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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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초창기에는 칸쟈니∞였다가, 2024년 2월 4일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름의 의미는 전신 그룹명으로부터 EIGHT를 계승하고, 그 앞에 칸쟈니와 필적하는 단어에 해당하는 SUPER를 붙여 좀 더 강해진 그룹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4]# 주로 밴드 음악을 다루고 있다.
2. 멤버[편집]
2.1. 전 멤버[편집]
3. 인피니티 레코드[편집]
쟈니스 최초이자 유일의 자주 레이블.
2014년 8월 25일에 데뷔 10주년을 맞아 인피니티 레코드(INFINITY RECORDS)라는 자주 레이블을 설립하였다. 참고로 전용 레이블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칸쟈니∞의 첫 레이블이였던 테이치쿠 엔터테인먼트는 엔카 계열의 외부 레이블이였고 이 후 팝 음악, 록을 전문으로 하는 테이치쿠 산하 임페리얼 레코드로 옮겼다. 당시 직원은 아이돌을 처음 담당해보는 아저씨들 밖에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데뷔 후 몇 년 동안은 일 처리도 형편없었고 삽질도 많이 했다. 그래도 나중으로 갈수록 곡 수집력도 점차 올라갔고 멤버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시켜주며 그룹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갔다. 몇 년 간 동고동락하다보니 멤버들도, 팬들도 사무소보단 레이블이 함께 구른 동지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10주년을 맞아 계약이 종료되고 레이블을 옮긴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멘붕한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형 레이블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책임과 노력으로 칸쟈니다움을 추구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생각과 CD 수록곡의 구성에서부터 출시 시기, 투어의 기획까지 모두 스스로 종합 프로듀스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신들의 책임으로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에 팬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응원하게 되었다. 레이블 이름인 인피니티도 그룹명의 ∞(무한대의 기호)를 따서 멤버가 직접 작명한 것이다.
테이치쿠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전보다 일에 대해 더 조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세한 협의가 늘었고 곡 선택도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이미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들이 만드는 것에 대해 깊고 자세한 것까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생생한 이야기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고.
4. 특징[편집]
4.1. 전원 간사이 출신[편집]
그룹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멤버 전원이 간사이 출신이다.[5] 방송에서도 멤버들끼리 간사이벤으로 말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심지어 노래 가사도 간사이벤을 사용해 지역색이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초기 싱글들은 오사카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타이틀이 대부분이라 언제쯤 노래 제목에 오사카가 안 들어가게 되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참고로 같은 간사이긴 하지만 오사카 출신이 아닌 멤버들이 있다. 마루야마는 교토부 출신, 야스다는 효고현 출신이다. 2013년 발매된 곡 《TAKOYAKI in my heart》의 후렴에서는 오사카를 줄곧 부르짖는데,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에 둘이 콩트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다. 마루야마 曰: 사실은 나, 교토지만. 야스다 曰: 아, 나는 효고...
간사이 출신답게 방송 분위기가 타 쟈니스 그룹들에 비해 자유 분방하고 활기차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끄럽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 오랫동안 해온 레귤러 쟈니벤에서는 분위기가 너무 자유로워 게스트는 뒷전으로 두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멤버들 중 몇몇은 농담으로 아이돌보다는 게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간사이 출신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 뿐이다. 실은 낯을 가리는 멤버가 절반 이상.
4.2. SUPER EIGHT의 원점, 라이브[편집]
칸쟈니∞는 라이브를 반복해서 자라왔고, 앞으로도 라이브를 소중히 하고 싶다는 의식이 있어요.
쇼치쿠좌의 시절부터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소중히 해서 퍼포먼스를 해왔고
1년에 한 번은 꼭 콘서트를 하자고 결심하거나 47도도부현을 돌기도 하고.
역시 실제로 만나서 감사를 전할 수 있는게 콘서트라고 생각하니까요.
《Myojo》 2012년 2월 호 마루야마의 말
객석이 텅텅 비어있던 쇼치쿠좌의 시절을 경험하며 헝그리 정신을 배우고 작은 홀부터 야외 스타디움까지 다양한 공연장에서 팬들을 만나며 팬과 마음과 힘을 뭉친 것이 지금의 칸쟈니 에이또를 있게 했다.
MC는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입이 아플 정도이고 기발한 기획도 정말 많이 한다. 콩트는 물론, 센터 결정전이나 팬들의 표를 걸고 팀별 대항전을 하기도 하고 레귤러 방송에서 인기 있었던 게임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멤버들 모두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팬의 시선이 되는 것. 팬들이 어떤 것을 좋아할지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두고 라이브에 임하고 있다.
또, 멤버 전원이 저마다 악기 포지션이 있으며 밴드 연주가 가능한 그룹이다. 2013년에는 요코야마가 트럼펫을 맡으며 밴드에 있어 더 깊이 있는 사운드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밴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같은 사무소 선배인 TOKIO처럼 직접적으로 밴드 아이돌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나 데뷔 전 크리콘에서부터 공연장에서는 꾸준히 밴드 곡을 선보여왔다. 2010년을 기점으로 밴드곡의 싱글을 발매하는 등 음악적으로 변화가 생기는 중. 뮤직 스테이션 같은 음악방송에서 풀 세션으로 싱글 곡을 소화해내기도 한다.
4.3. 다양한 파생 캐릭터[편집]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에이또렌쟈가 있다. 칸쟈니∞의 웹일기 서비스인 칸쟈니 전대 ∞ 레인저를 패러디해 콘서트에서 시작한 콩트로 요코야마에 의해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훗날 2편의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에이트레인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에이또렌쟈 이외에도 사랑스러운 아줌마들 7인의 오캉, 청부업자 8UPPERS, 야쿠자 보르도 조(暴留堂組), 공식 여동생 그룹 캔쟈니,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프레킨에이또 등 앨범, CM, 예능의 캐릭터로 이루어진 유닛이 있다.
4.4. 그룹 愛[편집]
칸쟈니∞는 형제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로 가족 이상의 존재예요.
친구, 가족, 그리고 칸쟈니∞라는 카테고리가 있다고 할까요.
《朝日新聞連載 七人七色》 2009년 12월 18일호 요코야마 유
칸쟈니에이또를 좋아해 준다면
무라카미 싱고를 싫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Myojo》 2012년 4월호 무라카미 싱고
나에게 있어서 칸쟈니에이또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몇 번이나 넘어 초월한 거야.
2012년 칸쟈니∞ 핫사이 팜플렛 《Dear. Eighter》 마루야마 류헤이
저에게 있어서 개인의 일도 중요하지만 역시 그룹이 가장 중요해요.
에이또만 소중하고 좋을 정도로. 언제나 에이또를 생각하고 있어요.
《朝日新聞連載 七人七色》 2009년 11월 13일호 야스다 쇼타
그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전력으로 도와줄 거야.
도와줄 능력이 없으면 같이 자폭할 거야.
2014년 11월 20일 웹일기 《倉'mas 0》 오쿠라 타다요시
4.4.1. 멤버들의 사이[편집]
갖은 고생을 함께 겪었다 보니 멤버들 간의 우애도 돈독하고 사적 만남도 잦은 편이다. 일본 연예계 특성상 그룹으로 같이 일하는 멤버들은 사적으로 잘 만나지 않는 편이고, 몇년을 같이 일해도 번호도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칸쟈니∞의 경우는 멤버들끼리 여행도 자주 가고 밥도 자주 먹는다고. 마루야마와 무라카미는 함께 산 적도 있다. 멤버들 모두 두루두루 친하지만 시기별로 자주 만나는 멤버들이 달라지기도 한다. 자주 어울려 노는 만큼 재밌는 이야깃거리도, 싸우고 화해한 일화도 제법 생긴다. 간혹 다른 가수들의 공연장에서 멤버끼리의 목격담도 많이 올라오는 편.
콘서트에서 멤버들끼리 논 에피소드를 많이 푸는 편인데, 그때마다 다른 멤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왜 나는 안불렀냐, 왜 나만 빼고 노냐, 나 그때 한가했다 라고 서운함을 표출한다.
오쿠라는 칸쟈니 멤버들을 어릴때부터 봐왔고 그룹 안에서 막내인데다가 실제로 형이 없으니 모두를 형으로 여기고 가족같다고 언급하였다.
5.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SUPER EIGHT/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들은 좋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요? 아저씨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 멋있네요.
언제까지고 피터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할까요.
칸쟈니∞는 개개인도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팀으로서 안심감과 기대에 부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Cut》 2017년 8월호 후루타 아라타의 말
일본을 대표하는 연말 가요제인 NHK 홍백가합전에 9년 연속 출장하였고 5대 돔 투어도 꾸준히 계속 되고 있다. 현 쟈니스 탤런트 중 그룹으로는 가장 많은 칸무리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으로서도 드라마/영화, 부타이, 버라이어티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는 중.
2012년부터 모집을 시작한 유료 단독 팬클럽 회원수는 2018년 10월, 61만을 넘었다. 그룹 인지도의 경우, 2017년 닛케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열 명 중 일곱 명이 아는 정도. 활동 초기부터 개인 활동이 많았던 멤버들의 경우에는 그룹과 개인 인지도가 비슷한 수준이나 다른 멤버들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룹으로의 일과 솔로 활동이 늘면서 매년 그룹과 멤버, 개개인 멤버들간의 수치가 좁혀져 점차 안정적인 균형을 맞추어 가는 중이다.
6. 음반[편집]
자세한 내용은 SUPER EIGHT/음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레귤러[편집]
이 외에도 현재 멤버별로 각각 정보 방송,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라디오 등에 출연 중이다. 일주일 중 6일은 멤버들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SUPER EIGHT/레귤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편집]
- 이미지 컬러는 사무소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들이 고른 색인데, 색을 고를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무라카미가 모두가 꺼리던 나스(보라색)를 맡게 되었다고.오쿠라의 말에 따르면 멤버들이 오래돼서 다 각자 정한 줄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은 요코야마가 색깔을 정해준 것이라고 한다.[6] 참고로 원래는 현재 블랙을 맡고 있는 요코야마가 그린이였고, 그린을 맡고 있는 오쿠라는 연두색이였다. 이유는 초록색이 두 명이나 있으면 보는 사람이 '왜 그린이 둘이나 있는겨?!' 라며 재밌어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헷갈릴 뿐이라, 2006년 칸쟈니∞ Concert Tour 2006 Funky Tokyo Osaka Nagoya부터 요코야마는 블랙으로, 오쿠라는 그린으로 바뀌었다.- ||<table bgcolor=#ffffff><table bordercolor=#808080> {{{#!wiki style="margin: -5px -10px"
샴푸의 디자인 컬러에 주황색과 검정색이 없는 점도 광고에 이용되었다.
- 따로 리더를 두고 있지는 않다. 한 때 라디오에서 리더를 정하자는 기획을 하기도 했지만 흐지부지 되었다. 다만 그룹 내 실질적인 리더 역할은 요코야마와 무라카미가 하고 있으며, 실제로 최연장자인 요코야마를 동생들이 리더라며 몰아가기도 한다. [7]
- 사실 액면상으로 안 느껴져서 그렇지 아이돌치고는 제법 나이가 있는 편이다. 일단 2015년에 전원 서른을 넘겼고 최연장자인 요코야마가 2018년 기준으로 생일이 지나서 만 37세가 되었다.
전혀 그렇게 안보이는 게 함정참고로 막내인 오쿠라는 Kis-My-Ft2의 최연장자인 키타야마 히로미츠와 동갑내기 친구다. 다들 주니어 생활을 7~8년[8] 씩은 하고 데뷔했다.
- 신장차가 격하다. 가장 키가 큰 막내 오쿠라 타다요시가 180cm인 반면, 가장 키가 작은 야스다 쇼타의 키는 164.5cm이다.[출처] 참고로 키 순서는 오쿠라> 요코야마> 마루야마> 무라카미> 야스다 의 순.
- 칸쟈니∞ 멤버들을 모델로 한 만화가 존재한다. 혼마니칸쟈니∞!(전 5권), 오오키니칸쟈니∞!(전 5권)
- 아라시, 타키&츠바사, 이쿠타 토마 등 황금기 시절의 쟈니스 멤버들과 같은 시기에 주니어 활동을 해온터라 함께 있는 사진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사골이긴 하지만공통의 에피소드도 많아 서로의 레귤러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꿀잼을 보장한다. 일단 다들 친했고 예능감들이 좋아서 분위기도 부드럽고 재미있다.
- 2024년,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발표한 전 악곡들을 전 음원 사이트에 공개하였다.# 1월 1일에는 2019년 이후로 발표된 싱글/앨범/베스트 앨범 2장, 1월 24일에는 데뷔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정규 앨범 10장, 1월 31일에는 커플링곡을 포함한 전 싱글 작품 42장을 순차적으로 공개하였다. 대표적인 한국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도 KANJANI∞로 검색하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