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 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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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진행
2.1. 발단
2.2. 비상사태 선포
2.3. 전쟁의 끝
3. 여담


1. 개요[편집]


볼리비아의 대도시 코차밤바의 수도가 민영화되어 수도요금이 폭등하자 1999년 12월부터 2000년 4월까지 진행된 대규모 시위.


2. 진행[편집]



2.1. 발단[편집]


1980년대 초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하던 볼리비아는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세계은행은 지방 부패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볼리비아 정부에 라파스를 비롯한 대도시 수도의 민영화를 요구했고 결국 의회는 1999년 2029법을 제정해 코차밤바의 수도를 정부가 관할하던 수도 공사의 부채를 갚아주고 댐을 짓는 조건으로 대부분이 벡텔(Bechtel)을 비롯한 해외 자본으로 이루어진 기업체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에 넘겼다.

이때부터 코차밤바시의 수도요금은 민영 기업의 입맛에 따라 200%까지 폭등했으며 코차밤바의 모든 수도는 통째로 권한이 아구아스 델 투나리로 넘어감에 따라 빗물을 받거나 우물을 파는 것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고 강물이나 호숫물을 긷다가 야생동물에게 습격을 받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에 분노한 코차밤바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2.2. 비상사태 선포[편집]


육군 대위가 시위대에 발포하여 고등학생 1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볼리비아 정부는 코차밤바에 90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도시 전체가 군과 경찰에 의해 포위되었고 양상은 더욱 격화되어 도로에는 화염병고무탄이 난무했다. 이때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에보 모랄레스는 원주민 코카 재배자들과 손을 잡고 시위에 나서 미국마약과의 전쟁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이후 교사들도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위에 참여하자 1982년 민주화 이후 꾹꾹 눌러 왔던 요구들이 터져나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비상사태 기간을 전후하여 발생한 충돌로 군경과 시위대 양측에서 총 6명이 사망하고 175명이 부상당했다.


2.3. 전쟁의 끝[편집]


경영진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분노에 소스라치게 놀라 산타 크루즈로 은신했다. 그럼에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코차밤바의 물을 다시 국유화시키는 협약에 서명하고 2029법이 폐지됨에 따라 사태는 종결되었지만 벡텔은 컨소시엄의 네덜란드 지분을 근거로 5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상징적인 금액인 2볼리비아노(약 400원)만을 받고 2006년 볼리비아에서 철수했다.


3. 여담[편집]


에보 모랄레스는 이때를 기점으로 정치적 입지를 키워가다가 훗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영화의 단점으로 소개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며 한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현대사(신자유주의) 파트에도 수록되었다.

2008년작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는 볼리비아에서 물을 독점하려는 민영회사로 위장한 비밀조직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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