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디 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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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Tandy의 컴퓨터들
2.1. TRS-80
2.2. Tandy 2000
2.3. Tandy 1000
2.3.1. Tandy 호환 컴퓨터
2.3.2. 한국에서



1. 개요[편집]


탠디 코퍼레이션(Tandy Coporation)은 1919년에 텍사스 포트워스에 설립한 가죽용품 회사였다. 데이브 탠디(Dave L. Tandy, 1889~1966)는 두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아들인 찰스 탠디(Charles D. Tandy, 1918~1978)는 1962년 라디오셰크(RadioShack)이 파산했을 때 전자 제품 사업의 전도유망함을 보고 인수하면서 전자 제품 업종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찰스 탠디는 인수한 라디오셰크를 전자 제품 소매점 프랜차이즈로 키워 나갔으며, 1970년대 중반이 되자 3000군데도 넘게 되었다. 그러나 1976년 찰스 탠디와 이사회는 사업 집중을 위해 가죽용품 사업과 전자 제품 사업을 분할하기로 결정하면서 컴퓨터 역사에서 유명한 탠디 코퍼레이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7년에 출시한 8비트 컴퓨터인 TRS-80 시리즈와 IBM PC 호환 기종으로서 미국 시장에 한 획을 그은 1984년에 출시한 Tandy 1000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러나 1991년부터 컴팩이 2차 컴퓨터 가격 전쟁을 시작하자, 이를 버티지 못한 탠디는 1993년 Tandy 1000을 단종했을 뿐만 아니라, IBM PC 호환 기종 제조 사업을 AST 리서치(AST Research)에 매각하면서 라디오셰크 유통망을 통한 다른 회사의 컴퓨터와 전자 제품 유통 사업에 전념했다. 2000년에는 회사 이름을 탠디 코퍼레이션에서 라디오셰크 코퍼레이션으로 다시 변경했으나 2015년 파산했다.

2020년 11월부터 사모펀드 투자회사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이 회사는 라디오셰크 브랜드를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프랜차이즈에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암호화폐로도 사용하고 있다.


2. Tandy의 컴퓨터들[편집]



2.1. TRS-80[편집]


파일:cccc.jpg
▲ Tandy TRS-80 Color Computer

Tandy는 1977년 자신들이 자체 개발한 PC, TRS-80을 자체 유통망 라디오셰크를 통해 유통했으며, 여기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후 TRS-80과 파생 기종들로 1980년대 초반까지 6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잘 나가 다양한 사양의 컴퓨터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CPU로 처음에 자일로그 Z80을 사용했으나, 이후 모토로라 6809, 인텔 80186를 사용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일본의 전자 계산기 형태의 휴대용 컴퓨터를 수입해 TRS-80을 달아 팔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애플 IIIBM PC가 등장했고, 특히 코모도어 64의 1차 컴퓨터 가격 전쟁에 밀리면서, Tandy도 끝내 IBM PC 호환기종 개발로 돌아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그 유명한 Tandy 1000 시리즈. 비슷한 콘셉트 만든 컴퓨터로 Tandy 2000도 있었으나 1000시리즈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2.2. Tandy 2000[편집]


1983년 발표된 기종으로, Tandy 1000보다 먼저 나왔으며 Tandy 1000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Tandy의 첫 IBM PC 호환 기종이며 CPU로 인텔 80186를 채용해 IBM PC XT는 물론 초기 버전 IBM PC AT보다도 속도가 빨랐다. 그러나 IBM PC 시리즈와 호환이 완벽하지 않아 실행에 문제가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있었고, ISA 버스를 채택하지 않아 확장에 한계가 있었으며, CGA와도 제대로 호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장 장치로 720KB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채택하는 등 여러 문제들이 있었으며 가격도 비싸 1988년에 Tandy 1000 시리즈보다 빠르게 단종되었다.


2.3. Tandy 1000[편집]


파일:Tandy-1000.png

1984년 IBMIBM PC로 사무용 컴퓨터 시장은 장악했지만, 가정용 시장을 노리고 같은 해 출시한 IBM PCjr가 형편없는 성능과 비싼 가격, 어이없는 주변 기기 구성 등으로 비판받고 있었다. Tandy는 여기에 착안해 사용자들이 진짜 원했을 법한 성능을 가진 IBM PCjr의 개선판을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한 뒤, 빠르게 움직여 결국 1984년 11월에 Tandy 1000을 출시했으며, 이게 소위 대박을 친다.

  • PCjr이 혹평을 듣는 데 크게 일조한 치클릿 키보드 대신 후지쯔 스위치를 사용한 근사한 기계식 키보드를 제공했다. 단, 최초의 101키 표준 키보드였던, 1985년에 나온 IBM PC Model M 키보드보다 먼저 나왔기 때문에 초기 Tandy 1000 제품의 경우 키보드 배치는 생소한 편이다. 2010년대 이후 유행하는 컴팩트 레이아웃과 비슷해 보여도 배치가 서로 다르다. 위치가 서로 다른 키가 많아 지금 실제 사용하기는 애매하다. 컨버터가 있어 현행 PC에 연결해 사용할 수는 있다. 이후에 출시된 Tandy 1000 모델은 IBM PC Model M과 같은 배치를 가진 키보드로 교체했다.
  • IBM PCjr에 향상된 그래픽 기능을 넣고도(Video Gate Array, 소위 CGA+) 메인 메모리의 용량이 64KB인 바람에 메모리 확장 없이는 CGA와 똑같이 동작하던 것과 달리, Tandy 1000은 기본 메인 메모리 용량이 128KB이며 640KB까지 확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구입하자마자 CGA에 비해 향상된 그래픽을 즐길 수 있었다. PCjr와 Tandy 1000 초기 버전이 그래픽과 사운드의 사양이 비슷하면서 호환되었는데 위에 쓰여진 이유로 'PCjr 호환'이라는 표현보다 'Tandy 호환'이라는 말이 훨씬 널리 쓰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PCjr은 ISA 슬롯이 없었으나, Tandy 1000은 있었기 때문에 확장성이 좋았으며, XT-IDE 컨트롤러 ISA 보드를 장착하면 표준형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도 쓸 수 있었다. PCjr도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쓸 수 있지만 전용 외장형 하드 디스크를 써야 했기 때문에 크고 불편하고 비쌌다.
  • IBM PC-DOS만 제공했던 PCjr과 달리 Tandy 1000은 MS-DOS에 데스크메이트(DeskMate)라는 쓸만한 GUI 셸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했다. Mac OS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스케줄러나 메모,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등 간단한 사무용으로는 충분히 쓸만했다.

이렇게 사양이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PCjr보다 저렴했다. Tandy 1000이 돌풍을 일으키자 IBM은 1984년 크리스마스에 Tandy 1000 수준으로 가격을 인하했으나 Tandy는 컬러 모니터를 끼워주며 응수했고, 결국 IBM은 더 버티지 못하고 1985년 PCjr를 단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IBM PC 호환 기종 시장은 Tandy 1000을 위주로 빠르게 개편되었고, 이렇게 찾아온 Tandy의 제2의 전성기는 1991년 컴팩이 2차 컴퓨터 가격 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1993년까지 Tandy 1000 후속 기종들로 명맥을 유지했다. 파생 기종 모델명은 대부분 Tandy 1000 뒤에 영숫자가 추가로 붙는 방식.


2.3.1. Tandy 호환 컴퓨터[편집]


앞서 서술한대로, Tandy 1000이 출시된 이후 PCjr과 호환되는 그래픽(일명 CGA+ 또는 Video Gate Array) 모드, 오디오를 지원하는 기종 및 소프트웨어를 'Tandy 호환 컴퓨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CGA 대비 추가된 그래픽 모드는 160×200 16색, 320×200 16색, 그리고 640×200 4색이며, 이후 한 차례 기능을 업그레이드해 640×200 16색 모드가 추가된다. 비디오 부분만 따로 TGA(Tandy Graphics Adapt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디오의 경우는 초기 모델은 PCjr과 동일한 PSG 방식이지만 이후 PCM과 PSG를 동시에 출력할 수 있는 사운드칩을 달고 나오게 된다.


2.3.2. 한국에서[편집]


Tandy 1000이 대박을 친 1980년대 중후반 시기에 한국에서는 MSX, 애플 II plus 등의 8비트 컴퓨터들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8비트 컴퓨터 본체만 장만하려고 해도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이 들어갈 정도로 한국 서민에게는 컴퓨터가 대단한 고가품이었기에 소비자들이 16비트 컴퓨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한국 중소기업이나 컴퓨터 매장에서 싸게 부품을 모아 조립한 IBM PC 호환 기종도 비싸서 보급이 잘 안 되는 판에, Tandy 1000은 미국에서 가성비가 뛰어나다고는 해도 그건 미국에서의 얘기였을 뿐 당시 보호무역이 강했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Tandy 1000은 동아시아 문자를 표기하기에 부적합한 건 동세대 다른 IBM PC 호환 기종들과 사정이 비슷해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꼭 필요했는데, 이러면 더 비싸지기만 했다.

교육용 PC 사업에서 16비트를 밀어주기로 결정한 1989년이 되어서야 8비트 대신 16비트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에 썼듯, 동아시아 문자 표기에 적합한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 카드와 멤브레인 또는 기계식 84키/101키 호환 제품들이 확고히 자리잡은 상태였다. 사운드 카드나 조이스틱 단자 등의 입출력 카드도 이미 애드리브 호환 사운드 카드와 멀티 I/O 카드[1] 덕에 Tandy 1000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틈새는 없었다. 보급 자체가 되지 않았으니 Tandy 전용 소프트웨어가 한국에서 흥할 수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들은 Tandy 1000을 주로 컴퓨터 잡지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당대의 게임 환경설정에서 CGA, EGA, PC Speaker, Ad Lib 등의 사이에 꼬박꼬박 끼어 있는 'Tandy'가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이나 가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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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우스 및 모뎀용 직렬 포트, 프린터용 병렬 포트, 조이스틱 포트 등이 모두 달려있는 일체형 주변 기기. 이후 메인보드에 내장되는 형태로 진화했다가 USB 규격이 탄생하면서 이후 PC에서는 관련 다른 단자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