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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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사
강정훈
姜征勳 | Kang Jeong Hun


파일:강정훈 교수님.jpg

학력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 (경영학과/학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경제학과/석사)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법학)/박사)
약력
제18회 감정평가사시험 보상법규 수석합격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 부동산법무전공 겸임교수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연수위원
한국토지보상법연구회 상임이사
한국감정평가학회 이사
박문각 서울법학원 행정법,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교수
직업
감정평가사,법원감정인,대학교수,전문강사.
과목
행정법,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소속
박문각 서울법학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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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약력
3. 자격사항
4. 경력 및 대외활동
5. 주요 수상
6. 연구내역 및 저서 등
7. 여담
8. 제18회 감정평가사 시험 법규수석 (78점) 합격수기
9. 저술 활동
10. 언론출연



1. 개요[편집]




감정평가사 2023년 34회 초단기 합격 수제자 인터뷰



강정훈 감정평가사의 전설의 7전 8기 합격썰

현직 감정평가사이자 박문각 서울법학원의 감평행정법과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전문 교수이다.
매년 수석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는 감정평가계 전설의 1타 강사이다.
또한 본인도 7전 8기 절처봉생의 노력 끝에 18회 감정평가사 시험에서 78점 법규수석으로 당당히 합격을 하였다.


2. 약력[편집]




3. 자격사항[편집]


  • 2007.12. 감정평가사 합격 (18회 법규수석 78점/국토교통부)
  • 2000.11. 공인중개사 자격취득(국토교통부/경기도)
  • 2002.12. 주택관리사 자격취득(국토교통부/경기도)
  • 2013.12. 행정사 자격취득(행정안전부)
  • 2019. 2. 법학박사 자격취득(교육부/국민대학교)
  • 2021. 6. 원가분석사 자격취득(기획재정부/(사)한국원가분석관리협회))
  • 2022.10. PIA사설탐정사 자격취득(한국특수교육재단)


4. 경력 및 대외활동[편집]


  • 2012. 08 – 2023. 현재 (現)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 부동산법무전공 겸임교수/외래교수
  • 2008. 01 – 2023. 현재 (現) 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근무(現 감정평가법인 태백 이사)
  • 2012. 11 – 2022. 04 (前) 법제처 국민법제관(주택토지분야)
  • 2013. 01 – 2023. 현재 (現) 수원지방법원 법원감정인(소송, 경매)
  • 2013. 03 – 2023. 현재 (現) 경기도 안양시청 무료법률상담위원
  • 2013. 03 – 2023. 현재 (現) 경기도민회 실행위원
  • 2014. 03 – 2016. 02 (前)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이사
  • 2014. 03 – 2016. 02 (前) 감정평가사법제정 특별위원회 위원
  • 2014. 08 – 2020. 08 (前) 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경기도지사추천)(2회역임)
  • 2015. 01 – 2023. 현재 (現) 한국토지보상법연구회 상임이사
  • 2015. 01 – 2023. 현재 (現) 국민권익위원회 전문상담위원
  • 2015. 03 – 2017. 02 (前) 한국감정평가학회 미래위원장
  • 2015. 04 – 2016. 02 (前) 한국감정평가사협회 미래위원장
  • 2017. 03 – 2023. 현재 (現) 한국감정평가학회 이사
  • 2018. 03 – 2023. 현재 (現)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연수위원
  • 2020. 01 – 2023. 현재 (現) 법제처 제안심의회 위원
  • 2020. 01 – 2023. 현재 (現) 대한적십자사 상임위원(경기도지사)
  • 2021. 06 – 2023. 현재 (現) 충청남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 위원
  • 2021. 12 – 2023. 현재 (現)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전문위원
  • 2022. 06 – 2023. 현재 (現) 한국부동산원 보상자문위원회 위원
  • 2022. 08 – 2023. 현재 (現) 한국토지주택공사 청렴시민감사관 및 윤리경영위원회 위원
  • 2022. 09 – 2023. 08 (前) 경기일보 이슈엔경제 파트 고정 칼럼리스트
  • 2022. 11 – 2023. 현재 (現) 한국부동산원 재건축부담금 검증자문위원


5. 주요 수상[편집]


  • 1994. 06 장관급부대장 표창(모범군인)
  • 2009. 03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 표창(공로상)
  • 2013. 12 국토교통부장관 표창(장차관급)(법제 유공)
  • 2013. 12 경기도지사 표창(장차관급)(민원봉사유공)
  • 2014. 01 몽골정부 100주년 훈장(법제수출유공)
  • 2014. 06 대통령직속청년위원장(장관급) 표창(청년정책대상)
  • 2014. 11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 표창(공로상)
  • 2015. 12 대한민국 법제처장 표창(장차관급)(우수국민법제관)
  • 2016. 12 한국감정평가사협회장 표창(공로상)
  • 2016. 12 경기도민회 공로패 수상(무료법률유공)
  • 2017. 0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청장 표창(봉사유공)
  • 2017. 12 대한민국 법제처장 표창(장차관급)(최우수국민법제관)
  • 2018. 10 대한적십자사 공로상 수상(공로상)(장관급)
  • 2018. 10 대한적십자사 포장증 은상 수상(봉사유공)
  • 2019. 01 대한적십자사 포장증 금상 수상(봉사유공)
  • 2019. 02 국민대학교 총장 표창(우수인재상)
  • 2019. 11 논문우수상(한국부동산경제단체연합회 회장)(주제:남북한의 부동산감정평가제도 통합에 관한 연구)
  • 2019. 12 대한민국 법제처장 표창(대한민국 법제처장 3회 표창 수여함)(장차관급)(우수국민법제관)
  • 2023. 03 대한적십자사 명예장 포장증 수상(봉사유공장)(장관급)
  • 2023. 07 경기도 안양시장 표창(무료법률상담10년 유공장)


6. 연구내역 및 저서 등[편집]


  • 2013. 북한의 부동산법제도 연구(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
  • 2014. GTX건설이 토지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경기도)
  • 2015. 기설송전선로 선하지 과거사용료지급 개선에 관한 연구(한국전력공사)
  • 2019. 남북한의 부동산감정평가제도 통합에 관한 연구(국민대학교)
  • 2008. – 2023. (저서) 행정법, 신감정평가론, 신부동산학개론, 감평행정법,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기본서,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판례분석 등 10여권(부연사, 박문각)

초심자에게는 조금 어렵다는 평가가 있지만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법규 55점~60점이상 득점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를 잘 따라 가면 무조건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매우 높다. 초심자라 하더라도 강의를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잘 따라가면 고득점을 보장하는 대한민국 감정평가계의 레전드 1타 교수이다.

다만 자료양이 많고 교재가 많아서 일부 게으른 수험생의 불평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출제경향을 잘 맞추어 찍신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7. 여담[편집]


수업중 자주하는 말버릇이 있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한길로 가면 반드시 합격을 한다며 수험생을 격려한다.
사찰의 천년의 은행나무에 수험생 합격 기도를 매년 하는데,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학사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디시인사이드 감정평가사 마이너 갤러리에 극성팬이 많고 오히려 강의를 찬양 하는 극성팬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알 수 없는 안티가 있는 편이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 감정평가사 갤러리에는, 본인이 방문한 적도 없고 존재 조차 모르는 듯 하다. 매일 강의 준비에만 열중하는 편으로, 인터넷 세계에서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는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한없이 초연하고 무관심한 모습이다.


아래는 몇년전 강정훈 감정평가사의 블로그에 있는 "감정평가사와 아버지"라는 글이다.
감정평가사 수험생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는 것이 좋다.
출처: 강정훈 감정평가사 공식 네이버 블로그.

<감정평가사 공부, 그리고 아버지>

날씨 추워지고 시험은 다가오고 연말은 되었는데 공부한 것은 없는 것 같고, 답답하고 심란한 초겨울을 보내고 계시리라 봅니다.
저도 공부할 때 그랬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인간인지라 연약한 마음은 다 있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지지난주에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감정평가사를 공부하게 되고, 그리고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게 된 것은
순전히 돌아가신 아버지 영향이 컸습니다.
제 아버지는 1930년대생이십니다. 아마 살아계셨으면 80대 후반이실 겁니다.
일제하 해방되는 과정에서 만주로 이주도 하시고,
공부하면 일본 순사들에게 잡혀가 죽는다며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닐 무렵 할아버지께서
책가방을 아궁이에 태우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게 평생의 한이 되셨는지 아버지는 할아버지 몰래 서당에라도 다니시면서
천자문, 소학과 사서오경을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늦은 나이에 태어난 제게 “너는 꼭 공부 많이 해서 전문가도 되고, 박사학위도 받고, 교수나 선생님도 되어라!, 아버지는 시대를 잘못 만나 만주땅을 돌아다니다가 이래 농촌에서 농사꾼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너는 공부해서 더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해라!”....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제 저도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아이 둘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몇 년전 법제처에서 하는 연말 워크숍에서 최우수 국민법제관 수상을 하는데 수상 소감으로 “우리 아이들의 좋은 아버지와 다음 세대의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는 소회를 밝혔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상을 받고는 화장실에 혼자 가서 한참을 운적이 있습니다.

저의 13년전 감정평가사 합격수기 제목이 “나의 꿈 나의 약속”이였는데, 감정평가사 합격을 부모님과 약속을 했는데, 다 돌아가신 후에 그 약속을 지켜 부모님 산소에서 비석을 붙들고 참 통곡을 했던 회한이 아마도 부모님과 한 약속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세대에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서재에서 컴퓨터를 키면 수험생 여러분들의 카페글이 올라오고, 저는 아침 점심 저녁 여건이 될 때 마다 답변을 달면서 수험생 여러분들이 잘 되기를 정말 바라고 또 기원하고 기도하고 그렇습니다.

5살 아들 장래 희망이 “감정평가사”라고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왜 감정평가사가 되고 싶냐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이야기가 “아빠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여서 그렇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고 선생님이 그랬다며, 감정평가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아들은 생각하는 듯 합니다.

수험공부는 참 어렵습니다. 감정평가사 공부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실무이고, 그 다음이 법규공부죠. 사실 저도 상경계열을 나와 법규가 제일 어려운 과목이였습니다.
그런데 공부라는게 연애와 같아서 자주 보고, 자주 만나면 정이 들죠. 법규는 정을 붙이는게 중요합니다. 실강도 자주 듣고, 동영상 강의도 필요한 부분은 자주 듣고, 그리고 반복해서 써보고 또 써보고 그런 인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험생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동행지기라 여러분들이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과정이 치열해도 좋은 결과가 없으면, 사회는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수험의 과정은 합격이라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면 그 과정은 정당화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단하고 힘들고 그러셔도 잘 버텨주시기 바랍니다.
7전 8기로 법규 수석 합격한 저에게 어느 잡지사 기자가 인터뷰를 했는데,
합격의 비결을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버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를 버티고, 일주일을 버티고, 1년을 버티다 보면
결국 시험은 나와의 싸움이고, 과정이야 경쟁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정한 공부의 룰을 내가 잘 지키고, 버티고 싸우는게 수험의 일이였으니까요.

수험생여러분들이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하여 제도권에 진입하여
감정평가사로 부동산 전문가로 보내시는 시간들은
수험기간처럼 휘발성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력으로 인맥으로 쌓여가는 것입니다.

어제 산업인력관리공단의 국가시험 사전공고로
수험일정이 틀어져서 어려가지로 심란하시겠지만
잘 버티고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40여년전의 아버지는 시대를 잘못 만나 일제치하와 광복,
다시 전쟁을 겪으시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도 제대로 못하셔서 평생의 한이 되어
어린 아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여 공부를 하라고 그러셨습니다.

2019년 2월에 저는 감정평가사도 7전 8기, 박사도 8년만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부모님 산소에 올라 학위복이랑 학위패랑 논문이랑...그리고 그 옛날에 어린 아들에게 당부했던 약속을 지켰노라고 인사를 올렸습니다.

저는 남자인데도 눈물이 많은가 봅니다. 아버지 비석 위에 학위복이랑 학위패를 드렸는데, 너무 회한이 많아 비석옆에 주저 앉아 한참을 엉엉 울었습니다. 결혼할때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너무 마음의 한으로 북받쳐서 제가 결혼식장에서 엄청 울어 잠시 결혼식 진행이 멈춘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단한 수험의 과정에 있는 수험 여러분들이 힘들고 슬프고 외로워도 잘 버텨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누구에게나 행운이 따르지는 않지만 버티고 견디고 이겨낸 사람에게는 항상 신의 가호가 저는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행운의 총량은 같다고 제 아내가 늘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생 총량의 운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잘 버티고 이겨내시면 좋은 인생 길이 열리실 거라 믿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법규 강정훈이... 제가 수험가에 있는 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동지가 되겠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오는 이 계절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도 보고 싶고, 쓸쓸한 여러분들의 마음도 헤야려 몆자 응원의 말씀을 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


8. 제18회 감정평가사 시험 법규수석 (78점) 합격수기[편집]


출처: 강정훈 공식 네이버 블로그.

나의 꿈, 나의 약속(강정훈 18회 합격수기)
누구에게나 삶은 하나의 과정이자 목표일 것이다.
부끄러운 수험의 과정에 대한 수기 자체도 일천한 내게는 과분한 영광이며, 그 영광을 누리게 해주신 분들께 우선 감사를 드린다.
경기도 양평 수곡리라는 두메산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늘 큰 성공이라고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당시 고졸 학력으로 매우 많이 배우신 반면, 아버지는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한(恨) 때문에 나에게 고시합격이라는 열망을 늘 심어주셨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계시던 아버지는 경운기를 몰고 추곡수매를 한 후, 어린 나를 데리고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드시며 농협통장을 보여주셨다.
영농자금 등을 공제한 통장의 잔액은 마이너스였다.

<너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네가 펼쳐보고 싶은 세상에서 능력껏 살아 보아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아버지의 회한을 잊을 수가 없다. 서울에서 대학이란 상아탑에서 느낀 나의 또 한번의 좌절은 가난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지낼만한 거쳐가 없어서, 하숙집, 자취방, 기숙사, 고시원, 친구의 자취방등을 전전하다가 군 제대 후에는 서울에 작은 형집에서 얼마동안은 따뜻한 보살핌 속에 살았다. 작은 형마저 양평으로 이사를 간 후 나는 또다시 서울 하늘아래서 오갈데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학관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그곳은 경기도내 장학기관으로 운좋게 졸업 때까지 지낼 수 있었다. 여러 형제들과 다복하게 자란 탓인지 낯선 곳에도 적응을 잘할 수가 있었다.

대학 3학년말 무렵, 행시를 공부하던 나는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이 많은 시절에 뭔가 나의 꿈과 나의 적성에 맞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 끝에 감정평가사의 길은 내게 다가선 하늘의 계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부합되고, 공직보다는 전문 자격사의 길이 더욱 나의 길에 부합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00년 제 11회 1차 시험을 시작으로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노량진 한교고시학원에 다니면서 시작되었다. 경기장학관은 쌍문동에 있었는데, 노량진에서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렸고, 밤늦게 특강 때문에 밤12시 장학관 통금시간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우성이형과 나는 고육지책으로 지금의 노량진 신한은행 2층 강의실로 몰래 잠입하여, 책상과 의자를 모아 그 위에서 신문을 덮고 잤다. 그때 옆에서 군대식 침낭을 덮고 주무시던 40대 아저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여관비는 커녕 침낭하나 살 돈이 없었지만 나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공부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합격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무 행복했고, 신문지가 그렇게 따뜻한 것인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공부하는데 체력이 중요하므로, 별도의 운동이 필요할 것 같아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짬나는 대로 숯불갈비집 고기불판을 닦았다. 인심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남은 고기를 구어주는 것도 수험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돈으로는 학원비, 책값등이 안되어서 중고생 과외도 하였다. 적금통장에 학원비, 생활비, 학비등을 모으며 공부하는게 큰 재미이기도 했다. 두 살 위 병두형이 보내준 학비는 내 인생의 큰 줄기의 빛이었고, 그 후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제11회 시험장에 들어가기전 함께 공부했던 우성이형과 나는 그동안의 많은 체력소모로 코피가 가끔 나기도 했다.

<우리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죽는거 아냐>하던 그 형의 떨린 목소리를 뒤로하고,
<형! 수험생은 죽어도 시험장에서 죽어야지!>하며 우리는 투혼을 불태웠다.

나는 그때 운이 따라 1차시험에 합격했는데, 같이 공부했던 그 형의 이름은 없었다.그 후에도 그 형의 소식을 듣지 못해 지금도 못내 아쉬움이 있다.

서울대 입구의 서울법학원에도 다녔는데 부관법 강의를 하시던 공민달 선생님은 맨 앞자리에 앉은 내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보라는 권유에 나는 2차시험 후 제11회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시험에도 모두 합격을 하게 되었다. 시험이후 나는 여름학기 졸업을 하였는데 또다시 거쳐할 곳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생계유지를 위해 부동산 일을 배우며 고시원으로, 자취방으로 이삿짐만 30번이 넘게 쌀 수밖에 없었다.

제11회 2차 불합격을 이후로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목표로 삼았던 감정평가사의 길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인가 싶다. 독서실에서 나와 신림동고시촌에서 바라본 가을의 하늘은 너무나 드높았다. 몇 일만에 보는 햇빛이었다!. 순간 눈에 눈물이 맺힐 때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길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못내 쓴웃음을 지며, 책과 열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 왔다.

늘 내가 공부하려는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었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던 나는 공부의 실의를 잃고 삶의 의미조차 상실하였다.
대학재학중 행정고시를 공부하던 내게, 꼭 고시에 합격하라는 유지를 남기셨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지 10여년인데, 어머니마저 나와 세상을 등지셨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였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야야 하는가?> 정체성에 큰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감정평가사의 길을 포기할 까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때 함께 일을 하며 도움을 주고 계시던 분들께서 <자기 자신도 못 이기면 무엇을 할수 있겠냐>
<그 길을 접으면 부모님과 약속을 영원히 저버리는 것이다>며 나를 독려해 주었고,
힘겹고 버거울 때마다 힘이 되어 주셨다. 난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미 나는 계속되는 불합격으로 많은 경제적 지출은 물론 금융기관등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상태였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또 다른 관문이기도 했다. 다시 열정을 불태웠으나, 제15회 불합격, 제16회 불합격... 세상은 나에게 너무도 가혹하였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도 싶었다. 공부방법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17회 1차시험을 다시 보기로 하였는데 작은형이 지방자치단체장 경선을 하게 되어, 모든 것을 잠시 접고 선거전반을 최선을 다해서 도왔다. 그런데 결과는 아쉬운 패배였다.

그 씁쓸한 마음을 이끌고 2006년 5월에 상경하여 다시 1차를 준비하였으나 시간적으로 너무 부족하여 4당5락 정신으로 정말 열심히 하였다. 다행히 컷트라인을 간신히 넘어 합격하였다. 그러나 마음고생과 선거등으로 체력이 너무 소진되어 나는 제17회 2차시험에도 불합격하였다. <1차시험 4번 합격, 2차시험 8번 응시한 7전 8기> 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오는 주인공의 삶이 내 삶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나는 다시 고군분투하였다.

내가 다시 공부에 뜻을 펼칠 무렵, 작은형은 열의를 불태워 지방자치단체장 재선거에 정당공천을 받아 나서게 되었고, 나는 선거참모로 다시 투혼을 발휘하였으나, 아깝게 낙선하였다.

나는 선거일 다음날, 다시 짐을 싸서 상경하여 내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라는 각오로 2차시험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선거 후휴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올해 수험생활의 최대의 적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또한 올해는 그동안의 수험전략을 전면 재수정하여 한석봉과 어머니 전략으로 하루 5시간이상 답안작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자세히 읽기 위해서는 필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험당일 1교시, 2교시의 실수가 머리를 떠나지 않아 <7전8기의 나의 수험은 이렇게 저무는가>라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와의 약속이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다. 그동안 많은 좌절은 고시를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성공지향적 나의 생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부동산과 선거참모를 통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함성소리가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하였다. 3교시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과목에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애환을, 그대로 살아있는 영혼을 다해 답안을 기술했다.

2007년 12월 합격자 발표의 시간...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주 짧지만 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하염없는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다. 양평의 선산에 올라, 아무도 없는 야산에서 부모님 비석을 붙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 많이 울었다. 어느 시인의 <초혼>처럼 불러도 이름없는 이름으로 아버지, 어머니는 저 하늘에서 잔잔함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듯 했다.
그리고 영예의 최고득점 수석은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인 것 같다.

나는 부모님과 서영희 은사님, 그리고 나 자신과 <合格>이라는 약속을 했다.
정말 먼길을 돌아서 왔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너무 늦게 약속을 지켰다.
나는 합격수기에서 누구책을 보고, 어떤 공부방법으로 공부해서 합격했다는 말보다는, 지금도 고시촌에서 고단한 삶을 살며 자기와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는 눈물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부끄러운 졸필을 들었다.

합격한 자는 불합격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량과 불합격자는 합격자에게 진심으로 갈채를 보내주는 긍정의 힘을 가질 때 우리는 더욱 밝은 사회를 만드는 전문지성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한다.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라는 말도 있지만, 삶은 결국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꿈의 공간이며, 나와 함께 숨쉬는 사람들의 행복공간이기도 하다. 내 삶이 치열할수록, 그 치열함과 간절함에 감동이 있다면 하늘이 결코 투혼의 열정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살고 싶다.

가난은 가난일뿐이고, 고시는 고시일뿐이다.

다만 내가 무엇을 향해서, 무엇을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듯 하다. 내 고단함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삶은 자체가 과정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은사님을 찾아 뵙고, 10여년전의 약속을 지켰노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정말 하늘에 감사한다.

앞으로 나같은 민들레도 잘 자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인생을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어 사랑하는 강병석, 강주희, 강병국, 강유정, 강병두 그리고가족들, 고향친구들, 경기장학관 식구들, 형배와 4인방형님들, 이길휴부장님, 정은태형님, 오늘의 내가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윤희준, 두선형, 김형근, 강승구, 한미영, 임소영, 장지영등 학원 팀원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두서없는 글을 맺는다.


9. 저술 활동[편집]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선행학습 감평행정법 개정판(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기본강의 개정판(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종합문제 개정판(연습)(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기출문제분석 개정판(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판례정리분석 개정판(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최종점검(2023년/박문각)
  •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 암기장 시리즈(2023년/박문각)


10. 언론출연[편집]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19216?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16394?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14602?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11219?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08887?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06483?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04165?sid=11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6/0000001123?sid=110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1218580144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1120580141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1016580143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20904580192
https://www.fnnews.com/news/202210031845180002
https://www.sedaily.com/NewsView/1L1LUK3DRL
https://blog.naver.com/press0105/221417826825
http://www.weeklypeople.co.kr/news/view.php?no=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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