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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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벨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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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49번
톰 니덴퍼
(1981~1987)

팀 벨처
(1987~1991)


톰 칸디오티
(1992~1997)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31번
존 프랑코
(1984~1989)

팀 벨처
(1992~1993)


척 맥엘로이
(1994~1996)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36번
스캇 헤몬드
(1992)

팀 벨처
(1993)


스캇 러프콘
(1994~199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41번
존 데실바
(1993)

팀 벨처
(1994)


스티브 로드리게스
(1995)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31번
제리 윌라드
(1994)

팀 벨처
(1995)


바비 아이알라
(1997~1998)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41번
밀트 힐
(1994)

팀 벨처
(1995)


스티브 프레이
(1995)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41번
빌리 브루어
(1994~1995)

팀 벨처
(1996~1998)


돈 웬거트
(1999)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번호 41번
리치 데루시아
(1997~1998)

팀 벨처
(1999~2000)


존 래키
(2002~2009)




파일:Tim Belcher.jpg

티모시 웨인 "팀" 벨처
Timothy Wayne "Tim" Belcher

출생
1961년 10월 19일 (62세)
오하이오 주 마운트 길리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하이랜드 고등학교 - 마운트 버논 나자렌 대학교
신체
190cm / 9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MIN)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NYY)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7~1991)
신시내티 레즈 (1992~1993)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4)
시애틀 매리너스 (1995)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6~1998)
애너하임 에인절스 (1999~2000)

1. 개요
2. 선수 경력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여러 팀에서 쏠쏠히 활약한[1] 전형적인 저니맨.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1999년 있었던 박찬호와의 벤치 클리어링으로 매우 유명하다.


2. 선수 경력[편집]


마운트버넌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3년, 미네소타 트윈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거부하였다. 이후 1984년 뉴욕 양키스로부터 지명을 받는데, 직후 지명권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팔리는 바람에 마이너리그 생활은 오클랜드에서 했다.

그러던 1987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릭 허니컷을 주고 그를 트레이드해왔다. 트레이드 3일 뒤인 1987년 9월 6일, 중간계투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첫 경기에서 2이닝을 소화하고 첫 승을 챙긴다. 그 다음 경기부터, 그는 다저스의 선발진 한 자리를 꿰차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로 1991년까지 다저스의 선발진으로 경기를 뛰었으며, 1988년에는 신인상 3위, 1989년에는 사이 영 상 6위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89년은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이 해에만 10완투 8완봉 230이닝 ERA 2.82를 기록하면서 전년도 오렐 허샤이저에 뒤이은 다저스의 에이스로 팬들에게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이후에도 활약하였으나 1991년 시즌 후 존 웨틀랜드와 함께 에릭 데이비스킵 그로스를 상대로 신시내티 레즈에 트레이드된다. 이후 1993년에는 제프 피어스자니 러핀을 상대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됐다. 성적도 1992년 이후로는 노쇠화의 영향인지 슬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신시내티 레즈에서 로저 사켈드를 상대로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 캔자스시티 로열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등의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 되었다.

FA로 2년 계약을 맺고 뛰던 에인절스 시절이던 1999년 5월, 그는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바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 박찬호와 시비가 붙은 것이다. 1박 2일 특별출연 당시 박찬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박찬호가 만루홈런을 당해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 벨처가 희생번트를 치고 1루로 달려가는 박찬호에게 고의적으로 태그를 가격 수준으로 강하게 했고, 이에 찬호가 아프다고 항의하자 벨처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었으며, 이에 분노한 박찬호가 벨처에게 돌려차기를 했던 것인데, 이는 아직까지도 MLB 난투극 BEST 10에 오를 만큼 흑역사로 남았다. 정작 박찬호는 돌려차기를 한 후 제압당하고 말았다.[2] 이로 인해 한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물론 당시 한국에서 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이후에 박찬호가 말하길 당사자들끼리 잘 해결했다고 하지만. 넘어지면서 주먹으로 박찬호의 머리를 5대 때린 장면도 나왔다.[3]

이후 어깨 부상을 입으면서 2000년에는 9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면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고, 어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면서 재기를 노렸으나 돌아오지 못하고 에인절스와의 2년 계약이 끝이 났다. 위와 같은 이슈와는 별개로 에인절스에서는 2년 동안 10승밖에 기록하지 못하면서 돈값을 하지 못했다는 평. 이후 2001년에 에인절스와 마이너 계약을 다시 맺고 재기를 노렸으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5경기 ERA 10.80을 기록하자 구단에게 은퇴 의사를 밝히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단장 보좌로 활동하기도 했고,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인디언스의 투수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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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빅리그 14시즌 2442.2이닝 동안 통산 146승과 ERA 4.16[2] 해당 방송분에서 박찬호는 애초 옆차기를 가하려다가 야구화 바닥에 깔린 스파이크 때문에 자칫 치명상이 생길 거라는 걱정에 돌려차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이 당시 현지에서는 박찬호에 대한 비판이 훨씬 심했으며, 박찬호는 이 일로 인해 7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었다.[3] 당시 다저스의 더그아웃 측에서 오히려 박찬호를 냉랭하게 대했을 정도로 박찬호도 굉장히 많은 비판을 받은 건 사실인데 이유는 전술된 대로 그가 1라운드 지명만 두 번을 받았던 적도 있지만, 1988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까지 다저스의 마지막 월드 시리즈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구단에서 절대 좋게 볼 수가 없었던 것. 결국 다저스 구단 측의 권유로 박찬호가 이후에 벨처에게 먼저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했으며, 오죽하면 당시 지역 언론사에서 Jackie Chan Ho Park이라고 작심하고 비판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