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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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50년 6.25 전쟁 때 고양군이 북한군 치하에 있을 때 일산 등에서 조직된 자생적 조직이다.[1]

태극단선양회에서는 태극단 활동에 대해서 고려 시대 몽고 침략에 항쟁한 승병 및 삼별초, 조선 시대 임진왜란조헌, 곽재우, 고경명, 사명대사, 일제 시대 안중근, 홍범도, 광주학생의거 등 의병의 성격을 가진 단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요 구성원은 경의선 통학생들, 교사 및 공무원, 애향심이 강한 지역민들이다.



2. 활동[편집]



경의선 커브지점인 강매리와 금촌역 인근 지점에서 북한군의 무기를 탑재한 기차를 탈선시켰다.

한강 난지도에서 북한국 양곡 수송선을 기습하여 수류탄 수십바로 양곡 수송선을 격침시켰다. 격침 과정에서 태극단원 3명이 전사했다.

태극단 소속 교사 3명[2]이 유엔군 참전 소식을 알리는 안내문을 제작하고 북한군에 협조하지 말것을 권하는 벽보를 제작하여 태극단원들과 함께 교하면 일대와 임진강 노역장에 배포했다.

북한군이 주민들을 강제징용하여 인민위원회 사무실에 감금하자 태극단원들이 기습하여 징용자들을 탈출시켰다.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고양군 인민위원회 건물을 총격전으로 탈환했다.

서울 수복을 열흘 앞둔 9월 정발산 전투 때 남아 있던 북한군들에게 발각되어 50여명이 학살당했다.


3. 해체[편집]



서울 수복 후 살아남은 이들은 지역 치안활동을 하다가 10월 말에 국방부 정훈국 별동대 등에 배치되어 해체됐다.

총격전과 고문 등으로 전사한 태극단원 45명과 특수임무 중 전사한 5명을 1957년 파주에 가매장된 유해 45구를 고양군 송포면 덕이리에 태극단 순국열사 묘지에 안장했다.


4. 현재[편집]



현재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에 태극단선양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순국열사[3]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5. 논란[편집]



서울 수복 이후 경찰서에서는 북한군 점령 당시 인민위원회 부역자들을 조사했고, 인민위원장 등 부역자들이 사살되었다. 이때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수직으로 파놓은 금정굴에서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는 금정굴 사건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태극단이 우익 치안대와 함께 학살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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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9년에 만주에서 결성된 항일투쟁단체와 다른 조직이다.[2] 순직 정태경, 윤자설, 유영선[3] 명단: 김기선 김기웅 김영배 김영찬 김영화 김용문 김용택 김인식 김재환 김종석 김태호 김희균 김복환 노원우 박건병 박명근 박정양 방상근 백정기 박영수 신승균 안성식 안영근 원희정 유영선 유재국 윤석만 윤옥천 윤자설 이덕연 이동재 이두영 이면재 이병열 이승국 이영재 이응만 이응복 이응선 이장성 이재선 이재훈 이정의 이학재 이한춘 이홍림 이효구 임건혁 정은수 정태경 조원기 최희성 홍원식 황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