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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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서커스
3. 사고 당시
4. 피해
5. 사고 이후
6. 범인?
7. 추모


1. 개요[편집]


파일:하트포드 서커스 화재.jpg

Hartford Circus Fire

1944년 7월 6일 미국 코네티컷하트퍼드시의 서커스에서 발생한 화재.


2. 서커스[편집]


RIngling Bros와 Barnum & Bailu Circus[1]는 당시 가장 잘 나갔던 서커스 극단으로, 열차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인구가 많은 자역에서 대형 천막 일명 '빅 탑(Big Top)'을 펼친 뒤 서커스를 열곤 했다. 대형 천막은 엄청 컸는데 넓이 60m, 길이 137m, 높이 14m로 최대 9,000명의 관객이 들어갈 수 있었고 안에는 링 3개와 무다 2개가 있어 관객들에게 다양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 출입구는 총 9개가 있었는데 평소 2개는 동물 출입구로 쓰면서 양쪽을 케이지 형태 터널로 막아 둔 상태였다. 천막은 외벽 캔버스와 내벽 캔버스로 이루어져 외벽에 날씨에 대비해 당시 유행했던 방수처리를 했는데 휘발유 약 23,000리터에 파라핀 왁스 약 820kg을 녹여 발라 비에도 끄떡 없었다. 하지만 불엔 취약했다.[2]


3. 사고 당시[편집]


1944년 7월 5일엔 두 극단이 코네티컷주 하트퍼드를 찾아왔는데 중간에 기차에 문제가 생겨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고 결국 공연 몇 개를 취소해야 했는데 당시 서커스에서 공연이 취소되는 건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라는 징크스가 있었다. 극단은 관중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스턴트와 호랑이, 사자, 코끼리 같은 맹수 쇼, 온갖 묘기를 펼쳤고 주변에서 기념품과 솜사탕을 팔았다. 관객들은 순식간에 약 8,000여명이 모여들었다. 당시ㅡ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남성들을 전부 전장으로 떠났을 때라 관객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7월 6일에도 공연이 펼쳐졌는데 당시 관중은 대략 7,000명이었다. 그러던 오후 2시 15분 경 사자 공연이 끝나고 Great Wallendas의 공연이 펼쳐지던 중 천막 남쪽 부근 내벽에서 화재가 시작됐다. 소화기 하나로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소화기는 전부 서커스 천막 밖에 있었다. 밴드 리더 Merle Evans는 The Stars and Stripes Forver#를 연주하라고 지시해 관객들을 안심시키려고 했고[3] 서커스 직원들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 부르면서 화재를 진압해 보려고 했다. 이전에도 화재는 몇 번 있었고 동물이 죽은 사례는 있었으나 화재로 사람이 죽은 일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침착히 대응했다. 관객 7,000여명도 침착하게 대피하면서 큰일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불이 내벽에서 외벽으로 번져나갔고 앞서 말했듯이 천막을 휘발유와 왁스로 도배해서 불은 미친듯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불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폭발이 일어난 걸로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극단장 Fred Bradna가 방송을 통해 침착하게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화재로 전기가 끊겨 방송은 전달되지 못했다. 많은 관객들이 급히 비상구로 달려갔지만 비상구 대부분이 막혀 있었고 짐을 옮기는 차량을 비상구 주변에 주차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었으며 동물 케이지들도 비상구를 막았다. 사람들은 급히 천막과 바닥 틈으로 탈출했고 칼로 천막을 찢고 탈출한 사람도 있었지만 불을 견디다 못한 천막의 철제 프레임이 무너져 내리면서[4] 사람들을 가둬 버렸고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갇혀 버렸다. 불이 시작되고 천막이 무너지기까진 고작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급히 신고를 받고 소방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대피가 다 끝나고 부상자들은 곳곳의 병원으로 흩어지면서 가족을 찾는 데 오래 걸렸다.

4. 피해[편집]


이 화재로 결국 168명이 사망했다. 대다수가 어린이였고 전부 관객들이었다. 시체 한 구는 불이 너무 심해서 뼛조각 몇 개로 겨우 사람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 원인의 대다수는 화상 및 질식이었고 급히 달려나가던 사람에게 밟혀 압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부상자는 700여명이었다.

이 화재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서커스 참사였다.

서커스 관계자들 중 부상자는 있었으나 사망자는 없었으며 동물들도 제때 대피가 이루어져 죽은 동물은 없었다.

사망자 중 가장 유명한 이는 Little Miss 1565란 이름이 붙은 희생자였다. 화재 당시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아 영안실에서 붙은 태그에서 따 와 Little Miss 1565란 이름으로 불렸고 1565의 사진이 신문에 실려 이들의 유가족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해 Little Miss 1565란 이름만 붙은 채 묘비에 묻혔다가 1991년에야 진짜 이름 Eleanor Emilly Cook(향년 8세)이 밝혀졌고 사고 당시 목숨을 잃었던 남동생의 곁으로 이장됐다.

5. 사고 이후[편집]




화재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밑에서 말할 범인의 소행이란 추측과 조명에 의한 화재, 피우다 버린 담배와 불을 붙인 뒤 버려진 성냥에 의한 화재라는 추측만 남았다.

코네티컷주하트퍼드에선 비상구 관련 법을 재검토했다. 그동안 건물에는 엄격히 적용됐으나 서커스가 열리는 천막은 임시 구조물이라서 적용되지 않았다. 이후 법적으로 임시구조물에도 반드시 비상구를 확보하도록 규정됐고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 서커스 화재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다. 이후에도 RIngling Bros와 Barnum & Bailu Circus가 서커스를 계속해서 열었지만 천막을 펼쳐서 열지 않고 개방된 넓은 공간에서 했다.

서커스 관계자 몇 명이 이 화재와 관련해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 구속됐다. 서커스 측은 희생자 유가족 600여명에게 총 합 500만 달러 가량을 보상했다.


6. 범인?[편집]


뉴햄프셔메인에서 자라난 로버트 데일 세기(Robert Dale Segee, 1929년 ~ 1997년)는 과거에 형제들과 학우들에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고 아버지에게 손가락에 불을 붙이는 체벌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9-10세 무렵 밤에 밖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그에 대한 정보[5]

1950년 세기는 오하이오에서 방화를 저지르다가 체포됐는데 경찰에게 심문을 받으면서 1939년이서 1946년 사이 포틀랜드에서 최소 25건의 대형 화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그의 집 주변에서 28건의 화재가 있었던 게 밝혀졌고 세기의 여동생도 오빠가 집에 불을 2번이나 지른 적이 있다 고밝혔다. 세기는 나쁜 기억들을 성관계나 불로 없애고 싶어 방화를 저질렀다고 자백했으며 4건의 살인에 대해서도 자백했다.

그런 세기가 1944년 6월 30일 포틀랜드의 한 서커스에 조명 담당으로 합류했고 그곳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단순히 밧줄만 타고 사망자도 부상자도 없었지만 그가 하트퍼드 서커스에 참여한 뒤 일어난 위의 화재에서는 168명이 사망했다. 세기는 당시 하트퍼드에서 한 여성과 성관계를 했으나 불만족스러웠고 이후 방화를 저질렀다고 자백했으나 실제 세기가 불을 질렀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세기는 이후 오하이오 당국이 자기가 유죄라고 믿게 했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하트퍼드 서커스 방화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세기는 이후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 입원했으며 1997년 8월 오하이오 주 콜롬버스에서 사망했다.


7. 추모[편집]


2002년 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추모 재단이 설립되었고 2004년엔 화재가 일어났던 장소에 추모공원이 지어졌다. 화재가 일어난 과정이 적혀 있고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RIngling Bros와 Barnum & Bailu Circus는 2017년 4월 30일 해체됐다. 해체되기 전 뉴욕 나소 베테랑 메모리얼 콜세움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 뒤 추모공원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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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쇼맨으로 유명한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이 만든 극단.[2] 원래는 다른 방법으로 했는데 전쟁통에 그 방법으로 하려고 하니 하는데 필요한 재료가 부족했다고 한다.[3] 혹여나 문제가 생길 경우 관객들을 안심시키려고 연주하도록 사전에 정했다.[4] 당시 영상[5] 여기는 살인마 위키인데 한국인 중에는 조승희등재되어 있으며, 이 사람 항목에 이 사건의 희생자 명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