지''']]
[[철산 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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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

폐지된 수용소
[[경성 제11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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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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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종성 제13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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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성''']]
[[단천 제21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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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천''']]
[[회령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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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덕성 제23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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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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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
[[승호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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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
[[천마 제27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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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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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기.svg 평안남도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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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제18호 관리소
价川第十八號管理所

Kaechŏn 18th Internment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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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창 수용소_구글 어스.png

▲ 개천 제18호 관리소의 위성 사진
다른 이름
북창수용소(北倉收容所)
득장수용소(得場收容所)
설립
1956년?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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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 제18호 관리소 (1956?~2007)
개천 제18호 관리소 (2007~ )

목적
✔ 체제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응징
✔ 사회로부터 격리함으로써 체제 오염 방지
정치범 활용을 통한 노동력 착취
규모
부지면적 73㎢
수용인원 15,000명
상위 조직
파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안전성 휘장.svg 사회안전성 교화국
운영 여부
운영 중
주소


개천 제18호 관리소}}} (평안남도 개천시 동림리)[1]
1. 개요
2. 특징
3. 기타



1. 개요[편집]


북한정치범수용소. 평안남도 개천시 동림리에 있다. 일명 '북창수용소' 또는 '득장수용소'로 불린다.

초기 위치는 개천군 봉창리였다. 이후 1984년쯤 봉창리가 북창군으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평안남도 개천시 동림리 지역으로 축소 이전되었다. 북한인권백서 2021[2]

대동강을 따라 대건선이 지나며 봉창역이 설치되어 있으며 득장선 석산역이 동쪽에 있으나 이어지지 않는다.

2. 특징[편집]


이 수용소의 경우 요덕 제15호 관리소처럼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이 공존하는지 개천 제14호 관리소, 명간 제16호 관리소, 회령 수용소처럼 100% 완전통제구역 인지, 아니면 가능성은 낮지만 철저한 혁명화구역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석방자가 있는 것을 보면 뜻밖에도 완전한 혁명화구역이다![3] 다만 바로 옆에 100% 완전통제구역인 개천 제14호 관리소가 보너스로 있는 만큼 이 곳을 혁명화구역으로 하고 여기서 더 악질이다 싶은 정치범을 개천 제14호 관리소로 돌렸을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이 수용소의 특징은 바로 사회안전성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4] 사회안전성은 우리나라의 경찰과 비슷하며 남한의 교도소에 해당하는 ''교화소"를 운영한다. 즉 사회안전성이 관리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교도소와 정치범수용소의 중간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수용소는 정치범만 수감하지 않고 경제범 같은 다른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수감대상이 된다.

신동혁이 이 곳 출신인데 완전통제구역인 14호 관리소에서 나왔다고 거짓으로 미국에서 증언을 하고 책을 두권 냈다가 문제가 되었다. 인권 유린의 인세 지옥이지만 굳이 서열을 매기자면 14호 관리소등 완전 통제구역 > 18호 혁명화 구역 일명 > 18호 해제민 구역 정도 된다. 해제민은 18호 수용소 처럼 혁명화 구역에서 모범수와 가족들을 뽑아 사회로 석방 시켜주진 않고 수용소내에 다른 구역에 배치해서 비록 천민 같지만 혁명화 구역보다는 조금 나은 대우를 해주며 일단 북한의 공민으로 인정은 해준다고 한다. 그러기에 학교도 있고 탈출도 용이한 편. 그렇기 때문에 신동혁이 18호 해제민 출신이면서 14호 출신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여 혁명화 구역 출신자들이 그를 비난한다.

행정구역은 북창군 소속이라고도 하는데 인구조사에서 득장지구라는 것이 등장해있다.

무용가 최승희안성희 모녀도 이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승희의 제자로 무용가로 활동하다 탈북한 김영순[5]이 최승희와 그녀의 딸 안성희가 이 곳에 끌려가 죽었다고 증언을 하였다.

여담으로 이 항목은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관리소 중 가장 늦게 작성되었다. 한편 이 수용소도 회령 수용소처럼 사실상 폐쇄된 상태였다가...[6] 다시 수용소가 재개한 정황이 인공위성을 통해 포착되었다. #

3. 기타[편집]


  • 현재 유일한 완전 통제구역 수용자 출신 김용(가명)이 14호 관리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14호 완전 통제구역에서 과거 인맥의 도움으로 18호 혁명화 구역으로 이송 된 후의 탈북으로 14호 관리소 시절엔 어디에 수감되었는지 감각도 없었다고 한다. 완전 통제 구역 출신 경험자가 한명 더 있는데 완전통제구역 안명철씨로 수감자가 아닌 보위부 출신.

  •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최장기수 탈북자가 18호 관리소 출신이다. 그 주인공은 김혜숙인데, 할아버지가 6.25 전쟁 때 월남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작 만 13세였던 1975년에 가족들과 수용소에 끌려간 후 2002년까지 27년간 18호 관리소, 정확히는 혁명화구역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나고[7] 한동안 북한에서 살다가 2005년에 중국으로 탈출했으나, 북한에서 돼지를 사오라는 중국인 식당 주인의 지시에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가 2007년 10월에 다시 잡혀 6개월 노동단령형을 선고받고 18호 수용소에 재수감된 후, 2008년 3월에 탈옥하여 2009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참고로 그녀의 두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은 2011년 기준으로도 36년째 18호 관리소에 수감 중이었다고 한다.

  • 김일성의 외가쪽 먼 친척 강명도는 혁명화 구역 18호에 수감되어 혁명화 기간을 거쳤다가 복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고위층은 혁명화로 내려가도 6개월 ~ 1년이면 한 두 단계 직급이 강등되어 복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반 수감자 처럼 인권유린을 심하게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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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개천군 봉동면.[2]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한편 데일리NK에서는 '개천 제17호 관리소'가 따로 있고 '북창 제18호 관리소'는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상충되게 분석하고 있다. 기사(데일리NK)[3] 수용소도 혁명화 구역과 완전통제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완전통제구역에 수용된 남자들은 핵실험용 지하 땅굴 같은 위험한 공사장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애초에 이곳이 완전통제구역이란 명백한 증언은 없다. 왜냐면 요덕이야 면적이 상당히 넓어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눌수 있지만 여기는 그리 넓지 않다. 탈북자가운데 김혜숙씨나 강명도는 북한에 있을 때 18호 관리소에 수감되었었다고 증언했다. 혁명화구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석방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강명도는 북한에 있을 때 권력을 가지고 못된 짓을 일삼아(대외 무역 사업을 하면서 김정일을 사칭해서 막대한 외화를 축적했고 남한으로 탈북할 때도 한 몫 챙겨서 왔다.)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하며, 수감된 기간도 김혜숙씨보다는 훨씬 짧았거니와,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한 수감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석방되었다는 증언이 존재하나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교육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증언이 존재하지 않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그런 교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혁명화구역이란 것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김씨 일가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가에 대한 것을 알아야한다는 점은 필수사항이다.[4] 14호 관리소, 15호 관리소, 16호 관리소, 22호 관리소국가보위성에서 관리, 통제한다.[5] 성혜림의 절친한 친구였고 성혜림이 김정일 관저들 중 하나로 갈 때 그 사실을 통보한 유일한 사람(당시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이였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요덕수용소에 10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운 좋게도 풀려나오는 데 성공했고 수용소에서 겪은 상당한 고생때문에 이미 북한 체제에 대해서 진절머리가 나서 남한행을 선택했다고 한다.[6]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보고로 서울신문에서 보도했다.[7] 사실 이는 그녀가 결혼 허가까지 받을 정도의 '모범수'였던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