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한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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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2대 황제
胡漢蒼 | 호한뜨엉
묘호
없음
시호
없음

호(Hồ, 胡)

한트엉(Hán Thương, 漢蒼)
연호
티에우카인(紹成, 1401년 ~ 1402년)
카이다이(開大, 1403년 ~ 1407년)
생몰기간
? ~ 1407년
재위기간
1400년 ~ 1407년


1. 개요
2. 생애
3. 사후



1. 개요[편집]


베트남 호 왕조의 제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묘호와 시호는 없고, 휘는 한트엉(漢蒼), 명실록(明實錄)과 명사(明史)에서는 이름은 호저(胡𡗨[1])로 기록되어 있다. 호꾸이리(胡國祖)의 둘째 아들. 호한트엉이 재위기간에 사용한 연호는 티에우카인(紹成), 카이다이(開大)를 사용했다. 명나라의 황제인 성조(成祖) 영락제의 침공때 포로로 잡혀 호 왕조는 멸망했다.


2. 생애[편집]


1400년, 아버지 호꾸이리가 양위하여, 호한트엉이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실권은 태상황이 된 호꾸이리가 잡고 있었기에 실권은 없었다.

1406년, 명나라의 영락제는 쩐 왕조의 황족 쩐티엠빈(陳添平)을 쩐 왕조의 후계자로 간주하여 대월로 호송하했으나, 호 왕조 조정이 쩐티엠빈을 죽였다. 이에 격분한 영락제는 대군을 보내 호 왕조의 도읍을 함락시켰으며, 호꾸이리와 호한트엉은 명군의 포로가 되었다.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으로 호송되는 중에 호한트엉은 탈출했으나, 명군에 다시 붙잡혀 참수되었다.


3. 사후[편집]


호씨 부자가 베이징에서 참수된 후, 일남국왕후 쩐 왕조를 건국하기도 했으나 곧 소멸되었고, 중국은 베트남을 지배하였으며 후에 1428년 레러이가 등장하면서 명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대월을 재건하였다.

[1] 𡗨라는 글자가 大(큰 대)가 위쪽, 互(서로 호)가 아래쪽으로 합쳐진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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