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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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르 샤가 정복했던 카르스 지역의 요새

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3.1. 강력해진 오스만 제국군
3.2. 노장의 일격
3.3. 포위전과 마무리
4. 결과



1. 개요[편집]


이 전투는 쇠락하던 나디르 샤가 보여준 마지막 불꽃이자 단 한 번의 결단력으로 승부를 뒤집은 전투라고 볼 수 있다.

카르스 전투(Battle of Kars)는 1745년 8월 9일부터 약 3일동안 벌어진 전투이며, 몸도 정신도 파괴되어가던 나디르 샤가 마지막으로 쟁취한 대승이었다. 숫적 우세와 전술의 개선을 거듭한 오스만 제국군이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군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했던 전투이기도 하지만, 페르시아군 측에서는 공세가 아닌 '공세적' 수비였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2. 배경[편집]


오스만 제국나디르 샤와의 정면승부가 결코 쉽지않은 과제임을 알고 있었기에, 나디르 샤가 반란을 제압하러 가거나 다게스탄을 공격할때 반 나디르 세력을 몰래 도와주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가 들켜버렸고(...), 이는 오스만-페르시아 전쟁(1743-1746)으로 번지게 되었었다.

모술 공성전의 실패 이후, 나디르 샤는 1744년 8월부터 카르스(Kars) 지역을 포위했다가 겨울이 되어서 물러났다. 그리고 3달동안 다르반드(Darband) 지역에서 머물렀으며, 이후 1745년 6월에 군대를 예레반(Yerevan) 지역으로 이동시켰다가 오스만 제국군이 오고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둘로 나뉘어서 오고 있었는데, 하나는 카르스 지역으로, 또 하나는 모술 지역으로 오고 있었다. 이에 나디르 샤는 전력을 둘로 나누었으며, 본인은 8만대군을 이끌고 카르스 지역의 오스만 제국군을 요격하러 갔으며, 나머지 상당수의 대군은 나쉬롤라에게 주어 모술 지역으로 가게 하였다.


3. 전투 경과[편집]


파일:Kars_1745.jpg

카르스 전투의 배치도. 파란색이 페르시아군, 붉은색이 오스만 제국군이다.

1745년 8월 9일에 오스만 제국군과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군이 마주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서쪽에 지어놓은 임시 요새화 캠프에서 나와 전열을 이루었다.

3.1. 강력해진 오스만 제국군[편집]


불과 10년전과는 달리, 오스만 제국군은 프랑스인 본느발(훔바라즈 아흐메트 파샤)이라는 자에 의해 전반적으로 개선된 상태였다. 엘리트 보병대인 예니체리는 전술단위가 더 작아지고 세분화되어 정밀한 공격이 가능해졌으며, 사격 훈련과 대포의 개선으로 화력 집중의 효율도 상승한 상태였다.

오스만 제국군의 배치는 전열보병 2열 이상, 보병 사이사이에 포병을 배치하였으며, 양익에 시파히 기병대를 배치하였다. 나디르 샤는 중앙에 보병대와 포병대를, 후위에는 다수의 예비 기병대를 두고 있었다.[1]

나디르 샤는 우선 페르시아군에게 한차례 일제사격을 퍼부은 뒤, 사브르(검)를 뽑아들고 백병전을 벌이라 지시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명령대로 총격과 포격을 퍼붓다가 일제히 돌격하였는데, 이때 오스만 제국군의 양익 기병대가 페르시아군의 양 측면을 공격하였고 교착 상태가 되기 시작하였다.

3.2. 노장의 일격[편집]


당시 ~초심을 잃은~ 나디르 샤는 전선에서 직접 뛰지않고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군 캠프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간접 지휘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호라산으로 돌아가야 할듯~. 그렇게 여러 신하들의 보고가 오가다 어느 한 신하가 말하기를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나디르 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갑옷을 입고 막사에서 나와 숨겨놓았던 예비 기병대 4만을 직접 이끌었다.[2]

나디르 샤는 예비 기병대 4만명과 함께 전광석화처럼 기동하여 오스만 제국군의 후위를 공격하였다. 당시 오스만 제국군의 중앙과 양익 시파히 기병대 모두가 페르시아군 중앙을 공격하느라 후방이 무방비가 되었으니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결국 페르시아군 중앙을 맹렬히 공격하던 오스만 제국군은 거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며, 혼란에 빠진 오스만 제국군은 제각기 서쪽에 있던 요새화 캠프로 후퇴하였다. 나디르 샤는 적당히 추격하다가 저녁이 다가오자 추격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3.3. 포위전과 마무리[편집]


다음날 아침,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군의 요새화 캠프를 완전히 포위하였으며, 한차례 벌어진 포병 싸움에서 페르시아군 포병이 오스만 포병을 이기며 사기도 상승하였다. 나디르 샤는 굳이 오스만 제국군의 캠프를 공격하지 않고 포위전으로만 제한하였다. 어차피 임시 캠프라 내부에 물자도 부족했으며, 3일뒤 모술 지역에서의 승전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모술 지역의 승전소식은 곧 캠프내 오스만 제국군에게 재앙이었다. 이제 오스만 제국군은 완전히 고립되어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었다. 덕분에 그날밤 오스만 제국군 병사들은 폭동을 일으켜 수장이 도륙당했고 나머지 병사들은 도망치다가 잡히거나 죽었다.

4. 결과[편집]


카르스 전투는 나디르 샤 역사상 최후의 대승이었다. 오스만 제국군의 사상자는 28000~35000명에 달했으며, 페르시아군의 사상자는 최대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페르시아군의 피해는 초반의 교착 상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나디르 샤의 대승이었으나, 나디르 샤는 이러한 우위를 적극 활용하지 않았으며, 그저 오스만 제국과의 적당한 협상으로 끝내고자 하였다. 게다가 카르스 전투 자체가 공세적 수비로서 오스만 제국군을 공격하여 캅카스 지역을 지켜낸 특성상 나디르 샤의 정복 야망이 많이 꺾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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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황상 숨겨놨다가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2] 다만, 나디르 샤가 일부러 교착상태를 유도한 뒤 오스만 제국군의 신경이 중앙으로 쏠렸을때 기병대로 몰아치려 계획했었는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즉흥적으로 기병을 이끌고 후위를 치는 "도박"을 감행한 것인지는 나디르 샤 본인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