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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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그리시댄 마리노래리 송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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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미국 스포츠 사이트 the Athletic에서 NFL 역사상 최고의 선수 100명을 발표했다.
1위2위3위4위5위
톰 브래디짐 브라운제리 라이스로렌스 테일러레지 화이트
6위7위8위9위10위
조 몬태나페이튼 매닝월터 페이튼조니 유나이타스딕 버커스
11위12위13위14위15위
오토 그레이엄앤서니 무뇨즈돈 허슨조 그린존 엘웨이
16위17위18위19위20위
디콘 존스레이 루이스댄 마리노로니 로트브루스 스미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애런 로저스브렛 파브새미 보애런 도널드존 해나
26위27위28위29위30위
로드 우드슨배리 샌더스디온 샌더스에밋 스미스멜린 올슨
31위32위33위34위35위
밥 릴리앨런 페이지브롱코 나구르스키지노 마체티J.J. 왓
36위37위38위39위40위
포레스트 그렉잭 램버트랜디 모스에드 리드에릭 디커슨
41위42위43위44위45위
O. J. 심슨짐 파커드루 브리스브루스 매튜스래리 앨런
46위47위48위49위50위
토니 곤잘레스랜디 화이트시드 럭맨스티브 영딕 레인
51위52위53위54위55위
르데니언 톰린슨잭 햄게일 세이어스척 베드나릭랜스 알워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롭 그론카우스키마이크 웹스터허브 애덜리주니어 슈조너선 오그덴
61위62위63위64위65위
바트 스타레이 니츠케레이먼드 베리월터 존스조 슈미트
66위67위68위69위70위
얼 캠벨진 업쇼찰스 우드슨테리 브래드쇼마셜 포크
71위72위73위74위75위
멜 블런트아드리안 피터슨매리언 모틀리바비 벨폴 워필드
76위77위78위79위80위
아트 셸테드 헨드릭스로저 스타우벅마이크 헤인스윌리 레니어
81위82위83위84위85위
존 맥키켈렌 윈슬로레오 노멜리니멜 하인불독 터너
86위87위88위89위90위
벅 뷰캐넌챔프 베일리대럴 그린바비 레인윌리 브라운
91위92위93위94위95위
윌리 데이비스레니 무어마이크 싱글티어리엘로이 허시프랜 타킨턴
96위97위98위99위100위
마이크 딧카짐 오토스티브 밴뷰런데르몬티 도슨데릭 브룩스
출처



파일:external/a.espncdn.com/play_a_dan-marino_mb_576.jpg
마이애미 돌핀스 No.13
대니얼 콘스탄틴 "댄" 마리노 주니어
Daniel Constantine "Dan" Marino, Jr.
출생1961년 9월 15일 (62세)
펜실베이니아피츠버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생년월일1961년 9월 15일 (62세)
출신지펜실베이니아피츠버그
대학교피츠버그 대학교
체격193cm, 101.6kg
포지션쿼터백
프로입단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7순위
마이애미 돌핀스 지명
소속팀마이애미 돌핀스 (1983~1999)
경영 마이애미 돌핀스 특별고문 (2014~)

마이애미 돌핀스 영구결번
No.13

1984년 NFL 정규시즌 MVP
조 사이즈먼
(워싱턴 레드스킨스)
댄 마리노
(마이애미 돌핀스)
마커스 앨런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

1. 소개
2. 플레이 오프 성적
3. 은퇴 이후
4. 여담




1. 소개[편집]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마이애미 돌핀스.

슈퍼볼 우승 빼고 모든 것을 다 가져봤기 때문에 NFL계의 무관의 제왕으로도 불린다.[1] 패스달인으로 은퇴 할 당시 NFL 통산 최다 터치다운 패스 성공, 통산 최장거리 패스 야드, 단일 시즌 최장 패스 야드 기록(5084야드)[2]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통산 기록은 브렛 파브에게, 단일 시즌 기록은 2011년 드류 브리스에게 경신되어 버린다.[3]

정규시즌 성적은 147승 93패로 매우 준수하다. 그러나 데뷔 2년차이자 풀타임 주전 승격 첫해인 1984년 시즌에 제19회 슈퍼볼(Super Bowl XIX)에 진출해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패한 뒤, 슈퍼볼 우승은 고사하고 슈퍼볼 진출도 못하는 등 플레이오프에서의 성과가 명성에 비해서 빈약한 감이 있다. [4]


2. 플레이 오프 성적[편집]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쿼터백이 왜 이렇게 빈약한 플레이오프 성적을 남겼나하면
  • 첫번째로 마리노와 같은 해에 드래프트를 통해 NFL에 입문한 동기들이 너무나도 쟁쟁한 것이 원인 중의 하나다. 마리노와 같은 해에 입단한 1982년 드래프트 클래스에는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존 엘웨이를 비롯하여, 팀을 슈퍼볼 4년 연속 진출로 이끈 짐 켈리 등 1라운드에서만 무려 6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마리노도 그 중 한명이기는 했지만 동시기에 비슷한 실력을 갖춘 뛰어난 라이벌이 존재했다는 것이 마리노의 불운이었다. 특히 버펄로 빌스의 짐 켈리는 마리노와 같은 AFC 동부지구에 속하면서 전성기를 같이 보낸지라 번번이 마리노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 두번째 원인은 마리노가 현역으로 있는동안 돌핀스가 마리노를 뒷받침할 최강의 전력을 구축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마리노가 있었던 시기의 돌핀스는 수비는 물론이요, 공격에서 마리노를 서포트할 변변한 러닝백도 없이 오로지 마리노의 패싱게임에만 의존하는 팀 컬러였다.[5][6]그리고 마리노의 패싱게임에의 의존도가 높은 것 치고는 마리노와 짝을 이루어야할 리시버진도 다른 우승팀과 비교하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7].

이는 마리노의 컨디션의 팀의 부침을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한판만 지면 그대로 탈락인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팀 수비가 마리노만 집중적으로 마크하면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조 몬태나에게는 제리 라이스라는 명예의 전당 콤비를 이룬 리시버가 있었고, 라이벌이던 존 엘웨이가 선수생활 초기의 좌절 끝에 2년 연속 슈퍼볼 챔피언으로서 은퇴할 수 있었던 것도 러닝백 터렐 데이비스-리시버 로드 스미스-타이트 엔드 섀넌 샤프라는 훌륭한 공격수들이 등장하면서 공격에서 존 엘웨이의 부담을 덜어줬기 때문이다. 짐 켈리역시 러닝백 서먼 토마스-리시버 안드레 리드라는 뛰어난 공격수들이 켈리를 받쳤고 트로이 에이크만-에밋 스미스-마이클 어빈으로 이루어지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러닝백-리시버의 삼각 편대 등 우승을 하는 팀에는 항상 쿼터백과 짝을 이루는 걸출한 플레이어들의 서포트가 있어왔다. 그러나 마리노에게는 선수생활 내내 그런 서포터들의 도움이 다른 라이벌에 비하면 매우 부족했고, 반대편의 수비진 역시 70년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다른 팀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슈퍼볼 도전에는 부족한 팀이었다.

비록 위와 같은 이유로 슈퍼볼 우승이 없어 우승반지는 없지만, 은퇴할 때까지 대기록을 세우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까지 되었기에 마이애미 돌핀스의 전설이자 NFL의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명 선수로 기억된다. 그래서 마이애미 돌핀스의 홈구장의 별명도 그를 기리기 위해 '댄 마리노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경기장 명칭권이 자주 바뀐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3. 은퇴 이후[편집]


2000년 3월에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2002년부터 CBS의 NFL 프리게임쇼인 NFL Today의 애널리스트를 하고 있었으나 2014년에 방송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마이애미 돌핀스로 복귀하여 특별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4. 여담[편집]


  • 짐 캐리의 출세작인 코미디 영화 '에이스 벤추라'에서 선수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 어느 정도 비중있는 역이었는데,[8] 당시 국내에선 미식축구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 개봉했을 때 짐 캐리 옆의 쟤는 뭐냐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짐 캐리 정도 이미지는 아닌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에이스 벤추라 이외에도 여러 영화들에 본인 역할로 우정출연. 리틀 니키에서는 사탄에게 내 영혼을 팔 테니 우승 좀 시켜달라(!!)고 부탁하지만 사탄은 다른 팀 팬이었기에(...) 그럴싸한 이유로 둘러대며 영혼을 받는 걸 거절했다.

  • 톰 브래디 이전의 GOAT 조 몬태나와 라이벌리가 있었다. 실력은 마리노가 나으나 몬태나가 팀을 더 잘 만났다는 류의 주장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론 슈퍼볼 우승이 하나도 아니고 네 개가 차이가 나고 심지어 슈퍼볼 맞대결에서도 승리하였기에 선수로서의 위상은 몬태나가 압도적으로 위라고 인정받고 있지만, 마리노의 실력도 그만큼 인정을 받는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다만 선수 생활은 마리노가 몬태나보다 50경기 가까이 더 뛰며 더 길게 하였다.

  • 위에 틀로 표기된 The Athletics 선정 NFL Top 100에서 전체 18위, 쿼터백 7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위의 6명의 쿼터백들은 최소 2번의 우승이 있는 선수들이다. 또한 전 포지션을 통틀어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들 중에서는 앤서니 무뇨즈, 디콘 존스의 뒤를 이은 3위.

  • 한동안 NFL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드래프트된 유일한 피츠버그 대학교 출신 선수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댄 마리노 본인의 은퇴 이후로도 긴 시간 이어지던 이 기록은 2022년 드래프트에 들어서야 역시나 피츠버그 대학교 출신인 쿼터백 케니 피켓이 1라운드에서 드래프트되면서 깨지게 되었다. [9]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신성 브록 퍼디의 아버지가 마리노의 팬이라고 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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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챔피언 우승을 몇번이나 했느냐로 뛰어난 선수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폐단을 바로잡은 선례를 남긴 선수이다. 이와 비슷한 선수로 배리 샌더스가 있다.[2] 좀 한다 싶은 쿼터백들이 4천야드를 가볍게 찍고 5천야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요즘 시대와는 달리, 그 시절에는 3천야드를 찍으면 준수한 성적이었고 4천야드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등장하는 시대였다.[3] 그리고 2013년 페이튼 매닝이 단일 시즌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4] 현대에는 애런 로저스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우승 전에는 페이튼 매닝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단 로저스는 슈퍼볼 우승을 했고 페이튼 역시 2회 슈퍼볼 우승을 했기 때문에 마리노와 비교해서는 ‘그나마’ 낫다고 위안(?) 받을 수 있을 것이다.[5] 이것이 댄 마리노가 은퇴시에 패싱과 관련된 각종 최고기록을 가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였다.[6] 한 예로 댄 마리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슈퍼볼 출전이었던 슈퍼볼 XIX가 있었던 1983-84 시즌 오프닝 전, 당시 돌핀스는 러싱공격의 수훈갑이었던 마크 오버스트릿{Mark Overstreet}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는 비극을 당했고 이후 돌핀스의 공격력은 마리노의 패싱에 의존하는 단순한 플레이로 변화를 맞았다. 이렇게해서 진출했던 슈퍼볼에서 마이애미는 샌프란시스코의 러닝백 로저 크레이그의 맹활약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렇게 마리노의 슈퍼볼 데뷔전은 패전이 되고 말았다.[7] 마크 클레이튼 Mark Clayton과 마크 '슈터' 듀퍼 Mark Duper 콤비가 10년간 같이 플레이하긴 했지만 정작 이분들은 플레이오프만 가면 화면에 전혀 안비춰졌던 것이 문제(...)[8] 게다가 범인에게는 원한을 받아 납치까지 당했다. 1편 전체 영화 줄거리를 놓고 보면 의도하지 않았어도 만악의 근원처럼 나온다.[9] 댄 마리노는 1라운드 27픽, 케니 피켓은 1라운드 20픽으로 NFL에 드래프트되었다.[10] 퍼디 역시 이 때문에 마리노를 좋아한다고 했으며, 둘 다 등번호 13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