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낙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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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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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 국조 ~ 문종 · 선종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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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고려의 제왕
고려 정종의 왕자
낙랑후 왕경 | 樂浪侯 王璥
생몰연도연대 미상
본관개성 왕씨
경(璥)
부모부왕 정종
모후 용의왕후
형제자매4남 1녀 중 3남
배우자낙랑후비(樂浪侯妃)로 추정
자녀미상
지위제왕#諸王(諸王)[1]
직위개부의동삼사 수태보
(開府儀同三司 守太保)
상서령 상주국 낙랑후
(尙書令 上柱國 樂浪侯)
수성협리봉덕공신
(輸誠協理奉德功臣)
작위낙랑후(樂浪侯)[2]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고려 정종왕자.

본명은 왕경(王璥)이고, 작위는 낙랑후이다.


2. 생애[편집]


고려 정종과, 문하시중에 추증된 한조의 차녀인 용의왕후 한씨의 차남이다. 애상군 왕방(王昉)의 동생이고, 개성후 왕개(王暟)의 형이다.

1046년 부왕인 정종이 죽고 숙부인 문종이 즉위한 뒤인 1052년 10월 11일에 개부의동삼사 수태보 겸 상서령 상주국 낙랑후(開府儀同三司 守太保 兼尙書令 上柱國 樂浪侯)로 책봉되고 식읍 3천호를 받았으며, 수성협리봉덕공신(輸誠協理奉德功臣)의 공신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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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문종 때부터 왕위를 이을 왕자를 '태자(太子)'로 삼고 나머지 왕자들은 '제왕(諸王)'이라 칭했다. 이후 충선왕 때부터는 '세자(世子)'와 '왕자(王子)'로 개칭되었다.[2] 낙랑후는 형제 상속을 기준으로 왕위 계승 2순위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었다. 참고로 1순위는 평양후(平壤侯), 3순위는 개성후(桂城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