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넬리우스 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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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라틴어: Cornelius Nepos)
출생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전 90년 사이
사망
기원전 27년 전후
직위
역사가, 전기 작가

1. 개요
2. 행적
3. 작품



1. 개요[편집]


로마 공화국의 역사가, 전기 작가.


2. 행적[편집]


기원전 100년에서 10년 아내에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출생했다. 그의 고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티키눔과 메디올라눔 중 한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집안은 갈리아 키살피나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에퀴테스로, 그는 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학업에 정진하다가 어느 시점에 로마로 이주했다. 그는 기원전 80년대 말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독재관으로 집권한 이래 로마의 패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집필했다. 또한 그리스,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역사 작품 집필에 필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던 당대 로마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학업에 전념하면서, 정치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학자 퀸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 시인 카툴루스 등 저명한 로마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그가 집필한 글들은 종종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문의 업적을 추켜세웠으며, 이 가문의 정치적 라이벌 중 한 명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의 퇴폐적인 사치를 비방했다. 역사가 폼포니우스 멜라는 메텔루스 켈레르는 네포스에게 인도 상인들이 항해 도중에 폭풍에 휩쓸려 게르만족이 사는 땅으로 표류했다가 한 게르만 족장에게 붙잡힌 뒤 자신에게 넘겨진 이야기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아티쿠스의 저서를 칭찬했으며, 한니발 바르카의 전기를 포함한 여러 작품을 아티쿠스에게 헌정했다. 아티쿠스는 네포스에게 대 카토의 생애에 관한 글을 쓰도록 설득했으며, 여러 인물의 비교 열전을 집필하도록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아티쿠스의 전기를 집필했다.

아티쿠스는 키케로와 매우 친한 친구였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키케로와도 친분을 맺었다. 현존하는 키케로의 서신에는 네포스를 언급한 편지가 많이 남아 있다. 다만 그와 키케로의 사이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4년에 아티쿠스가 네포스의 어린 아들이 사망했다고 알리자, 키케로는 아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자신이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편지에서는 네포스가 거짓 선물로 자신을 현혹시키려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키케로와의 사이가 이렇듯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그는 키케로 사후에 그에 대한 장문의 전기를 썼다. 그는 키케로의 웅변을 높이 평가하고 역사학자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봤으며, 키케로의 죽음으로 로마는 위대한 정치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라틴 역사가이자 웅변가, 철학자를 잃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아티쿠스가 키케로의 편지를 출판하는 것을 도왔으며, 이 편지들이 어떤 연대기보다 당대 사건의 진실을 잘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인 카툴루스와도 친분을 맺었다. 카툴루스는 기원전 50년대에 아래의 시를 그에게 헌정했다.

cui dono lepidum novum libellum

arida modo pumice expolitum?

Corneli, tibi: namque tu solebas

meas esse aliquid putare nugas.

Iam tum, cum ausus es unus Italorum

omne aevum tribus explicare cartis...

Doctis, Iuppiter, et laboriosis!

Quare habe tibi quidquid hoc libelli —

qualecumque, quod, o patrona virgo,

plus uno maneat perenne saeclo!

이 현대적이고 우아한 소책자를 누구에게 줄까요?

이제 막 마른 경석으로 닦은 것을 말이죠

코르넬리우스,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내 하찮은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죠.

모든 이탈리아인 중 오직 당신만이

감히 모든 역사를 3권의 두루마리로 펼치려고 했을 때...

학문적으로, 유피테르에 의해, 그리고 노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소책자를 받아가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오 수호성인 처녀여,

영원히 남기를 바랍니다!


이 시로 짐작하건대, 네포스는 과거에 카툴루스의 시를 소중히 여겼고 카툴루스는 그의 헌신에 감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툴루스는 네포스를 "모든 이탈리아인들 중 유일하게" 로마와 그리스 역사를 설명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했으며, 역사, 언어,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작품을 작곡하고 감상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했다. 카툴루스는 훗날 고인이 된 카툴루스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자기 생애에서 가장 훌륭한 시인 중 한 명으로 추켜세웠다. 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그가 아우구스투스 치세가 막 시작한 시점인 기원전 27년 전후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3. 작품[편집]


네포스는 여러 역사적 인물에 관한 전기를 집필했다. 그의 <저명한 남자에 관하여(De viris illustribus)>는 저명한 로마인과 외국인의 삶을 비교한 열전으로, 총 16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에는 외국과 로마의 왕, 장군, 변호사, 웅변가, 시인, 역사가,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존하지 않으며, 오직 <유명한 사령관들의 삶(Excellentium imperatorum vitae)> 한 권과 대 카토와 아티쿠스에 관한 전기 2권만 전해진다. '유명한 사령관들의 삶'에서 소개하는 장군들은 총 22명이다.

밀티아데스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티데스

파우사니아스

키몬

리산드로스

알키비아데스

트라시불로스

코논

디온

이피크라테스

차브리아스

티모테오스

다타메스

에파미논다스

펠로피다스

아게실라오스 2세

에우메네스

포키온

티몰레온

하밀카르 바르카

한니발 바르카


그는 이외에도 로마와 이탈리아, 그리스, 근동의 역사를 담은 3권의 연대기를 집필했으며, 웅변가들과 작가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기 위해 집필된 5권의 <모범(Exempla)>을 기술했고, 지중해 세계의 지리학 관련 저서, 여러 시인들의 시집에 대한 해석,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집필했다고 알려졌다. 이 작품들은 전부 현존하지 않으나, '모범' 만은 고대의 여러 작가들의 저서에 많이 인용되었기에 일부 내용은 전해진다.

네포스는 역사가이자 전기 작가로서 고대 내내 존경받았다. 소 플리니우스는 네포스를 그의 고향에서 가장 저명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평가했으며, 지리학자 폼포니우스 멜라는 전 세계가 바다로 둘러싸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네포스의 지리학 저서를 인용했다. 대 플리니우스는 북아프리카에서 소아시아, 카스피 해에 이르기까지의 지리를 박물지에서 다룰 때 네포스의 저서를 많이 참고했다. 제롬은 네포스를 유명한 역사가이자 가장 유명한 전기 작가라고 설명했다. 현대 학자들은 네포스의 전기가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먼 서술이 많고 꾸며낸 내용이 많다며 신뢰성이 높지 않다고 보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고대 세계에서 어떻게 평가되었는지를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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