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영국 축구 승부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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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발단 및 경과
3. 결과
3.1. 징계
4. 연루된 인물



1. 개요[편집]


1915년 4월 2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리버풀 FC의 잉글랜드 1부 풋볼 리그 경기에서 양 팀의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관여했던 사실이 드러난 사건. 총 3명의 맨체스터 유나티드 선수들과 4명의 리버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관련된 것으로 밝혀져 모두 영구 출전 금지의 징계를 받았다.

2. 발단 및 경과[편집]


1914-15 시즌이 진행되던 1915년 4월 2일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에서 강등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반면, 리버풀은 리그 순위에서 중위권에 위치하여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도, 강등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인해, 1914-15 시즌이 끝난 후에 리그가 중단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고, 리그에서 활약하던 모든 선수들의 축구 커리어가 영구적으로 중단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승부조작에 관여한 양 팀의 선수들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리그의 상황 때문에 의심스러운 경기 결과에 대한 관심이 환기될 것이라 생각했다.

1915년 4월 2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양 팀의 리그 두 번째 맞대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는 맨유의 조지 앤더슨이 두 골을 모두 득점하며 2-0 맨유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경기 이후 심판과 경기의 관중들은 리버풀 선수들이 경기 중 책임감 없는 플레이를 남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리버풀은 실제로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얻었으나 실축했으며, 리버풀의 프레드 파그남이 후반전에 맨유의 골대를 맞추는 슛을 날리자, 리버풀의 선수들 중 일부가 파그남에게 질타를 가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경기 전 맨유의 2-0 승리에 거액의 돈이 배팅되었다는 소식[1]이 전해졌고 결국 FA가 해당 경기 조사에 착수했다.

FA가 조사를 시작하자 양 팀의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경기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혐의가 드러난 선수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샌디 턴불, 아서 윌리, 에녹 웨스트, 리버풀의 재키 셸던, 톰 밀러, 밥 퍼셀, 토마스 페어파울이었다. 이 중 재키 셸던은 전 맨유 선수였고 이 사건의 주모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리버풀의 프레드 파그남과 맨유의 조지 앤더슨 같은 일부 선수들은 승부조작을 권유받았으나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그남은 실제로 FA가 주최한 해당 사건의 청문회에서, 본인은 조작에 관여한 선수들에게 자신이 승부조작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경기에서 득점을 노릴 것이라 말했다고 증언했다.[2] 같은 청문회에서 맨유의 빌리 메레디스는 승부조작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대답했으나, 동료들 중 누구도 자신에게 패스를 주지 않아 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3. 결과[편집]


결국 조사 끝에, 1915년 12월 27일 FA는 해당 경기를 고의적으로 내용과 결과가 조작된 경기라고 결론내렸으며, 이 사건이 승부조작 사건임을 확실히했다. 또한 해당 사건의 부정은 양 팀의 일부 선수들이 저지른 것이며, 양 구단의 다른 관계자들에게는 혐의가 없음을 밝혔다. FA는 해당 사건의 원인. 즉, 승부조작을 저지른 선수들의 주요 동기는 재정적인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조작된 해당 경기의 승리를 통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승점 2점을 얻었고[3], 당시 19위였던 첼시 FC와 20위였던 토트넘 핫스퍼를 각각 1점 차와 2점 차로 따돌린 채 18위로 순위를 마쳤다.[4][5]


3.1. 징계[편집]


FA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양 팀 7명의 선수 전원에게 경기 영구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FA는 해당 사건이 일부 선수들에 의한 음모였으며 양 구단의 다른 관계자들과는 무관한 사건임을 확실히했다. 이에 양 구단에게는 벌금을 물거나 리그 승점을 감점당하는 등의 징계가 일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의 풋볼 리그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전 정지 징계 자체는 선수들의 커리어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또한 당시 이 징계는 잉글랜드의 풋볼 리그에 한정된 것으로 스코틀랜드 리그에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6]

하지만 맨유의 에녹 웨스트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항의를 지속했고 심지어 FA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소송에서 패소했고 결국 영구 선수 자격 정지의 징계를 받아들여야했다.

이후 웨스트를 제외한 다른 6명의 선수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국가에 대한 봉사를 인정받아 1919년 FA에 의해 징계를 해제받았다. 맨유의 샌디 턴불은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전사하였고 리버풀의 페어파울은 축구 선수를 은퇴했지만, 이에 나머지 4명의 선수들은 전쟁 이후 선수 생활을 재개했다. 웨스트는 1945년에서야 징계를 해제받았는데, 그의 나이 59세의 일이었기에 축구 선수의 커리어는 끝난 뒤였다. 30년간의 웨스트의 출전 정지 기록은 FA 역사상 최장 기간 출전 정지 기록이었다.


4. 연루된 인물[편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샌디 턴불[7]
  • 아서 월리
  • 에녹 웨스트

리버풀 FC
  • 재키 셸던[8]
  • 톰 밀러[9]
  • 밥 퍼셀
  • 토마스 페어파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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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당률이 7/1 이었다고 한다.[2] 파그남은 실제로 경기 중에 골대를 맞추는 슛을 날리기도 하였다.[3] 당시엔 승리 승점이 2점이었다.[4] 당시엔 19위와 20위만 2부 리그로 강등[5] 첼시 FC는 19위로 해당 시즌 이후 강등이 확정되었으나 세계대전으로 인한 리그 중단 이후 1919-20 시즌에 리그가 확장되며 강등을 면했다.[6] 자격 정지를 받은 선수들 중 4명이 스코틀랜드인이었다.[7]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사[8] 사건의 주동자. 1913년에 맨유에서 리버풀로 이적했다.[9] 사건 이후인 1920년에 맨유로 이적하기도 했다.[10] 1919년 징계를 해제받았으나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