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몬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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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몬태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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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VI
XIX
XXIII
XXIV




파일:300px-Super_Bowl_XVI_Logo.svg.png 슈퍼볼 XVI MVP

짐 플런켓
(QB / 오클랜드 레이더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존 리긴스
(RB / 워싱턴 레드스킨스)

파일:300px-Super_Bowl_XIX_Logo.svg.png 슈퍼볼 XIX MVP

마커스 앨런
(RB /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리처드 덴트
(DE / 시카고 베어스)

파일:300px-Super_Bowl_XXIV_Logo.svg.png 슈퍼볼 XXIV MVP

제리 라이스
(WR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오티스 앤더슨
(RB / 뉴욕 자이언츠)


파일:NFL 로고.svg 1989년 / 1990년 NFL 정규시즌 MVP

부머 어사이어슨
(QB / 신시내티 벵골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서먼 토머스
(RB / 버펄로 빌스)


파일:NFL 로고.svg 1989년 NFL 올해의 공격수상

로저 크레이그
(R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워런 문
(QB / 휴스턴 오일러스)


파일:NFL 로고.svg 1989년 버트 벨상

랜들 커닝햄
(QB / 필라델피아 이글스)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랜들 커닝햄
(QB / 필라델피아 이글스)


파일:NFL 로고.svg 1986년 NFL 올해의 재기상

수상자 없음

조 몬태나
(QB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토미 크래머
(QB / 미네소타 바이킹스)

찰스 화이트
(RB / 로스앤젤레스 램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No.16
조 몬태나
Joe Montana

본명
조셉 클리포드 몬태나 주니어
Joseph Clifford Montana, Jr.
출생
1956년 6월 11일 (67세)
펜실베이니아 주 뉴이글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포지션
쿼터백
신체
188cm / 93kg
학력
노터데임 대학교
프로 입단
1979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82순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지명
소속 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1979~1992)
캔자스시티 치프스 (1993~1994)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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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미식축구 선수로 前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캔자스시티 치프스 소속 쿼터백. 별명은 Joe Cool[1]이다

노터데임 대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테리 브래드쇼를 잇는 슈퍼볼 4회 우승의 쿼터백이자[2] 슈퍼볼 MVP 3회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3]

이 때문에 수많은 미식축구 게임에서 NFL의 대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 세가가 발매한 메가드라이브의 미식축구 게임이 바로 조 몬태나 풋볼이었다.[4]

무엇보다도, 몬태나는 슈퍼볼 네 경기에서 인터셉션(상대 선수에게 공을 가로채이는 것)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실로 퍼펙트한 운영. 이러한 전적 때문에 당시 상대팀 선수들은 "악몽이란, 간발의 차로 이기고 있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조 몬태나가 필드에 들어서는 순간"이라고 할 정도였다.

아들이 두 명 있는데, 둘 다 현재 대학에서 쿼터백으로 뛰는 중. 장남 네이트 몬태나는 아버지의 모교인 노터데임에서 뛰다가 파사데나 시립대학교로 전학했다가 다시 1년간 노터데임으로 돌아왔다가 FCS 레벨로 내려가 몬태나 그리즐리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뛰었다. 2012 시즌에 한번 더 전학해 디비전 II 대학인 웨스트버지니아 웨슬리언에서 드디어 주전을 따내고 커리어를 마쳤다. NFL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았고 FA계약도 하지 않은 걸로 보아 프로 진출은 힘들 듯. 둘째인 닉 몬태나는 2011년 워싱턴 허스키스에서 레드셔츠 시즌을 포함해 2년을 후보 쿼터백으로 있었으나 주전경쟁에서 패배, 2년제 대학에서 한 시즌을 채우고 튤레인으로 전학했다.

미식축구 포지션 중에서는 그나마 피지컬이 덜 요구되는 쿼터백 포지션임을 감안해도 많이 마른 몸을 갖고 있다. 같이 샌프란시스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와이드 리시버 제리 라이스는 "몬태나는 종아리가 없는 남자다. 완전 새다리다." 하며 놀려대기도 했다.[5]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카메라에 자기 다리를 들이대며 35년동안 운동한 결과가 이 정도다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고.

2013년 2월 4일(한국시간)에 열린 슈퍼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vs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경기에서는 섬유표백제 'Tide' 광고에 '기적의 얼룩'으로 등장하였다. 슈퍼볼 광고 최고의 평을 받고 있는 중.

수려한 마스크와 조각같은 몸매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 VS 톰 브래디[편집]


2004년 쯤 보스턴 지역 언론에서는 젊은 나이에 4년만에 슈퍼볼 3회 우승을 달성한 톰 브래디를 조 몬태나에게 비교하면서 "브래디야말로 몬태나를 제치고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으로 남을 선수"라면서 당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 받던 조 몬태나를 넘는거 아니냐는 설레발을 쳤고 이에 많은 미식축구 팬들도 "4년만에 슈퍼볼 우승 3번에 슈퍼볼 MVP 2번이면 진짜 이러다가 브래디가 몬태나가 넘는거 아니야?" 라는 식의 진지한 비교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브래디는 슈퍼볼 XLII에서 일라이 매닝이 이끄는 뉴욕 자이언츠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전승준으로 쳐박히는 등 이후 10년간 슈퍼볼 우승을 추가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논쟁은 설레발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브래디는 12년만인 2015년 슈퍼볼 XLIX을 우승하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 영웅 조 몬태나와 함께 슈퍼볼 4회 우승의 최다 우승 타이 기록과 슈퍼볼 MVP 3회의 최다 수상 타이 기록에 도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2017년 슈퍼볼 LI에서 25점차 리드를 깨부수고 역전하여 5회 우승을 함으로써 슈퍼볼 역대 최다 우승 선수이자 슈퍼볼 역대 최다 우승 쿼터백이라는 타이틀과 슈퍼볼 MVP 최다 수상 기록인 4번째 슈퍼볼 MVP를 수상하며 조 몬태나와 테리 브래드쇼의 기록을 넘어섰고, 마침내 2019년 슈퍼볼 LIII에서 한번 더 우승하여 슈퍼볼 통산 6회 우승이라는 슈퍼볼 최다 우승 타이틀을, 2년 후 만년 플옵 탈락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해 슈퍼볼 55에서 우승하고 통산 슈퍼볼 7회 우승, 5회 MVP 수상으로 조 몬태나를 넘어섰다.[6] 슈퍼볼 LV 이후 ESPN 인터뷰에서 "현시대의 GOAT는 당연히 본인이 아닌 톰 브래디다."라고 인정했다.


3. 기타[편집]


  • ADK사에서 만든 대전 액션게임 월드 히어로즈의 캐릭터 죠니 맥시멈은 바로 조 몬태나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다만, 일본에서 느끼는 미식축구의 이미지 상 만들어진 캐릭터인 만큼,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형의 원본과 다르게 이 캐릭터는 그야말로 떡대형 캐릭터이다.

  • 영화 스카페이스의 주인공 토니 몬타나의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의 각본가 올리버 스톤이 조 몬타나에서 따온 것.

  • 만화 아이실드 21에서도 한번 언급되는데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라이몬 타로의 별칭이 몬타인데 정작 본인은 이 별칭을 매우 싫어했는데[7] 히루마 요이치가 그 별칭이 조 몬타나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넘어가서 이후로는 이 별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만 조 몬타나는 쿼터백이지만 라이몬은 리시버라는 포지션의 차이점이 있다.

  • 2020년 9월 27일 한 여성에게서 손주를 유괴당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이를 막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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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이 뒤지고 있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컴백 드라이브를 이끌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기에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료 51초를 남겨두고서 역전을 이끌어 낸 1981년 NFC 챔피언십 게임. 당시의 플레이는 아직도 "The Catch"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플레이로 기억되고, 하이라이트 필름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리고 종료 39초를 남기고 역전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슈퍼볼 23(1989) / (7분 이후) 역시 마찬가지. 특히나 이 같은 대역전극을 끝마치고는 조 쿨이라는 별명답게 그저 환하게 웃으면서 두 팔을 번쩍 치켜드는 것이 셀레브레이션의 전부였다. 또한 이듬해인 1990년 슈퍼볼 24에서는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존 엘웨이덴버 브롱코스를 55-10으로 그야말로 관광 보내버렸다. 샌프란시스코의 55점은 수퍼볼 역대 최고 득점이고, 45점이라는 점수차 역시 역대 최고 점수차로 남아있다.[2] 선배인 테리 브래드쇼와 동률이며, 이후 톰 브래디가 슈퍼볼 7회 우승으로 새 역사를 쓴다.[3] 이 역시 후배인 톰 브래디가 5회 수상으로 기록을 깬다.[4] 이후 세가는 NFL 2K시리즈를 통해 매든 NFL의 경쟁자로 미식축구 게임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5] 웃긴건 그렇게 놀린 제리 라이스도 그다지 튼실한 몸은 아니었다는거. 프로필 상으로 둘의 체격 조건은 6-2에 200파운드로 똑같다.[6] 마침 몬태나가 이적한 팀이 브래디가 슈퍼볼 55에서 짓밟은 캔자스시티 치프스고, 몬태나는 팀을 AFC 챔피언십까지는 이끌었지만 슈퍼볼까지는 이끌지 못하며 브래디와의 상대 비교에서 이마저 열세로 밀리게 되었다.[7] 그럴만도 한 게 저 별칭은 작중에서 세나가 띄어쓰기를 착각해서 카미나리 몬타로(한국 정발판에서는 라이 몬타로로 번역했다.)로 잘못 읽은 바람에 의도치 않게 붙은 것인지라 싫어할 만도 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