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조지마 화장장 백골 시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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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경위
3. 의문점, 그리고 난무하는 추측들
3.1. 섬의 전설이 연관되었다?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八丈島火葬場七体人骨事件(하치조지마 화장장 7구 인골 사건)

1994년 일본 하치조섬에서 발생한 의문 사건. 각종 의문점들과 섬의 전승이 맞물려서 발생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로 남았고, 일본 인터넷에서는 관련 괴담도 여럿 돌았다.


2. 사건 경위[편집]


오본을 앞둔 1994년 8월 11일 아침, 하치조섬 하치조마치의 화장장 직원은 그날 예정된 화장을 준비하려고 2호 소각로를 열었다가 대경실색했다. 문이 잠겨진 소각로 안에 사람의 백골이 무려 7구나 빼곡하게 있었던 것이다. 이 백골들은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었고, 그 중에는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도 여럿 있었다. 화장장을 이용하려면 묘지, 매장에 관한 법률[1]에 따라 사전에 시정촌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하치조지마 화장장에서 발견된 백골들은 모두 사전에 화장장 사용신청이 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일본 경찰은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하여 마지막 화장장 이용 기록을 검토했다. 그 결과 백골이 발견되기 5일 전인 8월 6일자 기록이 마지막이었으므로, 당초에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에 걸쳐 누군가가 무단으로 시신을 집단 화장했다고 추정했다.[2]

그런데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났다. 소각로에서 발견된 백골을 분석한 결과, 7구 모두 최소 사후 10년 이상 경과한 시신임이 판명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누군가가 분묘 개장(改葬)을 시도했다는 가설이 나왔다. 하치조섬에는 일단 사망자를 매장했다가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에 시신을 다시 꺼내서 화장하여 무덤을 조성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3]

그렇다고는 하나, 허가 없이 화장장을 무단 사용한 것은 엄연히 불법행위인 만큼 경찰 입장에서는 덮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백골 7구 모두 신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섬의 묘지 64개소 모두가 조사대상이 되었다.[4] 하지만 기이하게도 섬의 묘지에서는 무덤을 파낸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어서 2차례에 걸쳐서 64곳 모두를 철저히 조사하고 사유지까지 조사대상에 넣었으나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분묘 개장설도 결국 가설에 그친 뒤, 이번에는 외부에서 반입했을 가능성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화장장이라면 뭍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외부에서 하치조섬까지 힘들게 시신을 반입해서 화장할 필요가 있었는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하치조섬은 일본의 허다한 섬들 중에서도 태평양에 뚝 떨어진 외딴 곳인데, 구태여 여기까지 시신을 7구나 싣고 와서 몰래 화장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가정이다. 만약 외부반입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째서 화장한 유골을 소각로에 방치했느냐 또한 문제가 되었다.


3. 의문점, 그리고 난무하는 추측들[편집]


게다가 백골 발견 당시의 상황도 의문 투성이였다. 11일 아침에 유골을 처음 발견한 화장장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화장장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 소각로를 포함하여 화장장의 모든 문은 전부 잠겨 있었다.
  • 보일러의 급유 밸브도 잠겨 있었다.
  • 백골 7구는 모두 2호 소각로에 있었다.
  • 통상적으로 화장을 마친 뒤에는 유골 수습을 위해 수골 접시를 설치하는데, 이 접시가 사용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경찰조차 사건 규명에 난항을 빚는 와중에 섬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추측과 가설들이 오갔다. 소각로에서 발견된 백골들이 범죄에 연루된 피해자의 것으로, 범인이 증거 인멸을 위해 피해자의 시신을 무단으로 화장한 뒤 방치한 것이라는 설부터 사고로 사망한 인부들의 유골이라는 설, 심지어는 제각기 다른 곳에 매장되었던 일가족이 스스로 한 데 모였다는 괴담에 가까운 설까지 나오는 등 여러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사고설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군 사령부 건설공사 도중 인부들이 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던데다 사건 발생 40여 년 전인 1952년에는 섬을 횡단하는 도로건설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당시 현장감독을 포함한 인부들이 생매장된 사고가 있었는데,[5] 이때 사망자의 숫자가 정확히 7명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 측면에서 접근한 가설로는 불법 입국한 중국인의 시신이라는 설이 있었다. 실제로 하치조섬이 있는 이즈 제도에서는 중국인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풍랑을 만나 좌초되거나 하는 사건이 종종 있었던지라, 화장장에서 발견된 백골도 그 중 일부이며 유골을 화장한 것은 밀항 브로커의 소행이라는 추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가설이든 모두 추정에서 그쳤고, 결국 이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일본의 미스테리 사건으로 남았다.


3.1. 섬의 전설이 연관되었다?[편집]


위에 언급된 오컬트 관련으로 일각에서는 하치조섬에 전하는 일곱 스님(七人坊主) 전설과 연관 있다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이 이야기는 향토사학자 아사누마 료지(浅沼良次)가 엮어 1965년 출판한 민담집 ≪하치조섬의 민화(八丈島の民話)≫에 <일곱 스님(七人のぼうさん)>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전설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옛날, 바다 위를 표류하던 승려 7명이 하치조섬 바닷가에 표착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뭍에서 온 승려들을 '이상한 주술을 사용하는 사악한 존재'라며 두려워하며 핍박했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울타리를 치고 덫을 놓아 이들이 마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급기야는 식량조차 구하기 힘든 산으로 몰아냈다. 승려들은 산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저주하면서 하나둘씩 죽어갔다.
승려들이 죽은 뒤부터 마을에서는 불길한 일들이 잇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흰 옷을 입은 승려들의 혼령이 마을을 배회하는가 하면, 흉년이 들고 가축들이 죽어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승려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죽은 산 꼭대기에 승려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승려들의 저주는 여전히 계속되어, 지금도 산 근처에서 승려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들을 험담하면 반드시 재앙이 찾아온다고 한다.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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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법률로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대응된다.[2] 백골 발견 당시에 소각로가 이미 식은 뒤였기 때문에, 좀더 정확히는 8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무단 화장을 했다고 추측했다.[3] 한국에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분(草墳)이라 하여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4] 만약 7구가 모두 가족 내지는 혈연관계라면 같은 묘역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묘지 전수조사를 하였다.[5] 당시 지역 신문에도 보도된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