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J/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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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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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e Me Tonight
2015.01.21





1. 개요
2. 그룹
2.2. 제주 KBS 출연 취소 사건
2.3. KBS 방송 심의 부적격 판정
2.4. 더 데이 개봉 취소: CGV와 마찰
2.5. 동방신기 성명권 논란
2.6. 사생팬 폭행 사건
2.7. 멤버 박유천의 퇴출
3. 개인
4. 전 멤버
5. 팬덤
5.1. 팬덤의 분열
5.1.1. 이후
5.1.2. 2차 분열
5.2. 인터넷 방송국 논란



1. 개요[편집]


JYJ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이다.


2. 그룹[편집]



2.1. SM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해지 분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동방신기 3인 SM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해지 소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제주 KBS 출연 취소 사건[편집]


2011년 7월 16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JYJ가 제주 7대 경관[1]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7월 20일 '7대 경관 기원 KBS 특집 5원 생중계' 예정이었지만, 취소를 통보 받았다고 알렸다.

  • 제주KBS의 입장: JYJ에게 생방송 출연 취소를 알리기 하루 전에 소녀시대f(x)의 출연 요청에 성공했으며, JYJ의 인지도가 약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 제주도청의 입장: 출연 취소된 공연은 자신들의 권한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JYJ가 홍보대사를 해주길 바란다.
  • 소속사의 입장: JYJ는 생중계 예정 전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이는 일방적인 통보로 공식적인 사유를 밝힌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JYJ의 위촉식을 포함한 특별 방송을 약속하고 사전 홍보 활동에 이용한 뒤 공연 4일 전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한 주최 측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팬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꽤나 큰 팬덤을 갖고 있는 JYJ의 인지도가 약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했고, 취소된 자리를 SM 소속 아이돌인 소녀시대와 f(x)로 채운 것은 방송사와 거대 연예 기획사가 담합하여 JYJ의 지상파 출연을 막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JYJ의 행사 출연으로 인하여 그들을 보러 비행기 예약을 잡은 해외 팬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비행기 표의 취소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고 제주도 국회의원도 KBS를 비난했다.

결국 JYJ는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도 "개인적인 노력으로라도 계속 제주도를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3. KBS 방송 심의 부적격 판정[편집]


2011년 9월 28일자, KBS가 음원에 대한 방송 심의 결과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여기서 JYJ의 노래 2곡이 방송 심의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논란이 된 것은 'Pierrot'의 가사.

Pierrot (작사·작곡·편곡 김재중)
난 너의 Pierrot 정말로 웃겨
너에게 다 바쳐 찌들어 My mind
내 눈 앞엔 Our pro 돈 앞엔
뭣도 없는 완전한 넌 Pro 제대로 PSM


그런데 그 때, 디시인사이드 동방신기 갤러리[2]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KBS에서 게시한 심의 결과를 담은 엑셀 파일을 캡처한 사진에는 부적격 사유에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 말고도 다른 글이 더 있었다. 바로 '가사에 들어있는 p.s.m이라는 단어가 President 수만, 즉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이수만을 뜻하므로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이라는 것이었다. 합성을 의심받았으나 해당 셀을 늘려 보면 나오는 글씨라는 말에 다들 엑셀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서 늘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캡처본과 똑같은 글씨가 등장했다.

문제는, 'Pierrot'를 작사·작곡한 재중은 트위터에서 지금 33시간동안 잠못자서 정신없는와중에 궁금한거 한가지 p의 President는 도대체 누가 창작, 상상한거지..? 그 뒤것들도..;;라는 말을 남겼다. 즉, 작사가 본인은 그러한 의도로 쓴 가사가 아니라는 주장. 관련 기사

그 이후, 문제가 된 부분은 Performance Success Museum의 약자라고 밝혔으나, KBS 측에서는 "JYJ측이 P.S.M이 'Performance Success Museum'이라고 했다는데, 이 경우 가사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심의는 번복되지 않았다. 헌데 SM 엔터테인먼트측에서 'SM'은 'Success Museum'의 약자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미묘한 일.


2.4. 더 데이 개봉 취소: CGV와 마찰[편집]


2012년 1월 30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JYJ의 일상을 담은 '더 데이(The Day)'의 개봉이 취소되었다고 알린다. 원인은 CGV 측이 1월 20일 일방적으로 계약 취소를 전화로 통보한 것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CGV 측은 개봉 시기와 상영관 수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해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입장이 엇갈렸다.#



2.5. 동방신기 성명권 논란[편집]


소송이 제기되고 2년이 지난 후, 소속사에 남은 두 명만 참여한 동방신기 정규 5집이 발표되자, 팬덤에선 큰 혼란이 있었다. 아직 5인 동방신기의 팬을 표방하고 있었던 팬덤 내의 다수는 5인이 아닌 2인만으로 이루어진 동방신기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JYJ 3인이 전속 계약의 원천 무효 소송을 낸 것과는 별개로 '동방신기'는 5인이 함께 이루어낸 결과이므로 현 동방신기 멤버 둘만이 독점적으로 동방신기의 성명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

그러나 2인 지지 팬들 사이에서는 법적으로 동방신기의 성명권이 SM에 있고, JYJ 3명이 동방신기 하기 싫어서 나간 뒤 따로 그룹까지 만들었는데 왜 2인이 동방신기 성명권을 못쓰냐는 의견이 여론이었다.

이렇게 분열된 팬덤에서 동방신기의 성명권에 관한 주장이 충돌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SM이나 JYJ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JYJ 멤버들이 인터뷰 등을 통해 "솔직히 '동방신기'로 나온 것은 조금 서운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정도.


2.6. 사생팬 폭행 사건[편집]


2009년김재중박유천이 사생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것을 녹취했다는 10분 분량의 음성 파일이 2012년에 한 연예 언론에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다. JYJ의 에이전시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이들은 사생팬으로 그동안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해당 파일을 공개한 보도매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사건이 터진 직후 공연차 간 칠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의 말을 전했다.

여담으로 JYJ는 사건 이전부터 트위터 등에서 제발 택시로 쫓아다니지 말라고 하거나 자신들의 집 밖에서 기다리면서 서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때로는 '사생택시'[3]를 운영하면서 사생들에게 돈을 받고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하는 어른들이 더 큰 잘못이라고 했다. 또 재중은 공항에서 쫓아온 사생들로 인해 한 일반인 할머니가 인파에 밀려 넘어졌는데, 할머니가 혹시 다쳤는지는 관심 없고 자신만 우르르 쫓아다닐 생각만 하느냐며 안타까움 섞인 속풀이를 역시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사생을 팬으로 볼 것인지, 스토커라는 범죄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져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었다.



2.7. 멤버 박유천의 퇴출[편집]


박유천이 여성으로부터 접대를 받는 술집에 출입한 사실이 확인되어 JYJ 팬덤으로부터 거의 외면 받은데 이어 이번에는 마약인 필로폰을 투약을 했음이 들통났다. 무리할 만큼 박유천을 감쌌던 소속사 씨제스도 더 이상 박유천과의 신뢰 관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와의 계약을 강제 해지했다. 박유천은 그렇게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호언한대로, JYJ에서도, 연예계에서도 완전히 퇴출되었다.

이로써 JYJ는 동방신기 탈퇴 이후 최초로 멤버 변동을 겪게 되며 표면상으로는 듀오 체제로 재편되었다. 하지만 김재중김준수 모두 현재로 봐서는 그룹 활동에 별다른 의욕이 없어 보이는데다 그룹 활동을 재개할 경우 박유천의 잔상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작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룹 활동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물론 마약 투약이라는 죄를 지은 연예인 모두가 연예계 복귀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허나 박유천의 경우는 용서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유천은 온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던 기자회견에서 '마약 투약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은퇴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하여 대중과 경찰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 한 괘씸죄 때문에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박유천의 개인 팬들은 박유천을 지지했으나 그 팬들을 상대로 대놓고 사기를 쳤기 때문에 JYJ로, 더 나아가 연예계로의 복귀는 불가능에 가깝다.

DC인사이드 JYJ 갤러리에 있는 '박유천 지지 철회 성명서'에는 작성된 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JYJ 팬들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대부분 '박유천 네가 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일들로 인하여 그룹이 깨졌고, 수 년에 걸친 SM과의 소송의 취지조차 탈색되어버렸으며 함께 활동했던 두 까지 싸잡아 비난을 받아야 하느냐'는 게 주 내용이다.

필로폰 투약 사건 이전에도 이 성명서의 댓글란에는 박유천을 옹호하거나 동정하는 댓글이 아닌, 분노 또는 회한으로 가득찬 댓글이 달리곤 했는데 필로폰 투약이 밝혀진 이후에는 '앞으로 네 이름이 뉴스에 또다시 오를 일은 없을 테니 안심이 되고 통쾌하다' 등의 박유천을 아예 저주하는 내용의 댓글도 달리고 있다.


3. 개인[편집]



3.1. 김재중[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중/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김준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준수(JYJ)/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전 멤버[편집]



4.1. 박유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유천/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팬덤[편집]



5.1. 팬덤의 분열[편집]


기존 5인 동방신기의 팬클럽 카시오페아는 JYJ 3인이 소속사와 소송을 시작한 시점부터 분열이 되었다. 카시오페아 2기까지 팬덤 내 다수를 차지하던 김재중, 김준수의 팬덤과 드라마 출연으로 빠른 속도로 커진 박유천 팬덤으로 수적인 우세는 3인(JYJ)에게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서로에게 잘잘못을 떠넘기는 양상을 드러냈다.

  • 3인(JYJ) 팬덤의 주장 : 소송의 핵심은 부당한 계약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분열의 원인은 행보를 같이 하지 않은 2인 측과 루머를 만든 2인의 팬덤에 있다.
  • 2인(동방신기) 팬덤의 주장 : 부당 계약은 핑계일 뿐이다. 이 계약은 부모님을 동반하여 여러차례 수정까지 허락한 정당한 계약이다. 또한 일부 멤버 부모님이 개입하여 팬들을 시켜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리게 한것과, 회사의 허락 없이 동방신기의 이미지를 사용한 화장품 사업이 해체의 원인이다.

소송 초기에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양 측의 팬덤의 주장과 맞물려 대립이 과격한 양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화장품 사업에 대해 동방신기 2인 팬덤에서 루머를 퍼트린 행위를 두고 해당 화장품 회사 측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고소를 진행했다.

채무자 회사는 채권자(jyj)들이 채무자 회사(sm)의 동의 없이 개인적으로 화장품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 사건 신청을 제기하였다고 주장하는 바, 기록상 화장품 사업 투자에 관하여 채권자들과 채무자 회사 사이에 견해의 대립이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나, 그것이 채권자들이 이 사건 신청을 제기한 종국적 목적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소명자료는 부족하다.

가처분 이의신청 기각 결정문 中

법원은 화장품 회사 건으로 3인과 SM이 대립한 점은 확인이 되지만, 화장품 사업을 목적으로 부당계약소송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SM이 반대하는 화장품 사업을 하기 위해 계약해지 소송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라는 것이다.

한편, 5인 모두를 지지하는 팬들도 아직 있긴 있다. 2016년 현재 시점에서는 3인과 2인으로 각각 그룹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방신기가 2인조로 컴백하여 앨범을 내놓으면서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후 잔존하고 있던 5인 동방신기를 지지하던 팬들도 많이 떠난 상태다. 5인 모두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팬들의 경우, 과거 H.O.T. 등이 있었을 시절에 해체 위기가 오자 했던 5-1=0(한 명이라도 빠지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비하의 의미로 빵녀라고 불리면서 2인과 3인 팬 모두에게 적대시 당하고 있다. 현재 5명 전부를 좋아하는 팬들은 자신들을 올팬(2=3=5)이라 칭하며 빵녀는 비하 단어니 당연히 좋아하지 않는다. 2명의 동방신기와 JYJ 모두 지지한다. 다만 박유천이 마약사범으로서 퇴출된 이후로 4인 지지로 돌아선 팬덤들도 늘고 있다.


5.1.1. 이후[편집]


카시오페아가 분열하면서 기존의 팬사이트는 문을 닫거나 방향을 전환하여 3인 또는 2인 지지를 결정하여 알렸다. 기존의 동네방네, 이카동 같은 대형 팬사이트가 3인 지지를 결정하였고, 팬덤의 분열로 기존의 대형 팬사이트들은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JYJ 팬덤이 결집한 대표 팬사이트는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하는 상황이며, 중소규모의 팬사이트나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홈페이지 등이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디시인사이드에 JYJ 갤러리가 있으며, 각 멤버들의 개인 갤러리도 개설되어 있는 상태이다.

JYJ가 자유로운 방송 출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탓에 멤버들도 그나마 자유로운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의 활동으로 '따로 또 같이'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개인 활동으로 새롭게 팬이 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이 아이돌 그룹인 JYJ가 아닌 멤버 개인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도 팬덤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5.1.2. 2차 분열[편집]


2016년 6월, 멤버 박유천성추문으로 인해 팬 갤러리나 팬 카페 연합은 유천의 지지를 철회했다. JYJ의 유명 팬사이트인 DC인사이드의 'JYJ 갤러리'는 2016년 6월 17일 공동 성명을 내어 '박유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에 관한 컨텐츠는 배척하겠다'고 선언했다.

JYJ라는 그룹 자체를 좋아하는 '그룹팬'들의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그룹팬이 아니라 김재중, 김준수 개인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개인팬'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렇게 신속한 대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룹팬들은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지지해줬던 팬들의 발등에 도끼를 찍어버린 박유천 때문에 이상 없이 군 복무와 솔로 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김재중 & 김준수에게까지 불길이 옮겨 붙지 않도록 해야했고 개인팬들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김재중김준수와 오랜 시간 한 팀을 이뤄 활동했던 박유천의 이미지가 사실상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유탄이 나머지 두 사람에게까지 튈까봐 걱정이 많았었다.

허나 박유천의 개인팬들 중의 일부는 유무죄 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팬덤까지 등을 돌려버리는 건 너무하며, JYJ 갤러리가 무슨 자격으로 팬덤 전체를 대표하느냐며 JYJ 갤러리의 공동 성명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서 DC박유천 갤러리를 비롯해 박유천의 팬사이트들도 공동 성명을 내 박유천에 대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박유천의 성폭행 혐의는 수사 기관의 수사 결과 모두 무혐의로 밝혀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이 여성인 상황에서 여성들을 불러 접대를 받는 술집에 출입했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하지 못한 탓에 JYJ 팬덤으로부터 용서를 받진 못했다. 그리고 2019년 4월에 필로폰 투약까지 해왔음이 드러났다. 박유천의 이미지가 망가진 상태인데도 박유천을 데리고 있었던 소속사 씨제스는 이에 공식 전문을 통하여 "박유천과의 신뢰 관계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으므로 그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는 발표를 했으며, 박유천의 잔류 팬덤도 와해되어버렸다.


5.2. 인터넷 방송국 논란[편집]


SM과의 소송 이후 미디어 활동이 막힌 JYJ를 위해 한 팬이 2011년 총대를 매고(이하 총대) 스태프들을 모아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하였으나 특히 개국 축하인사에 정치인 전여옥이 나온 것은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결국 방송국은 3일 만에 폐국하게 되었으며, 총대 및 스태프들은 가루가 되게 까였다. 관련기사#@


[1] 사설 단체인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선정하는 것으로, 이 행사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단, 해당 사건의 경우에는 행사 주최나 규모와는 별개의 문제이다.[2] 동방신기 갤러리는 처음 개설될 당시에는 5인 체제의 동방신기를 지지하는 갤러리였으며, 소송 전후에는 JYJ(3인)를 지지했으나 2012년 11월 28일자로 소송이 종료되면서 JYJ팬들이 JYJ갤러리로 옮겨간 후 2인(유노윤호, 최강창민)를 지지하는 갤러리가 되었다.[3] 사생 스토커들이 아예 택시 한 대를 빌리다시피 해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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