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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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habamba
코차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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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
국가
볼리비아

코차밤바 주
Departamento de Cochabamba
면적
170km²
인구
856,198명
(2012년 기준)
시간대
UTC -4

고도
2,558m


Cochaba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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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CHA2.jpg

1. 개요
2. 역사
2.1. 잉카와 잉카 이전
2.2. 스페인과 볼리비아
2.3. 물 전쟁
3. 기후
4. 사람과 문화
5. 정부
6. 경제
7. 도시 교통
7.1. 경전철
8. 기본 서비스
9. 매체
9.1. 인쇄 매체
9.2. 라디오 방송국
9.3. 텔레비전 채널
10. 교육
11. 공항
12. 추가 관심 사항
13. 주목할 만한 거주자
13.1. 실업가
13.2. 음악가
13.3. 문학가
13.4. 기타
13.5. 나치
14. 자매 도시




1. 개요[편집]


코차밤바는 볼리비아 중부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도시이다. 코차밤바 주의 주도이며 볼리비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름은 케추아어로 "호수"와 "평원"이라는 팜파를 합친 것이다. 도시와 주변 지역의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코차칼라 또는 더 공식적으로 코차밤비노라고 불린다.

이곳은 일년 내내 봄과 같은 기온 때문에 "영원한 봄의 도시" 또는 "정원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는 케추아어로 "마을"을 의미하는 "La Lajta"로도 알려져 있다. 동쪽의 열대 평원에 있는 라파스산타크루즈 데 라 시에라 사이에 있는 가장 큰 도시 중심지이다. 투나리 산맥의 남서쪽과 발레 알토 산기슭의 북쪽에 위치한다. 고대에, 이 지역은 수많은 호수를 특징으로 했고, 이것은 도시의 이름을 부여했다. 이 호수들 중 많은 것들이 도시 개발로 사라졌지만, 코냐 호수와 알랄레이 호수가 현존하는 예이다. 잉카 이전부터 인구가 밀집한 정착지였으며, 오늘날 중요한 문화, 교육, 정치, 상업의 중심지이다.


2. 역사[편집]




2.1. 잉카와 잉카 이전[편집]


코차밤바 계곡은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살았다. 고고학적 증거는 초기 거주민들이 원주민 민족이었음을 시사한다. 티와나쿠, 투푸라야, 모조코야, 오메레크, 잉카는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 계곡에 살았다.

이 지역은 잉카 문명의 일부로서 케추아 코차지팜파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지역은 토파 잉카 유팡키 (1471–1493)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인 우아이나 카팍은 잉카인들을 섬기기 위해 코차밤바를 큰 생산지 또는 국영 농장으로 바꾸었다. 잉카 정복 기간 동안 현지 인구는 고갈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와이나 카팍은 미티마라고 불리는 14,000명의 사람들을 수입하여 이 땅을 일구었다. 주요 작물은 잉카 제국의 높고 추운 중심지에서 재배할 수 없는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2,400개의 저장고(콜카스)에 보관되거나 라마 캐러밴에 의해 다른 잉카 행정 중심지인 파리아, 쿠스코의 저장 장소로 운반되었다. 대부분의 옥수수는 아마도 잉카군의 원정을 지탱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2.2. 스페인과 볼리비아[편집]


이 계곡의 최초의 스페인인 거주자는 1542년 가르시아 루이스 데 오렐라나였다. 그는 지역 부족장 아차타와 콘사바나로부터 토지의 대부분을 1552년에 포토시에 등록된 작위를 통해 구입했다. 지불한 가격은 130페소였다. 마요라즈고 가문으로 알려진 그의 저택은 칼라 칼라 지역에 있다.

1571년 8월 2일 오로페사 백작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 부왕의 명령으로 도시가 세워졌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알티플라노 지역의 광산 도시들, 특히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가 된 포토시에 식량과 목재를 공급하기 위한 농업 생산의 중심지가 될 예정이었다. 실제로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 등은 스페인에 제공한 돈과 물질주의 때문에 포토시를 자본주의의 탄생지로 꼽아왔다. 그리하여 포토시의 은광업이 절정에 달하면서 코차밤바는 첫 세기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광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18세기에 도시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1786년, 스페인 왕 카를로스 3세는 이 도시를 코차밤바의 '충실하고 용감한' 빌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1781년 오루로에서 일어난 원주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오루로에 군대를 파견한 도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기리기 위해 행해졌다. 19세기 후반부터 볼리비아의 농업 중심지로서 다시 한번 성공을 거두었다.

1793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도시의 인구는 22,305명이다. 12,980명의 메스티소, 6,368명의 스페인인, 1,182명의 원주민, 1,600명의 물라토, 175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있었다.

1812년, 코차밤바는 스페인 군대에 대항하는 폭동의 장소였다. 5월 27일, 수천 명의 여성들이 스페인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 역사학자 나다니엘 아기레에 따르면: "코차밤바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다. 한 명의 여자가 아니다. 산비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코차밤바의 평민 여성들은 궁지에 몰려 불의 중심에서 싸운다. 5천 명의 스페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은 박살난 양철 총과 몇 대의 아퀘부스로 저항한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을 위한 긴 전쟁 동안 울려퍼질 마지막 고함까지 싸운다. 그의 군대가 약해질 때마다,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은 용기를 회복하고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말들을 외친다. 장군은 그의 군인들에게 물었다. `코차밤바의 여자들이 왔느냐 ?'

그들의 용기를 기념하기 위해, 볼리비아는 이제 5월 27일을 어머니의 날로 기념한다.

1900년 기준으로 이 지역의 인구 수는 총 21,886명이다.

가톨릭 교구에는 55개의 교구, 80개의 교회와 예배당, 160명의 사제가 있다.


2.3. 물 전쟁[편집]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은 볼리비아에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1억 3천 8백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볼리비아가 국영 정유사와 현지 물회사인 세마파를 포함해 '남아있는 모든 공기업'을 매각하는 조건으로만 합의했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벡텔 코퍼레이션(Bechtel Corporation)이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라는 이름으로 모여 도시 용수의 민영화를 위한 권리를 사들였다. 같은 해, 세계은행은 사람들을 위한 비용을 낮추는 것을 돕기 위해 물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던 중 2000년 물값이 대다수가 감당할 수 없는 50% 인상으로 치솟자 코차밤바 주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물과 생명의 방어를 위한 연합과 그 지도자 오스카 올리베라는 La Plaza Principal로 알려진 La Plaza 14 de Septiembre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행진은 평화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틀 후 경찰은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사용하여 175명의 부상자를 내고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명했다. 곧이어 시위와 폭력에 대한 뉴스 보도가 나왔다. 물과 생명의 방어는 비공식적인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5만 명의 96%가 아구아스 델 투나리의 계약이 해지되기를 원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시위는 점점 커지기만 했고 전 세계는 벡텔이 계약을 탈퇴하고 세마파를 대중에게 돌려주도록 강요하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벡텔은 또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5천만 달러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곧 철회했다. 이 사건은 곧 물 전쟁으로 불렸고 2010년 유엔의 물 위생을 인권으로 만들고 물의 민영화를 비윤리적으로 만드는 등 반세계화 프로젝트의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물 전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천연가스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다음 반란을 촉발시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자다와 카를로스 메사 두 대통령을 제거하고 2006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2007년 1월, 도시 거주자들은 대부분 시골 시위자들과 충돌하여 4명이 사망하고 13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최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코차밤바의 주지사 만프레드 레예스 비야는 볼리비아 동부 지역의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었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지역 자치와 다른 정치적 문제들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시위자들은 며칠 전 정부 부처의 자리에 불을 지른 후 고속도로, 다리, 주요 도로를 봉쇄하고 레이스 빌라의 사임을 강요했다. 시민들은 시위자들을 공격하여 봉쇄를 깨고 그들을 우회시켰지만, 경찰은 폭력을 막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위자들이 봉쇄를 복원하고 정부를 위협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근본적인 긴장은 해결되지 않았다.

2007년 7월, 1월 시위에 참가한 퇴역 군인들이 정부 지지자들에 의해 사망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한밤중에 파괴되어 도시의 인종 갈등을 다시 촉발시켰다.

2008년 8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코차밤바의 주지사인 만프레드 레예스 빌라는 투표자들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 2018년 코차밤바 시장은 호세 마리아 레예스이다.


3. 기후[편집]


코차밤바는 "영원한 봄"으로 유명하다. 산타크루즈 데 라 시에라의 습한 더위도, 라파스의 차가운 바람도 경험하지 못한 코차밤바는 아열대 고지대 기후(쾨펜: Cwb)와 경계를 이루는 반건조 기후(쾨펜: BSk)를 경험한다. 기후의 특징은 5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우기이며, 일반적으로 11월에 시작하여 3월에 주 강우량이 끝난다.


4. 사람과 문화[편집]


코차밤바는 볼리비아의 심장이자 미식 수도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요리로는 살테냐스, 추뇨, 투쿠마나스, 피케 마초, 실판초, 안티쿠초, 소파데마니, 치하론, 차르, 프리카세, 릴레노스 데 파파 등이 있다.

BAU(Biennal de Arte Urbano)로 알려진 국제 거리 예술 축제는 2011년부터 2년마다 코차밤바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축제는 지역 문화 중심지인 프로이펙토마르타데로에 의해 조직된다. 2011년, 2013년, 2015년, 2017년에는 빌라 코로나야와 제로니모 데 오소리오 지역에서 그림을 그렸다. 2019년에는 알레이 호숫가에 위치한 에스페란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축제는 블루 (이탈리아)와 인티 (칠레)와 같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을 선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고원에 있는 다른 대도시들과 비례하여, 코차밤바는 대조적인 도시이다. 중심 상업 지구인 조나 노르테는 콜론 광장과 셉티엠브레 광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현대적인 도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미 최대 노천시장인 라 칸차도 현지인들이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활발한 곳이다. 밤에는 칼레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넓은 가로수길인 엘 프라도를 따라 활기찬 밤 문화가 펼쳐진다. 대조적으로, 윌스터만 국제공항과 인접한 외딴 지역인 조나 수르는 어도비 주택과 비포장 도로로 눈에 띄게 가난한데, 이것은 방문객들이 도시로 통근하면서 얻는 첫 인상이다.

2009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정부는 스페인어와 36개의 토착어를 공식 언어로 선언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코차밤바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는 스페인어와 케추아어다. 코차밤바 지역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는 일반적으로 음성학과 어휘 면에서 다소 보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케추아어 용어의 사용은 표준화된 형태에 광범위하게 통합되어 있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특히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원주민들과 본국으로 송환된 코차밤비노들 사이에서 영어가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이해되고 있다. 영어 교육은 일부 사립학교와 대학교에 통합되었지만 보편적으로 가르쳐지지는 않기 때문에 인구의 대다수는 영어를 말할 수 없다.

볼리비아 인구의 약 5분의 4가 가톨릭 신자라고 한다.

살타나 쿠엥카와 같은 같은 민족 집단을 공유하는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코차밤바의 인구 통계는 다음과 같은 눈에 보이는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스티소(Mestizo) 또는 메스티소(Mestizo)는 케추아와 아이마라 민족의 토착민들로, 스페인계(크리올로스)와 다른 유럽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수의 아프리카계 볼리비아인들도 있다.

2013년까지 코차밤바 대도시 지역의 인간 개발 지수는 지난 20년 동안 35% 성장한 결과 0.801이었다.


5. 정부[편집]


코차밤바는 코차밤바 주의 주도이다. 시 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 나뉜다. 코차밤바 시장은 5년 임기의 총선거에 의해 선출된 시 정부의 수장이다. 시장은 6개의 부시장과 950명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다양한 부서를 포함하는 행정부를 이끌고 있다. 11명으로 구성된 시의회는 입법부이다.

현재 시장은 사회민주운동(MDS)의 호세 마리아 레예스이다.


6. 경제[편집]


코차밤바가 위치한 지역은 볼리비아의 곡창지대로 통칭된다. 기후는 서쪽의 알티플라노 지역보다 온화하여 고지대에서 곡물, 감자, 커피 등을 재배할 수 있다. 차파레 열대 저지대의 사탕수수, 코코아 콩, 담배, 과일을 포함한 광범위한 농업을 허용한다. 남미 아마존 지역은 나라의 주요 코카 잎 생산 지역 중 하나였다.

코차밤바는 또한 자동차, 청소 제품, 화장품, 화학 제품, 그리고 시멘트와 같은 다른 물건들을 생산하는 볼리비아의 산업 중심지이다. 코차밤바의 경제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GOJA와 Assuresoft와 같은 국제적인 회사들도 코차밤바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산업 성장으로 인해 코차밤바는 시스템 공학, 통신, 정보 기술과 같은 기술 경력에 몰두하는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 "볼리비아의 실리콘 밸리"로 불린다.

볼리비아나 데 아비아시온 항공사는 코차밤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로이드 아레오 볼리비아노 항공은 볼리비아의 항공사로 호르헤 윌스터만 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두고 있다. 코차밤바의 건설은 지난 몇 년 동안 매년 750개 이상의 건설 현장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나르코트래픽은 몇 년 전 코카인 딜러와 관련이 있던 코차밤바에서 현재 통제되고 있다.


7. 도시 교통[편집]


코차밤바의 대도시권(빈토, 티키파야, 퀼라콜로, 콜카피루아, 코차밤바, 사카바)은 모든 구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교통 체계를 가지고 있다.

A에서 Z까지 거의 70개의 버스와 미니버스 노선이 있으며, 수십 개의 미니버스와 고정 노선의 트루피스(T.RU.FI 또는 "택시 콘 루타 피야") 택시 노선. 대부분의 노선에는 시간을 모니터링하고 조절하기 위한 GPS 시스템이 있다(1호선, 16호선, L호선, 3V호선, 20호선, 30호선 등). T.RU.FI 서비스에는 최소 60개의 라인이 있으며, 이는 최초 정지에서 최종 정지까지의 경로를 나타내는 차량 지붕의 표지판으로 식별되며, 이 표지는 해당 서비스가 속한 라인 번호로도 표시된다. 가장 붐비는 버스 노선은 다음과 같다.

Q선(CBBA-QLO)
W선(CBBA-QLO)
3V선
B선(공항)
K선
X-10호선
36호선
1호선
30호선
13호선
"Z-12"호선(CBBA-TIQUIPAYA)

그리고 가장 붐비는 트루피 택시 노선은 다음과 같다.

택시 트루피 "110"
택시 트루피 "260" (코차밤바-퀼라콜로 라인)
택시 트루피 "270" (코차밤바-퀼라콜로 라인)
택시 트루피 "103" (녹색 선과 흰색 선)
택시 트루피 "106" (티키파야 선)
택시 트루피 "130" (순환선)
택시 트루피 "209" (순환선) (코차밤바-퀼라콜로 선)
택시 트루피 "123"
택시 트루피 "224" (사카바 선)
택시 트루피 "240" (사카바 선)
택시 트루피 "244" (사카바 선)
택시 트루피 "115"


7.1. 경전철[편집]


코차밤바와 수티콜로, 엘 카스티요, 산 시몬 대학교를 연결하는 미 트렌으로 알려진 도시간 경전철망 건설은 2017년에 시작되었다. 레드 라인과 그린 라인의 첫 번째 단계는 2022년 9월 13일에 개통되었다.


8. 기본 서비스[편집]


도시 위생 회사인 EMSA는 생산된 도시 폐기물의 픽업, 운송, 저장 및 제거를 담당한다. EMSA는 도시의 88%를 차지하며 하루에 400톤의 폐기물을 수집한다. 코차밤바 시 정부를 통해, 고체 폐기물을 일반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컨테이너가 만들어졌다. 시의 유일한 처리 시설인 카라 카라 폐기물 처리장(보타데로 카라 카라)은 공기와 지하수 오염에 대한 오랜 논쟁의 중심지였다.


9. 매체[편집]




9.1. 인쇄 매체[편집]


코차밤바에는 여러 신문이 있다.

로스 티엠포스
오피니온
라 보즈
헨테


9.2. 라디오 방송국[편집]


코차밤바 주와 주도에 흩어져 있는 주요 라디오 방송국은 다음과 같다.

에스트라 FM 93,1
센트로 Ltda.
메가 DJ
밀레니오
라보즈 델 주노
칸차 팔라스파
반데라 삼색기
코차밤바
가비오타 도라다
델 발레
산 라파엘
라 보즈 델 발레 - 푸나타
콘티넨탈
오로
트리운포 모레나
에포카
라베르다드 F.M.100.7
M&D 코뮌시온스
유니버설
판타지코 97.1
파노라마 FM 90.9
푸나타 라디오 파노라마 FM 88.9
FM-100 클래식
FM 스테레오 98.7 – 라보즈 데 아메리카
베델 FFM 95.5
리트모 97.5
라 트리플 누에브 99.9
라 파브라 데 라 뮤지카 107.1
마그날 데 카피노타
라디오 피데스 코차밤바, 푸나타 이 차파레
CEPRA 퐁고 카사 오전 1,390
소니도 라이더 95.9 FM
피오 12 FM 97.9
문디알
기념품
볼리비아 라디오 코스모스
CEPRA - 센트로 데 프로덕치온 라디오포니카
CEPRA - 모로코타 라디오
엔레이스
라디오 히트 105.7
라디오 디즈니 볼리비아


9.3. 텔레비전 채널[편집]


수도와 주 전역에는 지역, 지방, 전국 또는 국제적으로 하루 종일 또는 일부 방송하는 많은 텔레비전 채널이 있다. 국내 및 국제적으로 채널을 전송하는 송신탑은 칼라 칼라 칼라, 빌라 모스쿠 또는 빌라 타키냐에 있다.

채널 2: 채널 2 코차밤바 아메리카 하트 (현지)
채널 4: 네트워크 ATB (국내)
채널 5: 레드 볼리비아 (국내)
채널 7: 볼리비아 TV (채널 오브 더 스테이트)
채널 9: 볼리비아의 레드 원 (국내)
채널 11: TVU (현지)
채널 13: 레드 유니텔 (국내)
채널 15: 파일 2010-02-08 The Wayback Machine Christo Red 온다 (Legious Channel)
채널 17: sk TV (현지)
채널 18: 라디오 인민 텔레비전 (RTP) (국내)
채널 20: 피냐미 데 코뮤니케이션 (주)
채널 21: 2019-05-02 Wayback Machine TeleC 파일 (현지)
채널 24: 레드 어드벤쳐 인터내셔널 (기독교 채널 / 국제)
채널 26: 메트로 TV (현지)
채널 27: 기독교 통신 시스템 (현지)
채널 30: 30 TV (현지)
채널 36: 채널 A (국내)
채널 39: 유니발레 TV (현지)
채널 42: 레드 PAT (국내)
채널 45: 아바 얄라 텔레비전 (국내)
채널 48: 레드 유니텍 (현지)
채널 51: MTV 코차밤바 (현지)
채널 57: RTL 뉴스 채널 (현지)


10. 교육[편집]


산시몬 대학교(UMSS)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공립 대학교 중 하나이다. UMSS는 2013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 따르면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좋은 대학이다. 볼리비아의 사립대학으로는 명문 경영대학인 프리바다 볼리비아나 대학교, 국제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의학대학인 산파블로 대학교 등이 있다. 그 밖에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 시몬 1세 파티뇨, , 볼리비아 아키노 대학, 볼리비아 대학, 사비오 대학, 아비에르타 라티노 아메리카나 대학 등이 있다. 코차밤바는 경제적이고 좋은 생활 조건 때문에 산타크루즈 데 라 시에라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브라질 학생들이 받는 도시가 되었다. 또한 코차밤바는 볼리비아 최고의 학교 중 하나인 콜레지오 산아구스틴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11. 공항[편집]


코차밤바는 현재의 호르헤 윌스터만 국제공항(IATA 코드 CBB)이 허브 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볼리비아의 국영 항공사인 로이드 아에레오 볼리비아노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국내선 항공사로는 리네아 아에레아 아마소나스, 에코젯, 트랜스포테 아에레오 밀리터리 등이 있다.



12. 추가 관심 사항[편집]


코차밤바는 다큐멘터리 더 코퍼레이션에서도 사람들이 항의하고 승리한 외국인 소유의 회사에 의한 물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그들의 싸움에 대해 언급된다. 민영화는 빗물조차 수집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다. 2000년의 코차밤바 시위를 읽어보자.

코차밤바는 UNASUR에 의해 설립될 때 미래의 남미 의회의 소재지로 확정되었다. UNASUR는 아직 의회 구성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기존 조약들은 모두 코차밤바에서 만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코차밤바는 볼리비아 최초의 럭비 유니온이 공식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코차밤바는 1983년 영화 스카페이스에서 스토리의 로케이션으로 등장했다. 강력한 마약왕 알레한드로 소사는 그곳에 거주했고, 대규모 코카 농장을 관리했으며 코카인 연구소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더 정제되면 플로리다의 토니 몬태나로 운송될 예정이었다.

코차밤바(Cochabamba)는 2000년의 물전쟁을 배경으로 한 2010년 영화 탐비엔 랄루비아의 무대이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한 제작진이 중남미 식민지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그렸다. 이 영화는 멕시코 배우 게일 가르시아 베르날이 주연을 맡았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코차밤바는 감시 단체 스팸하우스에 의해 확인된 바와 같이 몇몇 주요 스팸 발송자들의 장소이기도 하다.


13. 주목할 만한 거주자[편집]




13.1. 실업가[편집]


시몬 이투리 파티뇨 (1862–1947), 광산 거물


13.2. 음악가[편집]


카티아 에스칼레라, 소프라노

하이메 라레도, (b. 1941),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코차밤비노 포크 음악 그룹 로스 카카스


13.3. 문학가[편집]


나타니엘 아기레 (1843–1888), 작가
아델라 사무디오 (1874–1925), 작가 및 시인
헤수스 라라 (1898–1975), 작가 및 시인
가비 발레조 카네도(1941), 작가, 문학 교수
에드문도 파스 솔단, 작가
마르셀로 키로가 산타 크루즈(1931년 ~ 1980년)는 작가이자 정치인이다.
하비에르 델 그라나도 (1913–1996), 시인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첫 번째 아내로 기억되는 작가 줄리아 우르퀴디(1926-2010)
레나토 프라다 오로페자(1937~2011), 소설가, 시인
1812년 여주인공들에게 기념비를 세운 시인 사라 우가르트 데 살라망카.
오스카르 운자가 데 라 베가 (1916년 ~ 1959년), 언론인, 역사가이다.


13.4. 기타[편집]


오스카르 올리베라 (1955), 환경운동가


13.5. 나치[편집]


클라우스 바비 (1913–1991), 독일 친위대 및 게슈타포 요원


14. 자매 도시[편집]


코차밤바는 다음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탈리아 베르가모,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1989년부터
중국 쿤밍, 1990년 이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2005년 이래
아르헨티나 비에드마, 2009년부터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2009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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