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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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팔(朱仲八, 생몰년 미상)은 남송 말기의 객용(句容)인으로 주백륙의 부친, 주사구의 조부, 주초일의 증조부, 주세진의 고조부였으며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현조부였다.
《주씨세덕비기》(朱氏世德碑記)에 따르면 주중팔은 금릉(金陵. 난징시의 옛 이름)의 객용(句容) 출신이었으며, 지명(地名)은 주가항(朱家巷)이었다. 덕향(德鄕)을 왕래했고, 그의 주가항 일대에는 곤제(昆弟. 형과 아우)가 40여 명이나 되어 서로 예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고 한다. 또한 주중팔 이상의 선조는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가문이라고 하나 명 태조 홍무제 시대에 이름이 전해진 조상은 주중팔까지였다고 한다.
주중팔은 진씨(陳氏)를 맞아들여 장남 주육이(朱六二), 차남 주십이(朱十二), 3남 주백륙을 낳았는데 이 중 주백륙이 훗날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의 고조부였다. 주원장이 대명을 건국하고 자신의 조상들을 황제로 추존할 때, 주중팔의 아들이자 주원장의 고조부인 주백륙까지만 추존되었고 주중팔은 추존하지 않았다. 주중팔의 존재는 주원장이 작성한 《주씨세덕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1]
내손인 태조 홍무제의 초명이었던 주중팔(朱重八)과는 한자가 다르며, 홍무제의 초명은 부모인 주세진과 순황후의 나이를 합하면 8이 중복으로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1. 개요[편집]
주중팔(朱仲八, 생몰년 미상)은 남송 말기의 객용(句容)인으로 주백륙의 부친, 주사구의 조부, 주초일의 증조부, 주세진의 고조부였으며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현조부였다.
2. 생애[편집]
《주씨세덕비기》(朱氏世德碑記)에 따르면 주중팔은 금릉(金陵. 난징시의 옛 이름)의 객용(句容) 출신이었으며, 지명(地名)은 주가항(朱家巷)이었다. 덕향(德鄕)을 왕래했고, 그의 주가항 일대에는 곤제(昆弟. 형과 아우)가 40여 명이나 되어 서로 예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고 한다. 또한 주중팔 이상의 선조는 대대로 농사를 지었던 가문이라고 하나 명 태조 홍무제 시대에 이름이 전해진 조상은 주중팔까지였다고 한다.
주중팔은 진씨(陳氏)를 맞아들여 장남 주육이(朱六二), 차남 주십이(朱十二), 3남 주백륙을 낳았는데 이 중 주백륙이 훗날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의 고조부였다. 주원장이 대명을 건국하고 자신의 조상들을 황제로 추존할 때, 주중팔의 아들이자 주원장의 고조부인 주백륙까지만 추존되었고 주중팔은 추존하지 않았다. 주중팔의 존재는 주원장이 작성한 《주씨세덕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1]
3. 기타[편집]
내손인 태조 홍무제의 초명이었던 주중팔(朱重八)과는 한자가 다르며, 홍무제의 초명은 부모인 주세진과 순황후의 나이를 합하면 8이 중복으로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4. 계보[편집]
4.1. 가족[편집]
- 부친: 주씨(朱氏, 불명)
- 모친: 불명
- 장남: 주육이(朱六二)
- 차남: 주십이(朱十二)
- 3남: 주백륙
4.2. 후손[편집]
5. 참고 서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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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朱氏世德碑记》五世祖仲八公娶陳氏,生男三人,長六二公,次十二公,其季百六公,是為高祖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