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볼리비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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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2.1.1. 영토 분쟁과 관계개선을 향한 노력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칠레볼리비아의 관계. 양국은 미주기구,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회원국들이지만, 영토 문제로 갈등이 존재한다.

이전 볼리비아 영토였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 합병된 안토파가스타 지방 등 현재 칠레령인 칠레 북부의 태평양 해안 지대를 둘러싼 오랜 영토 분쟁 대립으로 인해 칠레와 볼리비아는 단순히 사이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교관계도 맺지 않고, 두 나라의 일반 국민들도 상대국가들에 여행조차 안 가는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숙적으로 유명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사이는 여기에 비하면 사이가 좋아보일 정도로[1] 완전히 원수지간이다. 다만 최근에는 오랜기간 이어져왔던 태평양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해보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얻은 직후부터 칠레와 볼리비아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북쪽으로 확장을 노리는 태평양으로의 출구를 노리는 볼리비아가 아타카마 사막 일대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인 것이 시초이다.

여기에 1836년 볼리비아가 페루와 통합하여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결성하려 했으나 이를 자국에 중대한 위협이라 판단한 칠레가 아르헨티나, 북부 페루의 분리주의자들[2]과 연합해 전쟁을 걸어 승리를 거둔 후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와해시켜 버린 적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위의 아타카마 사막 영유권 분쟁의 연장선으로 볼리비아의 유일한 태평양 출구인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두고 페루-볼리비아 동맹과 칠레가 벌인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가 승리를 거둔 후 칠레가 안토파가스타의 구리인광석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은 반면 볼리비아는 경제적 손해는 둘째치고 내륙국으로 전락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완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최빈국으로 파탄나 버렸다. 과장해서 말히면 영토 분쟁이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을 정반대로 결정지은 셈이다.

2.1. 현대[편집]



2.1.1. 영토 분쟁과 관계개선을 향한 노력[편집]


볼리비아가 칠레에 빼앗긴 안토파가스타 주 등 태평양 연안 영토에는 세계최대의 구리 산지가 있다. 이 구리광산은 세계 구리 생산의 34%, 칠레의 수출의 60%, 칠레 GDP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경제자원이다. 이런 알짜 자원을 칠레에 빼앗겼으니 볼리비아 경제가 비교적 근래까지도 빈국이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드시 바다를 되찾고 싶어서 그런지 볼리비아는 내륙국인데도 해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티티카카 호수에서 잠수함을 굴려먹고 있다고 한다.[3] 1970년대 후반에 한차례 협상을 한적이 있었지만 이때 볼리비아 군부나 칠레 군부나 성향이 비슷했음에도 틀어져서 합의에 실패하면서 국교가 끊어졌으며, 또한, 칠레를 통한 자국 천연가스 수출 파이프 라인도 대중적 결사반대로 더 멀리 돌아 아르헨티나우루과이를 통하여 만들 정도로 원수지간이다. 덕분에 칠레는 막대한 돈을 놓쳤고 볼리비아도 더 많은 돈을 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행여나 칠레를 통하여 천연가스 파이프를 건설했다면 대중적 반발이 장난 아니었을 듯 게다가 남미 횡단 철도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여기서도 칠레는 빠질 정도이니 말 다했다.[4] 볼리비아는 2013년에 태평양으로 가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사법제판소에 칠레를 제소했고,[5] 2018년 3월 19일에는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하지만 외려 칠레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자신의 연임을 위해 영토분쟁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만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은 9개월 뒤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2018년 10월 1일에 태평양 접근 주권 협상에는 칠레에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칠레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볼리비아가 패소하였다.#

하지만 칠레의 입장에서도 이 땅을 볼리비아에게 마냥 돌려주기 어려운 것이 현재 칠레 영토인 안토파가스타 주 등 구 볼리비아 해안 지역을 볼리비아에게 반환해버릴 경우 칠레 북부의 아리카, 타라파카 주가 해안 영토를 갖게 된 볼리비아에게 가로막혀 칠레 중남부 본토 지역과 단절된 비연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6] 그리고 이 지역에는 태평양 전쟁 전후 칠레령으로 할양되면서 이후 칠레에서 이주해온 칠레인 주민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이 지역의 칠레인들 상당수는 안토파가스타 등 현재 칠레 땅인 이 지역의 영유권이 볼리비아로 다시 귀속되는 것에 대해 결사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한 국내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 리포터가 이 지역을 둘러싼 볼리비아와 칠레의 영유권 갈등에 대해 이 지역에 살던 칠레인에게 다시 볼리비아로 돌아가는게 낫지 않겠냐, 어차피 칠레나 볼리비아나 언어도 같은 말 쓰는데 말하면서 사는 데 지장 없지 않겠냐고 묻자 인터뷰했던 이 지역 칠레인은 차라리 볼리비아 놈들과 총 들고 싸우다 죽겠다고 볼리비아로의 반환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을 정도였다. 이에 볼리비아 측에서는 안토파가스타 등 옛 볼리비아 영토였던 칠레 해안 지역이 볼리비아에 다시 반환되는 경우를 대비해서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칠레인 주민들에게 '칠레로 강제 추방하지 않고 기존 칠레 국적에서 볼리비아 국적으로 대체하거나 또는 볼리비아-칠레 복수 국적을 부여할 수 있다'며 이들을 볼리비아의 국민으로 편입시켜려는 유화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사코 남미에서 가난한 최빈국인 볼리비아로의 재귀속을 거부하며 경제적으로 잘 사는 칠레의 영토에 남고 싶어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으로 말미암아 볼리비아만 속을 태우고 있는 중. 실제로도 칠레는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 등 예전 볼리비아 영토였었던 칠레 북부의 해안 지대를 돌려 달라고 해양 영토 반환을 요구하면 지역 주민들이 태평양 전쟁 전후 해당 지역에 이주해온 칠레인 개척민들의 후손들에 지역 주민 절대다수가 칠레 영토에 남고 싶다는 근거를 앞세워서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 또한 칠레가 19세기 말 남부 개척으로 현재 칠레 남부 지방에서 살던 마푸체와 알라카루페, 셀크남 같은 남미 원주민 부족들을 학살, 추방하고 정벌한 칠레 남부 영토에 칠레인들을 이주, 정착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며 '원래 살던 원주민들 총칼로 쳐 죽이고 뺏어먹은 니네 나라 남부 땅도 거기 사는 니네 나라 사람들이 칠레 땅 남고 싶어서 원주민들한테 땅 못 돌려주는거냐?'라고 말하며 칠레를 비난한다. 하지만 칠레 역시도 볼리비아의 이러한 비난에 '우리나라 사람들 백인들이나 메스티소가 더 많고 원주민들 세어봐야 5%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그 땅을 원주민한테 반환하냐?'며 반론을 가한다.[7]

특정 영토의 역사성과 소유권을 놓고 양국이 영토분쟁을 빛고 있고, 분쟁 지역의 주민 당사자들 대부분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로의 귀속을 반대하며 실제 실효지배국의 국토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측면에서 마치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대립하고 있는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과 비슷한 상황이다.[8]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포클랜드 제도는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아르헨티나를 지지해주기라도 하지만(심지어 아르헨티나와 전통적인 앙숙 관계인 브라질도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 영토라고 인정하며 아르헨티나를 지지한다.) 안토파가스타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같은 중남미의 다른 나라들조차도 이 일대를 둘러싼 볼리비아와 칠레의 영유권 다툼에서도 볼리비아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일각에선 유럽 열강인 영국이 지배하고 있고, 분쟁의 구도가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유럽 국가인 영국의 대립구도여서 식민제국주의의 연장선으로 만들 수 있는데다 중남미 나라들이 아르헨티나를 지지할 명분이 있는 포클랜드 제도와 다르게 안토파가스타는 남미 국가인 칠레와 볼리비아의 갈등인데다 여기에서 중남미 국가들이 포클랜드 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듯이 볼리비아 입장을 지지하게 될 경우 이 밖의 중남미 국가들이 겪고 있는 인접국 간 영토 분쟁에서 나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볼리비아를 편 들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중미와 남미의 다른 나라들조차도 외교적인 지지는 커녕 외면하고, 칠레가 영토 반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안토파가스타내의 칠레인 주민들이 칠레 잔류를 주장하며 볼리비아로의 반환을 결사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바다를 맞댄 해양국에 비해 무역이나 지리적 위치 등 여러 분야에서 얼마나 불리한지를 고려하면 볼리비아는 여전히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빼앗긴 안토파가스타 등 현재 칠레 영토가 된 구 볼리비아령 해안 지역의 반환과 해양 진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중,

거기다 볼리비아는 과거 칠레와의 전쟁에서 태평양 해안 지대를 칠레한테 강탈당하고 내륙국으로 전락한 역사적인 아픔 때문인지 칠레가 또 다른 남미의 이웃나라인 아르헨티나하고 남부 안데스 산맥 지역의 피츠로이 산과 세로 무라욘 산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 분쟁을 벌이면 피츠로이 산과 세로 무라욘 산이 아르헨티나 땅이라며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한다. 물론 볼리비아는 이 문제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면서 칠레와 역사/외교적으로 사이가 불편한 아르헨티나나 페루 같은 주변 남미 국가들이나 친서방 국가인 칠레와 정치적 이념 차이로 대립하는 쿠바나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같은 중남미의 좌파/반서방 국가들한테 이 지역에 대한 볼리비아 영유권 주장을 지지해달라고 간혹 징징대거나 니네 나라가 영국하고 칠레랑 영토분쟁 일으키는 포클랜드 제도하고 피츠로이, 세로 무라욘 산도 우리나라가 니네나라 땅 인정해주는데 왜 우리는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지지 안 해주냐고 아르헨티나한테 따지지만 아르헨티나와 다른 중남미 나라들은 당연히 무시한다. 자칫 칠레와 볼리비아가 갈등을 겪고있는 이 지역을 볼리비아령 내지는 칠레와 영토 분쟁 중인 영토 분쟁 지역으로 인정하거나[9] 볼리비아의 영유권 주장을 편 들었다가는 자칫 중남미 국가들간 영토 갈등에서 각 나라들이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의 논리를 악용해 주변국가 간 영토 분쟁에 개입하는 빌미가 조성되는 등 자칫 중남미 정세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토 분쟁이긴 해도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갈등을 빚는 피츠로이, 세로 무라욘 산과 칠레와 볼리비아가 갈등을 빚는 안토파가스타 지역 모두 분쟁의 성질이 다른데 그나마 피츠로이와 세로 무라욘 산은 이 일대의 국경선 획정 범위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대립하는 성격에 가깝다면(아예 몆몆 지도에서는 이 산이 위치한 지역이 칠레 땅도 아르헨티나 땅도 아닌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안토파가스타는 볼리비아에 속해 있었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강탈당한 뒤 칠레의 실효지배 시기만 110년이나 훨씬 넘어갈 정도로 완전히 명실상부하게 칠레 영토가 된지 수백년이나 지나버렸기 때문에 국경/영토 범위가 제대로 획정되어 있지 않아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서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분쟁 중인 피츠로이와 세로 무라욘 산과는 사정이 다르다.

또한 칠레는 볼리비아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여 칠레로부터 강탈당한 안토파가스타 등 태평양 해안 지대를 돌려주라고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면 똑같이 예전에 볼리비아 영토였다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한테 빼앗긴 아크레, 후후이, 살타, 그란차코 지방 등을 먼저 돌려받고 오라며 맞대응을 하기도 한다.[10]

여담으로 칠레 내 일각에서는 아예 볼리비아가 영유권 반환 주장과 해양 접근권을 요구하는 안토파가스타 주에 대해서 칠레 정부가 기존의 무시 전략으로 일관할게 아니라 이전 영국이 영국령 잔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현지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영국령 잔류 찬성/아르헨티나, 스페인으로의 귀속 반대를 택했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지브롤터처럼 안토파가스타 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칠레령 잔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현지민들의 지지 확보를 통해서 볼리비아와의 영토 분쟁에서 외교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만약 이 주민투표가 시행되어 안토파가스타 주의 현지 주민들이 칠레령 잔류 찬성과 볼리비아로의 귀속 반대에 손을 들어준다면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잃은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토 반환을 주장하며 태평양 연안 수복을 외쳤던 볼리비아로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소송 패배에 이어서 다시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칠레의 보리치 대통령이 볼리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칠레가 리튬 관련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슷한 방식의 국가 간 자원동맹을 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 관련 문서[편집]



[1]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역사적/외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긴 해도 이들은 최소 국교관계라도 맺고 있다.[2] 쿠스코 등 페루 남부 지역은 볼리비아와의 연합에 찬성한데 비해 북부 지역은 볼리비아와의 합병을 결사 반대했다.[3] 실제로 여기 해군본부가 있다.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스 가는 길에 배를 타야하는데 그곳에 있다.[4] 브라질에서 시작해서 볼리비아 경유, 최종 목적지는 페루의 일로 (Ilo)[5] 하지만 칠레 측은 볼리비아가 항구를 이용할 수 있게한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6] 타라파카와 아리카는 안토파가스타와 달리 원래는 볼리비아 땅이 아닌 페루 영토였다.[7]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칠레도 아옌데 정부 시절에 남부 개척으로 백인계 칠레인들에게 빼앗긴 원주민의 토지를 원주민계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정책을 시도한 바 있었다. 물론 1973년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붕괴하면서 백지화됐지만...[8] 포클랜드 제도의 주민 당사자들 역시 아르헨티나로의 귀속을 반대하며 포클랜드의 영국 잔류를 지지하고 있다. 다만 포클랜드 제도와 달리 여기는 칠레 영토가 되기 전 볼리비아에 속해있던 적이 있었다.[9] 볼리비아가 공공연히 영토 회복을 주장하며 칠레에게 맞서고 있지만 여타 중남미 국가들을 비롯해 국제사회 대부분의 나라들은 안토파가스타 주를 공식적으로 분쟁지역이 아닌 칠레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10] 하지만 칠레가 안토파가스타의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 굳이 그란차코와 아크레, 후후이, 살타 등을 들먹이며 볼리비아를 압박하지 않더라도 볼리비아 정부에서도 이미 브라질 영토, 파라과이 영토, 아르헨티나 영토로 공식 인정한데다가 볼리비아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로 합병된 이후에 각각 실효지배 시기가 100년, 80년이나 넘어가며 일대 거주민들조차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국민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아크레와 살타, 후후이, 그란차코를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파라과이가 볼리비아에게 돌려줄 이유나 명분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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