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린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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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럽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가린샤의 선수 경력을 기술한 문서.

2. 클럽 경력[편집]


그가 보타포구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왔을 때 그는 바로 첫 터치로 내 다리 사이에 공을 넣어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불쾌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들은 잘못 짚은 것이었다. 난 거기 있던 임원들에게 그와 계약해야 한다고 말했고 다행히도 그들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니우통 산투스, 가린샤와의 첫 맞대결을 회상하면서.


가린샤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고 싶어할 때 보타포구의 감독을 쫓아다니며 엄청나게 귀찮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리가 휘어있는데다 8살짜리 지능을 가진 사람[1]이 프로 축구단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아마 누구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찮아진 감독은 팀의 주전 레프트 백을 보내서 가린샤를 테스트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주전 레프트 백은 단순한 주전이 아니라 전설적인 왼쪽 풀백 니우통 산투스였다. 2010년대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입단 테스트의 상대로 마르셀루다비드 알라바 정도 되는 월드 클래스급의 선수를 다리가 휜 장애인 상대로 붙여준 격이다.

다시 말해 테스트는 명분이고 "저기 있는 절름발이 녀석에게 니가 가서 본때를 보여주고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서 멀리 내쫓아 버려라!"는 뜻으로 테스트를 빙자한 가린샤 퇴치로 내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라고 니우통 산투스를 내보냈지만 오히려 가린샤와 1:1 에서 상대도 못 될 정도로 털려버린다. 심지어 다리 사이로 공을 통과시키는 굴욕적인 알까기까지 당하는 등, 그야말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다만, 산투스는 이런 굴욕을 당하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린샤를 같은 편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프런트에다 역설했다. "이 친구와 같은 팀에서 뛰면 또 다시 그런 굴욕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게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경기가 끝나고 코치에게 "나는 저 선수를 상대 팀으로 맞대결하고 싶지 않으니까 꼭 영입해달라."라고 직접 요청을 했다.

결국, 가린샤는 1953년 보타포구 FR과 계약했고, 가린샤는 1957년 주립 리그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펠레산투스 FC에 입단한 뒤로 둘은 그야말로 라이벌로서 경쟁을 펼쳤는데 리그에서의 경쟁은 2000년대 말–2010년대의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생각하면 될 듯하다.

1962년 가린샤는 자신의 최전성기를 맞이하는데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끈 활약을 바탕으로 주립 리그,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클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6관왕을 이끈다. 이후 1965년까지 581경기 232골을 기록했고, 이후 보타포구 FR을 떠나 SC 코린치안스에서 13경기 1골을 기록하고 포르투게자 카리올라, 후니오르 FC, CR 플라멩구에서 뛰다가 1972년 올라리아 AC에서 은퇴를 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1955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가린샤는 펠레, 니우통 산투스, 마리우 자갈루, 지우마르, 지지, 바바와 함께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는데 이 대회에서 가린샤는 펠레와 훌륭한 호흡을 보여 결승전에서 닐스 리드홀름, 군나르 그렌, 쿠르트 함린이 이끄는 스웨덴을 상대로 동점골의 기점 역할을 하고 바바의 역전골을 직접 어시스트하면서 5:2 승리를 이끌어 우승을 차지한다. 가린샤의 순간적인 측면 돌파 후 크로스가 펠레의 발에 맞아 살짝 굴절되고 쇄도하던 바바가 골을 넣었던 것이다.

이후 1962 칠레 월드컵에도 참가했는데 4년전 우승 멤버들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고 브라질은 우승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 체코슬로바키아전에서 펠레가 부상을 입어 아웃되고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사람들은 브라질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 스페인전에서 펠레를 대신하게 된 아마리우두가 멀티골을 터뜨리며 2:1 역전승을 거두어 브라질은 조별리그를 2승 1무로 통과한다. 이 스페인전에서 가린샤는 특유의 측면돌파 후 크로스로 아마리우두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8강 잉글랜드 전에서 가린샤는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선제골을 기록, 강력한 프리킥 슈팅으로 만들어낸 세컨볼을 바바가 골로 연결하면서 두 번째 골의 기점이 되었으며, 이후 엄청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쐐기골을 넣으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여담으로 경기 초반에 개 한 마리가 경기장에 난입해 경기가 중단됐고, 지미 그리브스가 네 발로 기어 개를 유인했다가 낚아채 보안 담당자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이 장면에 가린샤는 감명을 받았고 그 개를 애완동물 삼아 데려갔다고 한다.

4강 칠레전에서는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굴러온 세컨볼을 벼락같은 왼발슛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하고, 코너킥 상황에서 또 헤딩골을 기록하며, 후반전 초반에 코너킥으로 바바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4:2 승리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후반전 38분에 사건이 일어나는데 칠레의 수비수가 가린샤를 따라다니며 심판이 안보는 사이 가린샤에게 파울을 날렸고 가린샤는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 수비수를 발로 걷어차다가 심판에게 걸려 퇴장당한 것이다.

다행히 징계가 풀려서 결승전에 출전할 수 있었고 요제프 마소푸스트가 이끄는 체코슬로바키아를 3: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하며 브라질은 FIFA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다. 다만 결승전에서는 다소 부진하며 아쉬움을 조금 남기긴 했다. 이때 가린샤는 6경기 4골 2어시, 토너먼트 3경기에서만 4골 1어시로 뛰어난 활약을 통해 브라질을 우승시켰다.


파일:가린샤 62월드컵 드리블 횟수.jpg

옵타 방식으로 외국의 한 축덕이 세어본 결과 가린샤의 1962월드컵 드리블 횟수는 6경기(540분) 62회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1986 월드컵 마라도나가 7경기(630분) 53개, 2014 월드컵 메시가 7경기(720분, 연장전 3회 포함) 46개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시대상을 어느정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드리블러로서의 출중한 실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임은 분명하다.[2]

이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이때 가린샤는 이미 32살의 노장이었고 기량이 쇠퇴하기 시작했기에 큰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 펠레 역시도 상대팀의 매우 거친 파울들로 부상을 겪으며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일단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선 펠레와 가린샤가 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거두었으나 펠레가 부상으로 빠지고 결국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토스탕이 1골을 넣는데 그치고 3:1로 패배했으며, 조별리그 마지막에선 펠레가 어찌어찌 복귀했지만 이번엔 가린샤가 경기를 뛰지 못하며 에우제비우가 이끄는 포르투갈에게 3:1로 패해 무기력하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후 가린샤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여담으로, 이 시기 브라질 국대는 가린샤와 펠레가 동시에 뛴 경기에선 불패였다. 가린샤가 뛰었던 마지막 경기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헝가리전이었고 거기서 패배한 게 가린샤의 유일한 A매치 패배기록이다.[3] 펠레는 이전 경기였던 불가리아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됐고 포르투갈전에 억지로 복귀했지만 이때는 가린샤가 경기를 뛰지 않아서 결국 둘이 함께 뛴 경기들은 불패로 남게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드리블 실력을 자랑한 윙어로, 옆나라의 리오넬 메시,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로 불린다. 또한 드리블 실력 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이는 그를 종합적으로 브라질 축구 역사를 상징하는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린샤의 피지컬은 좋지 않았다. 170cm도 되지 않는 단신이었고,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다른 기형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피드 역시 돋보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축구선수로서 갖춰야 할 피지컬적인 장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린샤가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냥 별 볼 일 없는 축구선수 A 정도로 평가받으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재능과 노력을 바탕으로 단점을 극복했다.

신체적인 면에서는 장점이 없었으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라 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민첩한 몸놀림이다. 이 민첩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속임 동작을 사용했는데, 가린샤의 크고 작은 속임 동작들은 상대 수비수의 균형을 깨기에 그만이었다. 때문에 가린샤는 수비수와 1:1로 마주본 상태에서 돌파해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수비수 몇 명을 계속해서 제쳐내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가린샤의 한쪽 다리가 짧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 다리 길이의 차이가 상대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가린샤를 상대하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리듬을 타면서도 양발을 무리없이 사용하며 드리블하니 수비수 입장에서는 그 패턴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 쪽 다리가 짧았기 때문에 몸 전체가 휜 특유의 자세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키도 작은데 몸을 낮추고 있으니 무게중심이 낮아서 밸런스가 좋았고, 그 자세 덕분에 뱡향을 바꿔도 불안정하지 않았다.

가린샤는 수비수를 '농락'하는 데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가린샤의 별명인 'Alegria do povo'는 포르투갈어로 '사람들의 즐거움'이라는 뜻인데, 이는 가린샤가 매번 보여주는 트릭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상대 선수를 제치며 느끼는 희열'은 브라질 축구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이다. 브라질 축구를 다룬 여러 자료에서 볼 수 있는 '징가'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이를 누구보다도 잘 보여준 선수가 다름아닌 가린샤였다.



특히 수비수와 마주 본 상황에서의 이런 드리블은 가린샤만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역사상 최고로도 거론되는 드리블 능력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패스에도 아주 능했다. 가린샤는 측면에서 중앙의 선수들과 연계하여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크로스와 패스 등으로 센터 포워드에게 찬스 제공'이라는 아웃사이드 라이트의 전통적 임무에도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상대 선수를 제치고 필요한 공간만 딱 만들어서 간결하게 크로스를 제공하는 플레이야말로 가린샤의 전매특허이다.

킥 능력 또한 뛰어났다. 측면에서 뛰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윙어라서 중앙에서 슈팅을 때릴 찬스가 많지는 않았지만, 혹여 잠시 중앙에 머무르다 찬스가 찾아오면 지체 없이 냅다 슛을 때려갈겨 골망을 갈랐다. 골대와의 거리는 상관없었다. 가린샤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발목 힘의 소유자라서 슈팅의 세기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즉, 박스 안에서나 박스 밖에서나 위협적인 슈팅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골을 이런 상황에서만 넣었는데, 보타포구 FR에서만 200골이 넘는 골을 득점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코너킥을 주로 본인이 처리했으며 프리킥도 잘 찼다.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프리킥은 주로 지지, 펠레, 가린샤 이 3명이 도맡았다. 셋 다 월드컵에서 프리킥 골을 득점한 바 있다.

뛰어난 활동량과 수비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가린샤의 플레이 모습을 보면 풀백과 협력 수비하는 장면, 상대 수비수들을 압박해서 공을 빼앗아내는 장면 등 당시의 윙어들에게서 보기 힘든 수비적인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크로스를 헤딩으로 처리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서 꽤 많은 헤딩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당시 축구의 수준과 천부적인 축구 재능이 합쳐져서 덕에 못하는 게 없는 선수였다.

경기 중 여러 가지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던 선수였다. 수비진과 골키퍼를 제치고 빈골대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다 수비진이 달려오자 그를 다시 제치고 골을 넣기도 했고, 1962 칠레 월드컵 4강전 경기에서 2골이나 넣으며 상대 수비진을 부수다가도 상대 수비수가 알짱거리는게 짜증나서 그를 발로 찼다가 퇴장 당하는 일도 있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제패한 후 가린샤에게 우승 소감을 묻자 "여섯 경기만 이기고도 우승이라니, 이상해요."라고 말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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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IQ 33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당시 정확하지 못한 지능 테스트에 의한 잘못된 결과일 것이 자명하다. 참고로 저 테스트 인용하는 문건들 보면 펠레의 IQ도 68이 나왔다. 가린샤가 지적장애인이었던 것은 맞지만 IQ 33은 아니다. 진짜로 그 정도 IQ를 갖고 있었다면 인터뷰는 커녕 제대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가린샤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IQ 50–70의 지적장애 3급 정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것은 지적장애 문서를 참조.[2] 펠레는 이 월드컵을 모티브로 2014 월드컵 4강 직전 척추 골절을 당한 네이마르 없이도 브라질이 우승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실상은..[3] 여담으로 가린샤 없이 펠레 혼자서 뛴 경기에서는 11패를 기록했다.[4] 실제로 32국이 출전하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후의 월드컵도 한 팀이 우승까지 겪어야 할 경기 수는 고작 7경기(조별리그 3경기, 토너먼트 4경기) 뿐이다. 물론 본선에 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예선경기들은 논외다.[5] 이 발언이 그의 지능 수준이 낮아서 한 말 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이자 세계 최고 위상의 대회인 것 치고 허무할 정도로 경기수가 너무 적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