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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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수.
그는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서울대 중문과에 71학번으로 입학했다. 국립대만정치대 대학원을 거쳐 1992년 서울대에서 ‘유종원 산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1995년 한양대 중문과 교수를 거쳐 1995년부터 서울대 중문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서울대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관악교수테니스회에 소속돼 테니스를 즐겨 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학부생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공감할 줄 알아 학생들 역시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를 찾아가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강의 도중 “나는 한중 수교 전에 공부를 했었어서 대만에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는 석사만 했어도 교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많이 나는 시기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그때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도 자리를 잡기 힘든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희망을 잃지 많고 열심히 살면 뜻을 이룰 것이라는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2002년 한국중국산문학회장, 2009년 한국중국어문학회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끼쳤고 ‘유종원 시선’(2002), ‘유종원집1∼4’(2009) 등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선총원 산문집 번역본이 나오자 이를 환영하기도 하였다.
2023년 3월 5일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수.
2. 생애[편집]
그는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서울대 중문과에 71학번으로 입학했다. 국립대만정치대 대학원을 거쳐 1992년 서울대에서 ‘유종원 산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1995년 한양대 중문과 교수를 거쳐 1995년부터 서울대 중문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서울대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관악교수테니스회에 소속돼 테니스를 즐겨 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학부생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공감할 줄 알아 학생들 역시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를 찾아가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강의 도중 “나는 한중 수교 전에 공부를 했었어서 대만에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는 석사만 했어도 교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많이 나는 시기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그때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도 자리를 잡기 힘든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희망을 잃지 많고 열심히 살면 뜻을 이룰 것이라는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2002년 한국중국산문학회장, 2009년 한국중국어문학회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끼쳤고 ‘유종원 시선’(2002), ‘유종원집1∼4’(2009) 등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선총원 산문집 번역본이 나오자 이를 환영하기도 하였다.
3. 사망[편집]
2023년 3월 5일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4. 저서[편집]
- 당송 팔대가의 산문 세계
- 중국의 고전 산문
- 조선에 전해진 중국 문헌
- 육주약선 · 육고수권 : 조선 정조가 편정한 당나라 재상 육지의 국가경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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