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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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편집]
조선의 임경업 장군은 1594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병자호란 때 크게 활약했으며 이괄의 난에서도 승리를 거둬 큰 공을 세운 장군이었다. 그러나 1646년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결국 억울하게 옥사했다.
임경업이 억울하게 죽은 이후 복권 시도가 이어졌으며, 결국 사후 50년만인 숙종 23년(1679년)에 그를 옛 관직에 추서하고 충민공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사당도 같이 세웠다. 이로써 임경업의 복권이 이뤄졌다.
1706년에는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고, 영조 3년인 1727년에 사당의 이름을 충렬사라 명하였고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서원 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3. 충렬사비와 정렬비[편집]
3.1. 충주 충렬사비[편집]
3.2. 충주 정렬비[편집]
사당 앞에는 임경업의 아내 완산 이씨(진안대군의 7세손)의 정렬비가 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이 청나라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청나라의 옥중에서 자살했다. 청나라에서는 아내의 명나라를 향한 충성심에 감동하여, 시신을 정중히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정렬비가 세워졌으며, 정렬비의 정식 명칭은 '대명충신 조선 임 장군 경업 처 정부인 완산 이씨 정렬비(大明忠臣 朝鮮林將軍 慶業 妻貞夫人完山李氏貞烈碑)' 이다. 정렬비는 임경업을 복권한 숙종 때에 세워졌다.
4. 기타[편집]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8년 11월 23일에 기념 식수하였다.
5. 사적 제189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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