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KBO 신인 드래프트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됐다.
1차 지명은
1985년 11월 4일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0명을 뽑았다. 전년도까지는 무제한으로 뽑았으나 전력평준화를 위해 10명으로 줄었는데도 구단별로 선수 수급에 지장이 있어, 1987년 지명부터는 다시 3명으로 줄였다. 그리고 이 해부터 1차 지명의 효력이 영구화된다.
연고지가 같은 OB와 MBC는 10월 11일 지명순위를 정해 지명했다.
[1] 동전던지기 결과에 따라 OB가 먼저 지명했다. OB가 1명을 먼저 지명한 후, 각 팀이 번갈아 2명씩을 지명했다.
따라서 이하 1차 지명자 명단에서 2팀만 지명 순위 순으로 나열하고, 나머지 5개팀은 이름 가나다 순이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팀
| 1차 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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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 박노준(선린상고-고려대, 외야수) 박형열(서울고, 투수) 임채섭(휘문고-건국대, 외야수)[2] 이복근(충암고-경희대, 내야수) 조석진(동대문상고-성균관대, 내야수)※ 김희식(대광고-건국대, 투수)※ 김현찬(배재고-연세대-포철, 내야수)※ 정광식(성남고-농협, 투수)※ 차재택(휘문고-농협, 내야수※) 박상익(중앙고-인천전문대,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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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 김건우(선린상고-한양대, 투수) 김태원(배재고-성균관대, 투수) 서효인(신일고-고려대, 포수) 민경삼(신일고-고려대, 내야수) 이재홍(신일고-건국대, 투수) 이바오로(선린상고-한양대, 투수) 이경재(선린상고-연세대,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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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 강수경(부산상고-경성대-상무, 외야수)※ 김성현(부산고-연세대, 포수) 박동희(부산고, 투수) 오명록(경남상고-동아대, 투수) 윤학길(부산상고-연세대-상무, 투수) 이창원(마산상고-건국대, 외야수) 임경택(마산고-한양대, 외야수) 최계영(부산고-건국대,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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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 곽영진(세광고-성균관대, 투수) 김상국(북일고-한양대, 포수)[3] 김수길(대전고-한양대, 내야수) 김현택(북일고-동아대, 내야수) 유해덕(대전고-고려대, 외야수) 윤홍식(북일고-인하대, 외야수) 이원일(청주고-제일은행, 포수)※ 이효봉(대전고-고려대, 투수)[4] 한연대(대전고-중앙대, 투수) 한희민(세광고-성균관대,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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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구윤(경북고-중앙대, 외야수) 권택재(경북고-한양대, 내야수)※ 김훈기(대구상고-영남대, 투수) 마수진(대구상고-인하대, 투수) 성준(경북고-한양대, 투수) 이성근(대구고-한양대, 포수) 이용수(대구상고-동국대, 외야수)※ 이척기(대구상고-중앙대, 투수) 임순태(대구고-영남대, 내야수) 최무영(경북고-고려대,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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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 핀토스
| 김동기(인천고-인하대, 포수) 손영주(인천고-연세대-한국전력-상무, 내야수)※ 이광근(동산고-중앙대-한일은행, 외야수) 최광묵(인천고-인하대-제일은행, 외야수) 최용남(동산고-제일은행,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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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 강상진(전주고-고려대, 투수) 김경호(진흥고-인하대, 내야수) 김대현(전주고-원광대, 투수) 김정수(진흥고-연세대, 투수) 김평호(군산상고-동국대, 외야수) 백재우(전주고-원광대, 외야수)※ 신동수(광주상고, 투수) 이건열(군산상고-동국대, 내야수) 장채근(광주상고-성균관대, 포수) 차동철(광주일고-건국대,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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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별 가나다 순으로 기재.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MBC
| OB
| 빙그레
| 삼성
| 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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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군산상고-인천전문대-농협, 외야수)
| 김강익 (대구고-중앙대-성무, 투수)
| 김연철 (대전고-충남대-동국대-포철-성무, 투수)
| 강대호 (군산상고-동국대, 투수) ※
| 김경갑 (충암고-영남대-한국화장품, 내야수)
|
| 박칠성 (경남고-연세대, 내야수)
| 김정태 (대구상고-건국대-농협-상무, 내야수)
| 강풍원 (진흥고-연세대, 내야수) ※
| 김철주 (충암고-건국대-상무, 투수) ※
|
| 임동구 (군산상고-동국대, 내야수) ※
| 김종수 (중앙고-고려대-한국화장품, 내야수)
| 곽경탁 (서울고-중앙대-한일은행, 외야수) ※
| 박현석 (대구상고-영남대, 외야수) ※
|
|
| 박재찬 (경남고-성균관대, 외야수) ※
| 곽현태 (군산상고-동국대, 투수)
| 신성철 (경북고-영남대,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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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춘석 (경북고-영남대, 투수) ※
| 김경배 (진흥고-연세대, 외야수) ※
| 신춘식 (대구상고-고려대-한국화장품, 외야수) ※
|
|
| 송영수 (신일고-경희대-한국전력, 투수) ※
| 김남수 (신일고-고려대-농협, 외야수) ※
| 안성수 (마산고-경성대, 투수) ※
|
|
| 윤종오 (충암고-포철, 포수)
| 김문수 (선린상고-동국대-한일은행, 투수) ※
| 오귀섭 (진흥고-인하대, 내야수) ※
|
|
| 이강호 (북일고-인하대, 투수)
| 김형종 (군산상고-동국대(중퇴)-한일은행-상무, 외야수) ※
| 오덕환 (세광고-농협, 내야수)
|
|
| 이군로 (광주상고-성균관대-포철, 내야수)
| 문희근 (유한공고-한국화장품, 외야수) ※
| 윤영환 (마산상고-경성대, 내야수) ※
|
|
| 이연수 (광주일고-성균관대, 외야수) ※
| 유병선 (중앙고-포철, 포수) ※
| 이경석 (인천고-인하대,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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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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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석 (광주상고-동국대, 외야수) ※
| 이우상 (경남고-연세대(중퇴)-포철,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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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봉 (서울고-성균관대-한국전력, 투수) ※
| 조광덕 (경북고-영남대,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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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혁 (광주상고-경희대, 외야수) ※
| 조병천 (전주상고-한국화장품,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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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채 (선린상고-동아대-상업은행,외야수) ※
| 천성호 (명지고-동국대-농협,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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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수 (광주상고-동국대-포철, 포수) ※
| 홍성산 (심석종고,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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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학 (동대문상고-한양대-상업은행, 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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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
RD
| 지명자
|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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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곽영진 (세광고-성균관대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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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김상국 (북일고-한양대 / 포수)
| 유승안과 빙그레 초기에 포수를 번갈아가며 출장하다가, 유승안의 기량이 쇠퇴하자 주전포수로 활약했으나, 강인권의 등장으로 주전포수 자리를 빼앗기고 1995년말 현대로 트레이드되었다.
|
1차
| 김수길 (대전고-한양대 / 내야수)
|
|
1차
| 김현택 (북일고-동아대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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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 유해덕 (대전고-고려대 / 외야수)
| 외야수로 뛰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며, 이정훈의 입단과 천창호의 태평양 이적 등으로 1989년 투수로 전향했으나 역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며 1991년 은퇴했다.
|
1차
| 윤흥식 (북일고-인하대 / 외야수)
|
|
1차
| 이원일 (청주고-제일은행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이효봉 (대전고-고려대 / 투수)
|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한국화장품에서 뛰다가 1989년 시즌 중반에 입단하였으나 1년만에 방출되었다. 선수보다는 해설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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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한연대 (대전고-중앙대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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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 한희민 (세광고-성균관대 / 투수)
| 이상군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었던 에이스 투수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투수로 맹활약하였다. 그러나, 코치진과의 갈등으로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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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 김연철 (대전고-충남대-동국대-포철-상무 /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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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 김정태 (대구상고-건국대-농협-상무 / 내야수)
|
|
2차
| 김종수 (중앙고-고려대-한국화장품 / 내야수)
|
|
2차
| 박재찬 (경남고-성균관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박춘석 (경북고-영남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송영수 (신일고-경희대-한국전력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윤종오 (충암고-포철 / 포수)
|
|
2차
| 이강호 (북일고-인하대 / 투수)
|
|
2차
| 이군로 (광주상고-성균관대-포철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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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 이연수 (광주일고-성균관대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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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보 핀토스
|
RD
| 지명자
|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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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김동기 (인천고-인하대 / 포수)
| 인천 야구를 대표하는 명포수 중 한명으로, 김경기와 같이 KK포를 이루는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하면서 공수 양면으로 실력이 뛰어났다. 팀내 사정상 변변한 백업 포수가 없는데다가 김동기 본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에 출장하다가 1996년 은퇴하였다.
|
1차
| 손영주 (인천고-연세대-한국전력-상무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이광근 (동산고-중앙대-한일은행 / 외야수)
| 백업으로써 괜찮을 활약을 하였다.
|
1차
| 최광묵 (인천고-인하대-제일은행 / 외야수)
|
|
1차
| 최용남 (동산고-제일은행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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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 김경갑 (충암고-영남대-한국화장품 / 내야수)
|
|
2차
| 김철주 (충암고-건국대-상무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박현석 (대구상고-영남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신성철 (경북고-영남대 / 포수)
|
|
2차
| 신춘식 (대구상고-고려대-한국화장품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안성수 (마산고-경성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오귀섭 (진흥고-인하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오덕환 (세광고-농협 / 내야수)
|
|
2차
| 윤영환 (마산상고-경성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이경석 (인천고-인하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이우상 (경남고-연세대 중퇴-포철 / 투수)
|
|
2차
| 조광덕 (경북고-영남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조병천 (전주상고-한국화장품 / 투수)
| 승운이 그닥 좋지 않았던 투수로, 청보와 태평양에서 전천후로 활약하였다. 1987년 해태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둬 잠깐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
2차
| 천성호 (명지고-동국대-농협 / 투수)
|
|
2차
| 홍석산 (심석종고 /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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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청룡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건우 (선린상고-한양대 / 투수)
|
|
1차
| 김태원 (배재고-성균관대 / 투수)
|
|
1차
| 서효인 (신일고-고려대 / 포수)
|
|
1차
| 민경삼 (신일고-고려대 / 내야수)
|
|
1차
| 이재홍 (신일고-건국대 / 투수)
|
|
1차
| 이바오로 (선린상고-한양대 / 투수)
|
|
1차
| 이경재 (선린상고-연세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김성수 (군산상고-인천전문대-농협 /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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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 베어스
|
RD
| 지명자
|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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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박노준 (선린상고-고려대 / 외야수)
| 투타겸업을 시도하다가 애매한 성적을 냈고, 잔부상까지 겹쳐 아마추어 시절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2년 해태로 트레이드되었다. 1993년 쌍방울로 또다시 트레이드 된 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1997년 부상으로 프로 생활을 마쳤다.
|
1차
| 박형열 (서울고 / 투수)
|
|
1차
| 임채섭 (휘문고-건국대 / 외야수)
| 프로 통산 7타수 무안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방출되었다. 선수 때보다 심판으로 안 좋은 쪽으로 유명세를 탔다.
|
1차
| 이복근 (충암고-경희대 / 내야수)
| 선수 생활을 하면서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은퇴 후 두산 스카우트로써 더 이름을 날렸다.
|
1차
| 조석진 (동대문상고-성균관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김희식 (대광고-건국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김현찬 (배재고-연세대-포철 / 내야수)
| 지명권 포기 후 삼성 입단
|
1차
| 정광식 (성남고-농협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차재택 (휘문고-농협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박상익 (중앙고-인천전문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김강익 (대구고-중앙대-상무 / 투수)
|
|
2차
| 박칠성 (경남고-연세대 / 내야수)
|
|
2차
| 임동구 (군산상고-동국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
해태 타이거즈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강상진 (전주고-고려대 / 투수)
|
|
1차
| 김경호 (진흥고-인하대 / 내야수)
|
|
1차
| 김대현 (전주고-원광대 / 투수)
| 데뷔 2년차인 1987년부터 9승 5패 3세이브, 방어율 2.78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두 차례 선발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좌완 에이스 투수로 성장하였지만, 1988년 시즌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요절하였다.
|
1차
| 김정수 (진흥고-연세대 / 투수)
| 정규 시즌에는 큰 활약을 펼친 선수라고 하기 어려웠지만,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낸 투수이자 가을야구 때마다 맹활약하며 해태 왕조 건설의 큰 공을 세우며 가을 까치라는 별명을 얻은 명투수였다.
|
1차
| 김평호 (전주고-원광대 / 외야수)
| 주전보다는 대주자 등 백업으로 주로 활약하였다.
|
1차
| 백재우 (전주고-원광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신동수 (광주상고 / 투수)
|
|
1차
| 이건열 (군산상고-동국대 / 내야수)
|
|
1차
| 장채근 (광주상고-성균관대 / 포수)
| 해태의 주전포수로 맹활약하면서 해태 왕조의 건설에 크게 기여하였다.
|
1차
| 차동철 (광주일고-건국대 / 투수)
|
|
고졸연고 지명
| 조찬관 (영흥고 / 내야수)
| 선수로서는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은퇴 후 프런트로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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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강수경 (부산상고-경성대-상무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김성현 (부산고-연세대 / 포수)
|
|
1차
| 박동희 (부산고 / 투수)
|
|
1차
| 오명록 (경남상고-동아대 / 투수)
|
|
1차
| 윤학길 (부산상고-연세대-상무 / 투수)
|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롯데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에이스 투수로 통산 117승과 함께 KBO 최다 완투(100완투) 기록을 보유한 대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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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이창원 (마산상고-건국대 / 외야수)
|
|
1차
| 임경택 (마산고-한양대 /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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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최계영 (부산고-건국대 /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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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라이온즈
|
RD
| 지명자
|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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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구윤 (경북고-중앙대 / 외야수)
| 준주전으로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1993년 태평양으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태평양 이적 후에도 1년만에 방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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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권택재 (경북고-한양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1차
| 김훈기 (대구상고-영남대 / 투수)
|
|
1차
| 마수진 (대구상고-인하대 / 투수)
|
|
1차
| 성준 (경북고-한양대 / 투수)
| 인터벌이 길기로 유명했던 투수로, 80,90년대 삼성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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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이성근 (대구고-한양대 / 포수)
|
|
1차
| 이용수 (대구상고-동국대 / 외야수)
|
|
1차
| 이척기 (대구상고-중앙대 / 투수)
|
|
1차
| 임순태 (대구고-영남대 / 내야수)
| 지명권 양도(빙그레)
|
1차
| 최무영 (경북고-고려대 / 외야수)
|
|
2차
| 강대호 (군산상고-동국대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강풍원 (진흥고-연세대 / 내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곽경탁 (서울고-중앙대-한일은행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곽현태 (군산상고-동국대 / 투수)
|
|
2차
| 김경배 (진흥고-연세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김남수 (신일고-고려대-농협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김문수 (선린상고-동국대-한일은행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김형종 (군산상고-동국대 중퇴-한일은행-상무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문희근 (유한공고-한국화장품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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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 유병선 (중앙고-포철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유우석 (광주상고-동국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윤수봉 (서울고-성균관대-한국전력 / 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이재혁 (광주상고-경희대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정선채 (선린상고-동아대-상업은행 / 외야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최인수 (광주상고-동국대-포철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
2차
| 최재학 (동대문상고-한양대-상업은행 / 포수)
| 지명 후, 미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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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보 핀토스 : 전성기에는 이만수 다음 가는 뛰어난 포수였던 김동기와 몇 년간 그럭저럭 외야수로서 활약한 이광근을 얻었다.
- 해태 타이거즈 : 성공적. 만성적 좌완투수난을 해소시켜 준 까치머리의 강속구 좌완과 고졸의 기교파 좌완을 동시에 입단시켜 좌완투수 갈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고, 그 외에 명포수 장채근, 비운의 에이스 김대현, 전문 중간계투의 시조 차동철, 유틸리티 내야수 이건열, 전문 대주자 요원 김평호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국시리즈 4연패에 깨알같은 기여를 한 준척급 선수들을 입단시켰다.
- 삼성 라이온즈 : 극강의 인터벌을 가진 암흑기를 지탱한 투수를 얻었다. 그러나 경북고 야구부의 마지막 전성기의 일원이었던 권택재는 끝내 입단하지 않고 실업야구에 남았다.
- OB에 1차 지명된 내야수 김현찬은 OB에서 지명권을 포기하면서 삼성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 삼성에 1차 지명된 임순태는 지명권 양도로 빙그레에 입단했다.
- 스텟티즈에서는 연습생으로 빙그레에 입단한 김준기[5]
청주고 출신으로 은퇴 후 한화 프런트로 전직했다.
와 장종훈이 고졸연고지명으로 입단했다고 잘못 나와 있다.
- 빙그레에 1차 지명자인 이효봉은 바로 입단하지 않고 상무, 실업야구를 거쳐 특이하게도 시즌 중인 1989년 8월 입단한 후 1년만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효봉은 선수 때보다 해설로 이름을 더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