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드래프트/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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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9년 12월 3일 시행된 K리그 드래프트. 총 신청자 수 332명 중 82명이 K리그 팀에 지명되었다.
처음으로 고졸 선수 드래프트와 대학-실업 선수 드래프트가 분리되어 치러졌다.
2. 진행방식[편집]
- 고교선수 임의지명 제도가 확대되어 각 클럽이 연고지 내의 최대 3개의 고등학교를 지명해 졸업자들을 우선 지명할수 있게 되었다. 각 학교당 3명으로 총 9명을 지명할 수 있는 시스템.
- 일반 드래프트와 번외 드래프트의 개념이 사라졌다. 대신 한 라운드에 지명자가 한 명도 안 나올때까지 드래프트는 진행되며 이 표에선 편의상 12라운드 이후의 드래프트는 번외로 표기하고 대신 13라운드 이후의 지명자 이름에 주석을 달아 지명 드래프트 라운드를 표기한다.
- 지명은 한 라운드에 1명만 지명 가능하다.
- 4라운드 지명은 연고 대학의 선수를 드래프트 시작 전 미리 지명하는 우선지명으로 진행된다. 우선지명이 없을 경우 다음 라운드로 자동 패스된다.
- 추첨과 순위 역순을 혼합한 방식으로 순번이 정해졌다. 먼저 지난 시즌 8위~10위 3팀은 추첨을 통해 1~3순위의 순번을 정하고, 나머지 7팀은 성적 역순을 통해 4~10순위의 순번을 정한다. 공교롭게도 1~3순위는 지난 시즌 순위 역순 그대로 정해졌다.
- 1. 안양 LG 치타스
- 2. 대전 시티즌
- 3. 천안 일화 천마
- 4. 전북 현대 다이노스
- 5. 울산 현대 호랑이
- 6. 포항 스틸러스
- 7. 전남 드래곤즈
- 8. 부천 SK
- 9. 부산 대우 로얄즈
- 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3. 지명결과[편집]
- 대학-실업 선수 드래프트
- 고교졸업 선수 드래프트
- 천안 일화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학-실업 선수 드래프트와 고교 지명선수 드래프트를 한날에 따로 시행한 최초의 드래프트다. 이는 그만큼 실업리그 선수들 중 프로지원을 한 선수들이 많았다는 이유기도 하지만, 당시 유소년 축구에 이른바 초고교급 선수라 불리는 유망주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고교 드래프트에서 안양 LG의 김동진과 최태욱, 수원 삼성의 조재진, 울산 현대의 박규선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고 모두 프로에 올라가 몇 시즌 지나지 않아 각 팀의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한다. 또한 지금의 우선지명과 같은 고교선수 지명제가 확대 도입되어 총 9명까지 우선지명으로 구단이 묶어둘 수 있었는데, 만약 우선지명대로 모두 프로행을 확정지었다면 우리는 안양의 이천수, 울산의 조병국, 심지어 부천 골키퍼 조한선을 볼 수도 있었을 일이다.
대학-실업 드래프트에서도 주목할 자원들이 많았다. 당시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에 자주 뽑히는 인재들이 이 때 드래프트에 많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선수들이 이영표, 심재원, 김남일, 최철우 등이다. 이들은 모두 1라운드 때 지명을 받아 특급 유망주임을 증명했다. 또한 양현정, 김건형 등이 주목할 선수였으며 이관우는 J리그 행이 예정되어있었으나 결국 대전의 지명을 받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게 된다. J리그와 실업리그를 거친 김대의도 늦깎이 K리그 데뷔를 천안 일화에서 하게 되었다.
4. 특이사항[편집]
당시 드래프트는 끝장 드래프트였는데, 과거 10라운드까지 마치고 드래프트를 번외지명으로 전환했던 것과 달리, 구단들이 모두 라운드를 포기할 때 까지 드래프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2군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던 수원 삼성이 13라운드까지 선수를 지명했고, 한술 더 떠 부천 SK는 무려 15라운드까지 선수를 지명해, 드래프트는 16라운드가 되어서야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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