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폴리스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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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 Tratado de Petrópolis (트라타두 지 페트로폴리스)
스페인어: Tratado de Petrópolis (트라타도 데 페트로폴리스)

파일:페트로폴리스 조약.jpg
지도 상의 붉게 칠해진 지역이 지금의 아크리 주이다. 조약의 결과로 브라질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 개요
2. 배경
3. 결과
4. 기타


1. 개요[편집]


1903년 11월 17일,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에서 채결된 브라질볼리비아 간의 영토 조약이다. 당시 볼리비아 영토였던 아크레(오늘날의 아크리 주)를 둘러싼 볼리비아와 브라질 사이의 갈등을 종식시켰다.


2. 배경[편집]


아크리 주는 1750년부터 지금의 볼리비아의 영토로 포함되었다.[1] 1879년 아마존의 고무 산업 붐으로 인해 고무 채취를 위해 브라질인들이 아크리 지역에 정착을 시작하게 했다. 1898년 브라질은 현재의 아크리 주가 볼리비아 영토인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정작 볼리비아인들은 아마존 밀림 속에 위치한 아크리에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관리가 어려웠다.

1899년, 볼리비아는 아크리 지역의 브라질인을 몰아내고 자국의 영토임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에 브라질 정착민들은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볼리비아인들을 쫓아냈다. 이후 아마조나스 주지사였던 안토니우 하말류 주니오르는[2] 1899년 7월 14일 아크리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브라질 정부는 이 지역을 볼리비아의 영토로 인정했기 때문에, 1900년 3월 15일 아크리 공화국을 해산시키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아크리 주민들은 여전히 독립을 원했고 1900년 11월 아크리 제2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볼리비아는 1달만에 군대를 파견하여 강제로 해산시켰다. 1902년 8월 6일, 아마조나스의 새로운 주지사인 주제 플라시두 지 카스트루[3]는 아크리 혁명을 일으켜 아크리 전 지역을 확보하고, 호드리기스 아우베스 브라질 대통령은 아크리 제3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전쟁이 더 확대되기 전에 브라질의 외무부 장관인 히우 브랑쿠 남작은 협상을 제안했고 이로 인해 채결된 조약이 바로 페트로폴리스 조약이다.


3. 결과[편집]


브라질은 보상금으로 2백만 파운드를 요구하고 아크리 지역을 자국 영토로 합병했다. 또한 브라질은 볼리비아와의 국경 지역에 세관을 설치했다.

내륙국인 볼리비아는 아마존 강을 이용한 대서양 무역을 요구하여, 아마존 강을 통해 브라질 영토를 다닐 수 있는 항해 조약이 포함되었다. 대신, 볼리비아는 마투그로수의 남서쪽의 일부 영토를 얻고 브라질 국경 지역 및 마나우스, 벨렝, 코룸바에 세관을 설치했다.

또한 브라질은 국경지역의 구아자라미링에서 혼도니아 주의 포르투벨류를 잇는 마데이라-마모레 철도를 건설해주기로 합의했다.[4] 이를 통해 볼리비아는 자국의 수출품을 포르투벨류 항까지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5]


4. 기타[편집]


아크리 주의 주도인 히우브랑쿠는 본 조약의 채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히우 브랑쿠 남작의 이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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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리비아는 1825년에 독립했다.[2] 본명은 António Monteiro Ramalho Júnior이다.[3] José Placido de Castro[4] 파일:estrada-de-Ferro-Madeira-Mamore.png
자주빛으로 이어진 선이 노선이다. 철도는 브라질의 혼도니아 주에 위치한다. 검정색 둥근 원은 사람이 사는 마을을 표시한 것이다.
[5] 철도는 1912년부터 1973년까지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