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스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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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Scarver

1969년 7월 6일 생.

1. 개요
2. 생애
3. 살인
3.1. 제시 앤더슨과 제프리 다머 살인
4. 근황
5. 반응
6. 매체에서 등장



1. 개요[편집]


미국의 살인범으로, '밀워키의 식인종'이라 불린 제프리 다머를 살해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키는 191cm에 달하는 장신이다.


2. 생애[편집]


스카버는 다섯 자녀 중 둘째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1학년에 중퇴하고, 술과 대마초에 중독에 빠지는 바람에 부모의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 스카버는 결혼을 하여 아들을 가지게 되었고, 위스콘신의 환경 보존단에 목수로 고용되어 견습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의 상관 "에드워드 패트"는 이 견습을 마치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임을 약속했지만, 상관이 해고되면서 스카버의 정규직 자리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스카버는 술에 심각하게 의존해 다녔고, 취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선택된 자"라는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에 그는 정신착란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된다.


3. 살인[편집]


1990년 6월 1일, 스카버는 해고되었던 상관의 후임자 "스티브 로먼"에게 총을 겨누면서 보상을 요구하였다. 로먼은 장난을 치듯이 15달러[1]를 내밀었고, 스카버는 이런 대우에 격분하여 로먼의 머리에 총을 쏘면서 그를 살해한다. 직후에 스카버는 감독 "존 페이엔"에게 찾아가 돈을 요구했고 페이엔은 스카버에게 미화 3,000 달러의 수표를 주곤 도망치자 스카버는 그에게 총을 쐈지만 빗나가 맞추지 못한다.

스카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되었고, 1992년에 판결되어 포티지(위스콘신)에 있는 컬럼비아 교정 기관으로 보내지면서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감옥에서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고, 감옥에 있는 교회를 자주 방문했다.


3.1. 제시 앤더슨과 제프리 다머 살인[편집]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하는 일은 아무것도 정당하지 않다(Nothing white people do to blacks is just)."#

1994년 11월 28일 아침, 아내를 죽이고 흑인에게 뒤집어 씌운[2] "제시 앤더슨"과 유색인종 남성 및 아이 17명을 살해하고 식인을 자행한 "제프리 다머"는 스카버와 함께 화장실 청소 작업을 맡았던 도중에 크리스토퍼 스카버에게 살해당했다. 평소에 교도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에 교도관은 자리를 잠시 비워두었던 사이에 살인이 벌어진 것이었다. 제프리 다머는 머리에 흉기로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 중에 죽었으며, 앤더슨은 부상으로 인해 이틀 후에 사망했다.

실제로 교도소에서 식사할때 살인을 추억하듯이 음식을 잘린 팔다리로 만들어 케첩을 뿌려 피를 시뮬레이션하는 식으로 다른 죄수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등, 다머는 교도소에서도 인간 관계가 매우 개판이었다. 더 나아가서 흑인 죄수들은 다머에게 적의감을 품었고, 예배하는 날에 한 죄수가 다머의 목에 칼로 상해를 입힌 일도 있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당시 스카버는 다머의 사건이 실린 신문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를 쭉 미행했다고..

당시 스카버의 주장에 따르면 다머는 감옥의 죄수들중 자신의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는 죄수였다고 한다. 제프리의 죽음은 신의 의지이자 자신은 신에게 지시를 받고 시행했을 뿐이었다고 하였다. 스카버는 다머와 앤더슨에게 시비가 붙어졌으며, 특히나 제프리 다머의 사건이 실린 신문을 보여주며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꼭지가 돌아버린 스카버는 강철 막대로 다머와 앤더슨의 머리를 여러 차례 강타했으며, 제프리 다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살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어서 날 죽여 봐. (I don’t care if I live or die. Go ahead and kill me.)"였다고 한다. 허나 이 증언은 스카버 만의 주장일 뿐더러, 본인 또한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환자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가 어디까지인지 확실하게 증명 된 바는 없다.


4. 근황[편집]


스카버는 그 후로 무기징역을 추가로 선고 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1995년에 연방교도소국으로 옮겨졌고, 이후로 콜로라도주 플로렌스에 있는 한 교도소로 옮겨져 복역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에 CNN는 크리스토퍼의 아들인 "크리스 스카버"와 인터뷰를 했는데, 크리스는 "아버지가 제프리를 죽인 것은 교도관의 교묘한 술수였으며 교도관들은 다머를 매우 싫어했고 아버지가 그런 다머를 증오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단 둘만 있을 공간을 제공하여 그를 죽이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했다.

2015년, 크리스토퍼 스카버는 "신의 씨앗"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5. 반응[편집]


다머를 살해했을 때 이미 살인죄로 수감된 스카버는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진정한 정의'를 제공한 영웅이라며 극히 칭송을 받고 있다.# 이는 그럴 만도 한 것이, 제프리 다머는 17명을 살해하고 시체 절단해 인육을 먹기 까지로 악명이 높았던 자였기 때문. 당연히 다머의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정의 구현이 실현되었다며 기뻐하거나 속이 후련하다고 할 정도였다.

특히 스카버의 과거를 고려할때, 당시 인종차별이 미국에서 막심했고 스카버 또한 평소에도 인종차별 및 흑인비하를 당해왔다는 것에 동정심을 표하는 반응도 많았다.


6. 매체에서 등장[편집]


2002년 영화 다머에선 맨 후반의 엔딩에서 다머는 복역 도중에 '다른 수감자'에게 살해당했다는 글귀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2022년 드라마 다머의 9화에 잠시 등장하다가 최종화인 10화(용서의 신, 복수의 신)에 본격적으로 비중이 있게 등장한다. 중반부에는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장면과 후반부에는 제프리 다머와 제시 앤더슨을 살해하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미국 배우 펄리 맥(Furly Mac)이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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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대 환화 기준으로 1만원 정도였다.[2] 당시엔 1992년 4월 21일이었으며, 스카버와 다머처럼 종신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