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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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미치 미첼
노엘 레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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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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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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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Jimi Hendrix Experience


▲왼쪽부터 노엘 레딩, 지미 헨드릭스, 미치 미첼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1]
결성
1966년 10월 6일[2]
영국 잉글랜드 런던
해체
1970년
장르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블루스 록, 프로토 메탈
멤버
지미 헨드릭스 (기타, 보컬)
미치 미첼 (드럼)
노엘 레딩 (베이스)[3]
빌리 콕스 (베이스)[4]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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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역사
4. 디스코그래피
5. 멤버
6. 여담



1. 개요[편집]


미국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중심으로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

2. 상세[편집]


지미 헨드릭스가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활동할때, 영국 음악 세션계에서 유명했던 인물들을 모아 조직한 슈퍼 밴드다. 크림과 더불어 세계 최초의 슈퍼 밴드 중 하나이며, 더불어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밴드를 결성한 최초의 사례중 하나다.[5]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이나 드러머 미치 미첼 역시 엄청난 실력자로 불렸기 때문에 단순한 백업 밴드로 불리기는 무리인 감이 있다. 미치 미첼 특유의 드럼스틱을 느슨하게 잡아 스네어의 표면에 반복적으로 빠르게 튕기는 방식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연타하는 주법은 그의 특유의 폭풍같은 드러밍을 더욱더 선명하고 리듬감있게 조각했고 지미 헨드릭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연주의 기타 리프의 리듬을 정확한 호흡으로 하나하나 뒷받침 해주는 노엘 레딩의 베이스 라인까지 당시 최고의 실력자들로 이루어진 밴드들의 반열에 오르기엔 충분했다. 심지어 미치 미첼은 롤링 스톤 선정 최고의 드러머 8위로 키스 문, 진저 베이커와 평가를 나란히 한다.

1966년 10월 13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4년간 단명한 밴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대 음악에 큰 영향을 줬다. 사이키델릭 록을 주로 다룬 밴드이지만, 하드 록헤비 메탈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밴드다. 흔히 "최초의 헤비 메탈 밴드"를 언급할때, 킹크스, 크림이나 더 후와 더불어서 결코 빠지지 않는 밴드다. 지미 헨드릭스 기타 주법에 있어서의 영향은 말할것도 없고 밴드의 드러머 미치 미첼 역시 롤링 스톤 선정 100대 드러머의 10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로, 메탈 기타, 베이스, 드럼 주법에 큰 영향을 줬다. 또한 블루스함을 바탕으로 기존 사이키델릭의 범주를 넘어선 혁명적인 사운드로 런던 록씬에 하드 록 열풍이 불게 만들었다. 블랙 사바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등 이후 등장한 하드 록 밴드들은 대부분 이 밴드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966년, 싱글을 발매해 영국에서 거둔 큰 성공 이후 1967년 5월 12일 발매한 정규앨범 Are You Experienced 역시 비평가들의 훌륭한 평가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향력 뿐만 아니라 노래들도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이 밴드가 발매한 앨범 3장 모두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의 100위권 안에 안착했다.

1969년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이 떠나면서 밴드가 해체될뻔 했지만, 미국인 R&B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를 불러와 밴드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리더 지미 헨드릭스가 토사물에 질식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밴드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2003년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이 사망했고, 2008년 11월 드러머 미치 미첼이 콘서트 도중 급사하면서[6] 이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전설을 만든 원년 멤버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빌리 콕스는 아직까지 정정하다.


3.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미 헨드릭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디스코그래피[편집]



5. 멤버[편집]



5.1. 지미 헨드릭스[편집]


원년 멤버 중 유일한 미국인이자, 흑인이다. 포지션은 기타, 메인 보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지미 헨드릭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2. 미치 미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치 미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3. 노엘 레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엘 레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4. 빌리 콕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빌리 콕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편집]


  • 원년 멤버들은 태어난 나라와 죽은 나라가 모두 다른 것이 특징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런던에서 죽었다. 미치 미첼은 반대로 영국인이지만 미국 오리건에서 죽었고, 영국인 노엘 레딩 역시 아일랜드 코크에서 죽었다.
  • 밴드는 여러 음악가들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특히 에릭 클랩튼과 익스피리언스 밴드 멤버들은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7]
파일: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공연 전단지.jpg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밴드는 세계 최초의 록 페스티벌인 "Barbeque 67"에 참여했다. 1967년 5월 29일 영국 중부의 시골마을 스팰딩(Spalding)에서 주최되었으며, 여섯 밴드가 무대에 섰다. 그러나 최초의 락 페스티벌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공연은 엉망이었는데,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도 않았고, 시골 특성상 록 음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지역 주민들이 페스티벌에 항의하며 페스티벌 규모가 축소되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공연에 30분이나 늦어서 에릭 클랩튼이 30분동안이나 대타를 뛰었을 뿐더러 악기 튜닝도 엉망이라서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사운드는 처참했다.[8] 무엇보다 당시에는 익스피리언스를 포함해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밴드 6개가 모두 무명이었기 때문에 공연은 실패로 돌아갔다. 핑크 플로이드,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셋이나 참여한 콘서트라서 죽음의 조나 다름이 없기에 음악 팬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한다.
[1] 리더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인이지만 활동은 영국에서 했다.[2] 데뷔일은 1966년 12월16일, Stone free, Hey joe가 수록된 싱글 앨범 Hey joe.(12월 29일 영국 차트에 진입하여 6위에 올랐다.)[3] 1969년 탈퇴.[4] 노엘 레딩의 대타를 뛰었던 미국인 베이시스트. 물론 영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가 해체되었다.[5] 1900년대 중반까지 백인 음악과 흑인 음악은 철저히 단절되어있었고, 또 몇몇 국가에서 흑인들은 사람 취급도 못받던 때였다. 영국의 다인종적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백인들과 같이 밴드를 한다는 이유로 정작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했고 오히려 영국 내에서 인기가 천정지수로 치솟았다.[6] 공교롭게도 사인이 지미 헨드릭스와 마찬가지로 술과 관련이 있었다. 미치 미첼은 평소 과음하는 습관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7] 드러머 미치 미첼이 생전 마지막으로 공연을 함께한 음악가가 에릭 클랩튼일 정도다.[8] 공연의 첫 순서였던 핑크 플로이드는 보컬이고 악기고 튜닝이 개판인데다가 볼륨이 너무 낮아서 관객들이 사운드를 하나도 들을 수 없었고, 거의 동네 아마추어 수준의 공연만 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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