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욱(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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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욱
崔東旭


출생
1936년
서울특별시
사망
2023년 2월 17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자택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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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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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DJ
학력
전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학사)
가족
부인 최승수, 슬하 2남 최성원, 최인기

1. 개요
2. 생애
3. 사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DJ. 국내 1호 DJ다.


2. 생애[편집]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6·25 전쟁 때 전주로 피난을 갔으며 그곳에서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지냈다. 이후 대학을 진학하고 군대를 제대하였다. 해당 시점 즉 복학생일 때 종로 2가의 뮤직홀(음악감상실) '디쉐네'에 가서 "음악을 말로 소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틀고 곡명은 흑판에 쓰거나 유리창에 앨범 재킷을 게시하던 시절이었다. '말로 음악을 소개'하는 게 인기를 끌자 화신백화점 3층의 뮤직홀 '메트로'나 충무로의 '카네기', '세시봉'에서도 그를 불렀다. 한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일하면서 신문에 팝 칼럼을 쓰기도 했다. 졸업 후 종로 2가에 있는 뮤직홀 ‘디쉐네’ DJ를 맡으며 일을 시작했다. 뮤직홀 DJ로 일하면서 KBS 라디오의 주간 팝송프로그램 <금주의 히트퍼레이드> 구성작가 겸 진행자 일을 병행했다. 1963년 동아방송(DBS) 공채 1기 프로듀서(PD)로 입사했다. 1964년 10월 초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탑툰쇼'로 제작과 진행을 동시에 맡으며 라디오 DJ의 길로 들어섰다. PD인 그가 DJ까지 맡겠다고 해서 소동이 났지만, 최창봉 방송부장이 아나운서실과 긴급히 상의해서 진행을 맡겼다. 한국 방송에 처음으로 DJ가 태어난 것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는 이 해를 국내 DJ 탄생 원년으로 삼고있다.

1964∼1971년에 진행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3시의 다이얼'은 한국 방송 최초로 생방송에서 전화로 음악 신청을 받았다. 그는 2011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호응이 너무 커서 전화가 집중되는 바람에 광화문전화국이 일시 마비되는 현상까지 빚어졌지요. '전화 받는 것을 자제해 주십시오'라는 공문을 전화국으로부터 받은 적도 있어요."라고 회고했다. 그 외 '0시의 다이얼'에서는 처음으로 심야 생방송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서울신문과 스포츠동아 기자로 활동했고, 국내 최초로 자동차 운전요령, 드라이브 코스 등 자동차 관련 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LA) 미주한인방송 사장을 지냈다. 2010년말 창립한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또한 ‘최동욱쇼’ ‘추억의 팝송’ ‘최동욱의 미드나이트 스페셜’ 등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 2019년에도 '세시의 다이얼' 방송 55주년을 기념한 공연을 펼쳤고, 2020년엔 복지TV와 '올디스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후 2023년 1월까지도 종로 뮤직홀에 간간이 나가서 활동했을 정도로 음악과 함께 살았다.


3. 사망[편집]


2023년 2월 17일 오후 4시쯤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한지일 배우가 촬영한 장례식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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