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고려) (r1판)

편집일시 :


묘호
명종(明宗)
시호
황명광효대왕
(皇明光孝大王)
작위[1]
익양후(翼陽侯)
능묘
지릉(智陵)

왕(王)

호(晧)

지단(之旦)
절일
건흥절(乾興節)
왕후
광정왕후(光靖王后)
부왕
고려 인종
모후
공예왕후(恭睿王后)
종교
불교
생몰
년도
음력
1131년 10월 17일 ~ 1202년 11월 17일
양력
1131년 11월 8일 ~ 1202년 12월 3일 (71세 25일)
재위
기간
음력
1170년 9월 기묘일 ~ 1197년 9월 계해일
양력
1170년 10월 13일 ~ 1197년 11월 4일 (27년 23일)

1. 소개
2. 기타 창작물


1. 소개[편집]


고려 제19대

고려 제17대왕 인종아들이자 고려 제18대왕 의종의 동생이다. 의종에게 아들들이 있었고, 의종 다음으로도 대령후 경이 있었기에 순번상 왕위계승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는데..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문신들을 살육하고 의종과 태자를 몰아낸 다음 유약한 성격인 그를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약간은 조선 중종과 비슷하지만 쿠데타 세력의 성격이 매우 달랐다.

사실상 무신정권허수아비 임금이었다. 게다가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문신들을 죄다 족쳐버린데다가 그 무신들도 결국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이고이의방이 죽이고 이의방정중부가 죽이고 그 정중부는 경대승이 죽이지만 계속 권력자가 교체되었으며 여기에 민중봉기도 자주 터지는 등 이래저래 사회가 막장이었다.

또한 유약한 성격은 물론이고 심각한 애처가딸바보적인 성향도 있었다. 애첩인 순주가 죽고 거의 반년 후인 1180년에 명춘마저 죽어버리자 우울증에 시달려 공예태후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다 들을 정도로 울어댔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후궁들 중에서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며 이미 시집간 둘째 딸인 수안궁공주를 측근으로 삼아 자신에게서 밤낮으로 떨어지지 못하게 한다음 밤에는 품에 끼고 잠을 자기도 했고 이 기간은 무려 5 달 가까이 되었다. 자기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며 시집 간 딸을 불러들여서 하루종일 자신의 옆에만 있게 하고 잘 때는 끼고 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결혼한지 1년만에 독수공방을 하게 된 사위가 분통을 터트리며 파혼을 요청하기에 이르었고, 그렇기에 명종은 결국 사위를 수창궁(壽昌宮)의 동쪽 태후(太后) 행궁(行宮)에 거처(居處)하게 하고, 공주를 보내 남편을 위로하게 했고 결국 5달만에 딸을 집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리고 순주와 명춘 및 후궁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궁내에 불러들여서 화려한 오색 옷들을 입히고 놀기 바쁘다보니 궁 내가 하도 시끄러워서 자연히 군주로서의 권위는 저 너머로 떨어졌고, 경대승 정권 당시임에도 무관들이 전부 마음 속으로 명종을 비난하고, 수군거리며 탄식했다고 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경대승 정권 이전의 정중부 정권 당시에는 음악이나 여색 등에 빠지는 것을 정중부 정권에서 제재했기 때문에 의종처럼 마음대로 노는 것도 못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중부 일가가 경대승에게 몰살당한 후에는 자유로워진 명종은 이런 방탕한 행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과연 의종의 동생이다.

그리고 경대승이 죽은 후 아주 잠시 왕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경주로 낙향했던 이의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였다. 이의민은 경대승이 두려워 경주로 도망갔었다. 이에 대해서는 수도의 군부 세력을 제어하고자 하였다 보는 시각이나, 경대승 잔당에 대한 문제 등이 추측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이의민은 선왕을 시해한 자인데다 천민 출신으로 그나마 만만한 상대이기도 했기에. 때문에 명종은 임금 스스로 이의민을 불러서 관직을 제수함으로써 기회를 차버렸다. 그 때문에 고려의 무신정권기간이 길어지게 만든 인물이라서 심하게 까이기도 하는 왕이다.

그가 이의민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도 무신정변이라는 비정상적인 쿠데타에 의해 옹립된 왕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군부(정중부)에 의해 옹립된 왕이기 때문에 문벌귀족들 보다는 군부세력이 자신을 옹호할 세력이라고 판단하였고 이의민을 불러올린 것이다.

정중부 일당이 세운 왕이었기 때문에 결국 이의민을 제거한 최충헌에 의해서 폐위되었고 최충헌은 그의 아우 신종을 왕으로 세웠다. 명종은 그 후 이질에 걸렸지만 의원의 치료를 거부해 죽었다. 그 때 한 말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폐위도 당했다" 였다. 실제로 사망 나이가 72세로 당시의 기준으로는 결코 단명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후사는 그에게 이어졌으니, 신종의 뒤를 이은 신종의 아들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다가 폐위되자 명종의 아들 강종이 왕이 됐고 그 후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그의 자손이 왕이 되었다. 덧붙여서 공양왕의 경우 부계로는 신종의 7대손이지만, 모계 쪽으로는 그의 후손이 된다.


2. 기타 창작물[편집]


파일:attachment/명종/고려명종.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코에이징기스칸 4에서 시나리오 1의 고려 국왕으로 등장하고 마치 무인정권을 통해 등극한 인물인양 설정되어있으나, 능력치나 수명은 안습이다. (무장들을 규합하여 쿠데타로 정권 잡았다며.. 이게 뭐야;;) 고려 왕 중 두 번째로 장수한 임금인데도(1위는 25대 충렬왕으로 73세) 십중팔구 얼마 못 가 병사해 버려[2] 컴퓨터가 플레이시 거의 수하 장수로 있는 최충헌이 후계자가 되어 "최씨 고려"가 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연회를 해서 빨리 자손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정발판에서는 얼굴이 그나마 한국 왕 답지만 일본판에서는 무슨 왕서방으로 등장, 지못미. 그래도 사실 역사적 행적으로 봐도 그다지 좋은 능력치를 받기는 어려울 테니, "등장했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할지도.

무인시대에서는 김병세가 배역을 맡았다. 1회에 등장하여 최충헌 정권 초반부인 133회에 퇴장했으니 드라마 진주주인공인 이의민보다도 더 오래 등장한 셈.

작중 위치는 권력없는 나약한 허수아비이긴 한데, 오랜기간 온갖 몹쓸일을 당하다보니 명종역시 점차 흑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즉위할때만 해도 뭔 일이 벌어지면 눈튀어나올듯이 놀란표정을 짓는데다, 극초반부 금나라와의 외교분쟁이 발생하자 태후 앞에서 울먹거릴 정도로 그저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만 보인다. 그러나 정중부 정권시점에선 은근히 자기고집이 생기더니, 후반부에 이르러선 초반에 비해선 강단있고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흑화해버린다. 인물 묘사의 변화 및 배우의 열연으로 인해 후반부엔 얼굴서부터 명종의 성격이 까칠하다는게 드러난다.

또한 권력에는 부모자식도 없다는걸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나약한 인물이다보니 태후에 무작정 기대는 모습을 보이더니 정중부정권 쯤 부터는 은근히 태후와 대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보당의 난때는 태후가 의종을 처단해야한다고 말하자, 명종은 울먹거리며 어찌 형님을 시해할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나 경대승 정권쯤에 와서는 태자의 입지가 커지자 태자를 정치적인 적으로 여기고선 정말로 태자를 제거할 생각까지 한다.

경대승 때는 경대승이 충신으로 그려지면서 경대승을 의심하고 견제하는 수준의 묘사도 나왔다. 결국 그 때문에 왕실 권위 살리기도 실패한다. 대신 명종이 경대승을 견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작중에서도 그렇고 고려사의 기록을 봐도 그렇고 경대승이 정권을 잡으며 내걸었던 명분이 '무신정변 이전으로의 복귀' 였는데, 이것과 '명종에 대한 충성' 은 서로 완전히 모순된다. 실제로, 학계 일각에서는 만약 이의민이 의종을 시해하지 않았더라면 경대승에 의해 의종이 복위되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다른 무인집권자들도 그 힘에 억눌리다가 힘을 잃으면 바로 버리고 사정없이 내치는 면모도 보였다. 물론 다음 집권자가 권력을 쥐고 정국을 장악하면 다시 힘없는 군주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최충헌은 이런 명종의 처신을 경계해 페위시키는 것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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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즉위 전[2] 1189년에 44세이고 첫 아이가 9,10세쯤 되면 대부분 눈을 감게 되는 쪽으로 설정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