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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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농업생산량이 변하는 모습.

1. 개요
2. 역사
2.1. 정착과 농업의 역전 가설
3. 의의
3.1. 채집경제 의존도 감소와 문명의 발전
4. 인식
4.1. 현대 한국에서
5. 요구되는 자본과 기술
6. 종류
6.1. 현대
7. 장단점
7.1. 단점
7.2. 장점
8. 농업 교과목
9. 분류
10. 관련 문서
10.1. 시설 및 기관
10.2. 작물
10.2.1. 원예작물
10.3. 농자재
10.3.1. 농기계·기구
10.4. 사회 제도, 지위
10.5. 관련 정책
10.6. 기타
11.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11.1. 전투병력의 비중
11.2. 말이 갖는 의미: 기병대, 기갑부대
11.3. 유목민족의 침입후, 문화적 융합
12. 동물의 농업
1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3.1. 게임
13.1.1. 온라인 게임에서의 농사



1. 개요[편집]


을 통해 사람에게 필요한 식물을 재배해 씨앗, 열매, 뿌리 등의 부산물을 얻는 산업. '농사()', '농경()'이라고도 부르며[1], 가축을 기르는 축산업이나 벌을 치는 양봉도 농업으로 분류된다.

의식주에서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식량의 근간을 책임지는 산업으로, 인류 문명 발전의 뒤에는 항상 이 농업이 있었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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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점토를 구워서 만든 수메르의 돌 낫(기원전 3000년 전 추정).

농경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지만, 잡곡을 재배하는 밭농사였습니다. 청동기시대에 본격적인 벼농사가 이루어지면서 밭농사와 함께 중요한 생활 기반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마을 내에 무덤·생산과 저장 시설·의례 공간 등 기능에 따른 공간을 구분해서 가꾸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마을을 세우기 위해 많은 나무가 필요했고, 나무를 정교하게 가공할 여러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다듬기 위한 조갯날도끼, 자귀, 대팻날, 끌 등이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여러 목공구가 만들어지면서 나무 가공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다양한 분야의 생산력도 증가했습니다.

국립김해박물관 공식 소개 문구


마빈 해리스의 문화 3부작에 따르면, 농업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이미 화전과 비슷하게 땅을 정리하여 식물이 자라기 좋도록 관리하는 형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씨앗을 뿌리는 과정만 없을 뿐 사실상의 농업이나 마찬가지. 수렵을 하며 떠도는 호주 원주민에게서도 비슷한 양태를 볼 수 있다.

본격적인 농업은 기원전 9050년 전 레반트 지역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텔 아부 흐레야 (Tell Abu Hureyra、تل أبو هريرة) 유적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일명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 혁명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빙하기가 끝나 당시 식량원이었던 상당수의 거대 동물이 멸종된 것이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집단 노동이 필요하였기에 씨족 중심의 정착지(마을)가 발전했으며, 이후 잉여 식량을 저장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이러한 지혜가 확산되며 인구가 증가하였다. 잉여 식량의 축적은 사유재산의 개념을 발달시켰으며, 권력층은 생산물을 토대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탄생하였다. 이에 따라 여성도 부계 안에 포함, 동시에 상대의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무리나 부족 간 전쟁이 빈번해졌으며, 각종 제도를 수비하는 과정에서 군사 조직과 더불어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2.1. 정착과 농업의 역전 가설[편집]


신석기의 농업은 효율성이 매우 나빴으며, 청동기 시대가 지나기까지도 인류는 채집경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농경만으로 인류의 후생을 지탱할 수 있게 된 것은 의외로 질소 비료가 탄생한 근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으며, 이전까지는 식량 재배가 수월한 온대 및 아열대 기후의 평야에서만 농경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이에 통설과는 반대로 집단의 정착이 우선했고, 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이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가설은 신석기 시대 초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괴베클리 테페와 그 근방의 유적들이 발견되고 연구되면서 힘을 얻었다. 이에 따르면 종교가 있었고, 종교를 위해 성소가 세워졌으며, 성소에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며 집단이 되었고, 그 집단이 된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나서 종교시설 근처에서 채집에 의존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아직까지 통설을 뒤집을 만큼 주류 학설이 된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3. 의의[편집]



3.1. 채집경제 의존도 감소와 문명의 발전[편집]


농업은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산업이며, 인류가 고대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계속 발전시킨 문명의 밑바탕이다. 수렵어업을 하며 이동생활을 하던 인류가 문명 사회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신석기 시대 이후로 식량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2] 때문에 농업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과 도시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떠돌아다니며 사냥채집만으로 먹고사는 석기 시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선 가장 원초적인 직업이고 중요성에 따른 과도한 발달로 기계화등을 통해 농사의 효율성이 너무 올라 식량이 남아도는 관계로 천대를 받는 경향도 있지만, 인간이 농산물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방법(순수한 합성 영양제[3] 등)으로 영양과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문명의 근간이 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필요한 노동이다. 산업화조차 일단 농산물이 남아날 만큼 생산되어야 이행 가능하다는 점은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물론 후술하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생기긴 했으나 생존을 위해 남아있던 유전적 특징 덕에 아직까지는 제법 괜찮게 이어지고 있는 편이다. 게다가 농업을 택한 것 자체가 인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면도 있다.


4. 인식[편집]


어느 정도 근대화를 이룬 나라들의 경제에 1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를 채 넘지 않는다.[4] 육체적으로 힘들고 변수가 많은데다 농사를 짓기 위한 토지와 장비, 인력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자본이 필요한 농사일 특성상 청년층의 기피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현대 농업(정확하게 말하자면 ‘농축산업’)은 유전자 조작, 고급 비료 및 농약, 컴퓨터 제어 관개•온실 시설, 로봇 수확기 등이 사용되는 복잡하고도 정밀한 과학이다.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단위 면적 당 식량 생산량이 매우 증가해서, 굶주림이 아니라 남아도는 식량 때문에 골머리 썩는 나라들(미국, 캐나다 등)이 있을 정도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만성 비만이 증가하고 있으며, 농산물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한편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오지의 아직 농업 기술이 부족하여 대체로 기계화가 되어 있지 않아 일일히 손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여전히 병충해로 인한 흉년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아직 남아있는 농부의 대부분이 이런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남아 있다.

4.1. 현대 한국에서[편집]


현대의 한국에서는 농부들이 더미에 올라 앉는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망하기 쉬운 것이 최소 3개월 단위의 생산기간을 가지면서 농사 비용은 비용대로 들어가지만 기상 문제로 인해 한 해 농사가 망해서 팔 작물이 없다거나 역으로 너무 풍년이 들어서 똥값이 되어버리는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아도 광활한 평야가 없고 산지가 많은 한국 특성상 생산 원가가 매우 비싸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농업이 힘든 이유는 한반도의 땅이 평야가 적은데다 토지 비옥도도 매우 낮아 생산량 자체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덕분에 이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 기술을 갖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토지가 비옥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소련 집단농장에서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고 한다.

소작농의 경우 밥벌이 조차도 못 한다고 보면 되고, 자영농의 경우는 순수 자영업이다.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잘 해봐야 연 2300도 건지기 힘든 게 농사다. 게다가 한국의 농업은 미국과 같은 대규모 기업농이 아니라 소규모 자영농의 형태가 극도로 발달했기에 원가절감이 더더욱 힘들다.

한편으로는 편견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예컨대 농사가 너무 잘 되면 어째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밭을 갈아엎어 전부 파묻어버리냐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는 농업의 구조상 문제가 아닌 경제학적인 문제로 들어가보면 왜 묻는지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자극에만 집중하기에 자연스레 농부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는 것이다.

또한 농사가 못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사는 농사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작물마다 전부 다른 재배법을 익혀야 한다. 관련 지원이나 법 체계도 어느 정도 알아야만 한다. 농사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섣부르게 시도했다가는 백이면 백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다.

농업 외의 문제로 시골에는 인프라가 부족해 대형마트, 할인마트 한번 가려면 차를 타고 멀리 읍내까지 가야하며 청년들이 농업을 하려고 하지 않아 농촌 인구도 그에 따라 고령화 되고 있다.그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업을 돕고 있다.

이때문에 정부, 지자체에서는 푸드플랜이라 하여 지역 먹거리 수요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게 지역 생산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최대한 근사하게 조절하여 가격과 공급을 안정화시켜 농업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980년대 이후에 도시에서 출생한 사람들은 농사일을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농업을 접해 본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5. 요구되는 자본과 기술[편집]


가끔씩 본래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이 자신도 농사를 한번 지어 보고 싶다고 농촌에 와서 작물을 일구어 보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열에 아홉은 참패를 당하고 다시 도시로 떠나거나 농촌에 남더라도 농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데,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귀농을 하여 농업으로 살아남는 것은 힘든 일이다. 농사는 입에 풀칠도 하고 제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한 직업이다. 가끔 가다 시골로 귀농을 하고 싶어 농사에 관한 서적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필요도 없는 것이고, 경험이 있는 숙달된 자에게서 전수받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은 농사의 달인일지라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었을 것이며, 실패도 하였을 것이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농번기에는 주말도 없이 일한다. 농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로 '할 일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라.'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농사라는 것이 결코 할 일이 없다고 맨땅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활로 잠깐 갔다 오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고 어렵고 신경 쓸 것도 많다. 그리고 대학 때 농활 오던 놈 치고 진짜로 농부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리고 지금 초중고 아이들 중에 농부가 되겠다는 친구들은 정말 신기한 녀석 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5] 만약에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척이나 지인 등의 집에 얹혀살면서 1년 정도 같이 지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는 것이 좋다. 벼농사의 경우 그나마 기계화 자동화가 잘 되어있고 양육 과정이 상당히 표준화되어 있으며 비율이 낮아졌다곤 하나 엄연히 주식이니 만큼 정부에서 식량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수매하기 때문에 그나마 제값을 받고 팔 데는 있어[6] 고정적인 수입원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나마 그 벼농사조차도 상당히 힘들다.

  • 자본: 세상 무슨 일을 벌여도 밑천은 필수적이며 천하지대본에도 예외가 없다. 주말 농장 이상의 규모라면 그것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겨우 줄 수준이라도 돈이 필요하다. 토지세, 종자, 묘목, 자재를 구매하는 비용, 운송비, 인건비 등으로 나간다. 지금 와서 농업으로 돈을 벌겠다면, 부모나 친척에게 넓은 농지를 물려받고 나서야 시도해 볼 만 하다.

  • 과학적 지식: 농사가 대충 땅 파먹고 산다는 소리가 얼마나 농사에 대해 무지한 소리인지 보여주는 근거로 비료 종류와 양, 파종이나 모종 시기, 작물의 병과 해충, 거기에 맞는 농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땅에 모종만 심는다고 작물이 뚝딱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토양에 따라 잘 자라는 작물이 다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토양에서는 어떻게 하면 잘 자라지 않는 작물을 잘 자라게 할 것인지나 비닐하우스 재배의 경우 그날그날 날씨를 확인하여 언제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닫아 작물이 타버리거나 얼어 죽지 않게 할지나 농약을 뿌릴 때 어느 정도의 비율로 농약을 넣어야 하며 어느 정도 작물에 뿌려야 하는지 등등, 이것 외에도 무수히 많은 것에 대해 엄청난 지식들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남들이 풍작할 때 자기 혼자 흉작이다. 괜히 박사학위까지 지닌 연구원들이 365일 논밭과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며 연구하는 게 아니다.

  • 체력과 근성: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고, 무더운 하우스 내부에서 작물을 수확해야 한다. 야외에서 고추를 따는 것은 바람이 통해서 좋을까? 고추는 한 번에 수확을 못하고 익은 것 먼저 따고 덜 익은 걸 기다렸다가 따는 걸 반복한다. 여름에 좁은 고랑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추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이동하는 걸 반복하는 게 고추 농사다. 농약도 치고 수확 후 세척도 당연히 해야 한다. 과수원을 한다면 한여름 땡볕을 그대로 맞으며 통풍도 안 되는 우비로 꽁꽁 싸매고 하루 종일 농약을 쳐야 한다.[7] 감이 안 오는가? 군필자라면 한 방에 이해될 비유가 있다. 우비를 화생방보호의로 바꿔보라. 작업조건이 거의 동일하다.[8] 또 퇴비는? 당연히 뿌려야한다.
그리고 태풍, 장마 때는 더 빡세다. 특히 태풍이 제대로 오면 과일은 낙과하고 쌀은 쓰러지고 일이 심각하게 굴러가기 십상이고 정말 운이 좋지 않으면 목숨까지 잃는 일이 생긴다. 비닐하우스의 경우 비닐은 생각보다 질기지만 철골이 바람의 강풍을 못 이겨 결국 꺾이고, 전술했듯 농작물이 꺾이면서 추수할 때 아주 골치 아프게 만든다.

  • 미래에 대한 예측: 기상변동, 공급과 수요 등을 고려해야 한다. 농산물은 가격변동이 매우 심한 경제재이다. 예컨대 한미 FTA로 수입산이 쏟아져 들어와 특정 품목들이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든가, 2013년도에 양파 흉작으로 양파값이 무지막지 올랐었다면 2014년은 지나친 풍년으로 인해 오히려 농협에서 양파사주기 이벤트를 열고 홈플러스에서 양파 개당 100원 이벤트를 할 정도로 양파값이 수직 하락한다. 즉, 지나친 풍년이 와도 안되고 지나친 흉년이 와도 안된다. 미래 예측에 실패하면 그 해 농사는 망한다. 때문에 서양권의 농부들 사이에서는 "도박을 하려면 카지노로 가지 말고 밭으로 가서 농사를 지어라."같은 농담이 있을 정도다.[9][10] 흔히 '농산물의 산지 가격은 싼데, 유통단계에서 후려친다.'는 편견 및 고정관념이 있는데, 한국은 농업 리스크 관리가 너무 힘들고, 수운이나 철도보다는 트럭에 의존하는데다 석유가 나지 않다 보니 운송비마저 싸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유통 대기업이 농업 유통에 한번쯤 손을 대 보다가 번번히 손절한 것이 아니다. 직거래도 소비자, 생산자 모두에게 좋지만 장사에 익숙치 않으면 고객의 클레임을 감당하기 힘들어 때려치우는 경우가 많다.

  • 건설기계 & 농기계 기술: 대규모로 농사를 짓거나 자체적으로 농토를 개간하려면 필수다. 왜 대규모로 농사지을 것을 전제로 이야기 하느냐면 주말농장 수준의 텃밭에서 나오는 작물로는 충분한 수익을 얻기 힘들어 규모를 키워야 수익이 나서 농사로 최저임금이라도 벌고 싶으면 안정적으로 최소 쌀 수십 톤을 생산해야 하고 이 물량은 인력만으론 절대 감당이 안 된다. 상황에 따라 거의 토목공사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트랙터 등 농기계가 잔고장이 나면 고칠 기술도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트랙터 같은걸로도 감당이 안 되니 경비행기도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 전기기기 기술: 전기를 끌어오는 건 전기공사업체를 통해 하지만, 펌프, 농업용 조명, 계량기, 온풍기, 등 전기기기를 관리하는 것은 농민의 몫이다.

  • 경영학: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경우 자기가 직접 판매를 해야 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마케팅회계학 기술이 필요하며 추가적으로 유통학 기술과 판로확보도 필요하다. 그 이전에 어떤 작물을 어느 정도의 규모로 농사를 지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지부터 계산이 가능해야 한다. 농사를 직접 지어보기 전까진 계산이 힘든 게 함정.

  • 선물거래 등의 파생상품 운용: 파생상품 거래가 가장 활발한 시장이 바로 농산물이다. 농산물은 이상 기후 등 각종 요인에 따라 각 해의 시세가 고무줄처럼 변하므로 선물거래와 같은 위험 헤지 수단이 필요하다. 사실 주식투자와 그 파생상품을 도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은 주식시장이 시초가 아니라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먼저 생겨난 기법을 주식시장에서 빌려다 쓰기 시작한 거다. 예를 들어 밭떼기 거래 같은 경우는 대표적인 선물거래 방식의 하나이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파동이 괜히 일어난 게 아니다. 위의 경영학과 합쳐서 나오는 것이 바로 농업경제학이다.


  • 어학 지식: 농사짓는데 뜬금없이 외국어가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국내에서 익숙한 작물을 재배할 거면 상관없지만, 해외 작물을 데려와서 재배하려면 필요하다. 국내에서 익숙한 작물은 정보를 구할 곳이 많지만, 해외 작물은 정보를 구할 곳이 한정적이다. 대부분 구글을 통해서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대부분 영어로 써져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더 필요하면 재배하고자 하는 작물에 대한 해외원서를 읽을 수도 있는데 해외원서를 읽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다.[11] 게다가 해외 작물의 종자를 가져오려면 해외 판매자와 거래를 해야 하는데 이때도 외국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해외 작물을 키우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의 영어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다른 외국어, 특히 일본어도 배워둔다면 도움이 된다. 이쯤 되면 농사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때문에 농업은 의외로 해당 국가의 과학 기술 및 인프라를 굉장히 많이 탄다. 농업 대국 가운데 중국과 인도, 브라질 같은 개발도상국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선진국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은 그 넓은 농지 면적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구 수, 부족한 기술과 인프라 때문에 생산량 및 수출량의 장점을 상당히 갉아먹는 형편이다. 애초에 저런 능력이 다 갖춰질 정도의 인재면 농업이 아니라 대기업, 공기업에 입사하지 않았을까?


6. 종류[편집]


경우에 따라 원예농경(Horticulturalism), 원시농경, 산업농경, 현대의 집약적 농경으로 나뉘기도 한다.

점차적으로 더 많은 기술과 도구, 비료 등을 활용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정작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업에 필요한 인력이 줄었고, 앞서 말한 많은 문제점들 때문에 농사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6.1. 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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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 주에 있는 경작지. 보이는 건 길과 농작지뿐이다.[12] 캔자스는 비옥도가 가장 높은 미국의 곡창지대이다. 스프링클러가 회전하면서 물을 주고 그 안에서 작물이 자라기 때문에 밭들이 초록색 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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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주의 경작지. 흰색 도시부분을 빼고 전부 밭이다.[1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5px-Cropduster_spraying_pesticides.jpg
현재 기준으로 이런저런 면을 고려하면 농업 최강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농지가 너무나도 넓기 때문에 비행기로 농약을 뿌린다.[14]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프레리 지역 아이오와, 캔자스,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의 비옥도가 가장 높은데, 서유럽의 곡창지대인 프랑스도 비옥도가 이 수준은 아니다. 이 수준의 옥토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우크라이나 정도이다. 다른 나라, 특히 구대륙은 천 년이 넘는 경작 끝에 지력이 소실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국은 본격적으로 농사지은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구대륙은 비료를 쓴 역사가 안 쓴 역사보다 훨씬 짧아 지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임도 고려해야한다. 반면에 미국은 처음부터 비료를 쓸 줄 안 상태에서 농사를 시작했기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15]

미국은 비록 중국, 인도보다 농업 생산량은 적지만, 인구가 많을수록 먹는 양도 많기에 수출량은 미국이 높다. 거기에 중국과 인도는 아직 농사인프라가 구식인 곳도 많은 편.

대부분 식품에 반드시 들어가는 옥수수를 예로 들자면,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2009년 기준 333,010,910톤이고 2위인 중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163,118,097톤이다. 하지만 중국의 옥수수가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되는데 비해,[16] 미국은 자국소비량을 제외하고 전부 수출하는데 그 양이 전세계 옥수수의 약 40%이다.

즉 미국이 갑작스럽게 옥수수의 수출을 중지해버리는 순간, 옥수수 값이 폭등하는 것은 물론이요, 식량자급률이 낮아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일부 선진국들까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17]

옥수수가 없으면 사람은 다른걸 먹어도 되지 않는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가축 사료도 상당량 옥수수로 만든다. 즉 옥수수가 없으면 고깃값도 뛴다. 일단 대한민국은 그나마 자급률이 높아서 쌀밥은 그대로 먹을 수 있겠지만, 그 외에 다른 곡물이나 사료용 곡물의 자급률은 매우 낮고,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일단 당장 가축들의 사료도 전부 옥수수고, 대부분의 식품첨가물 표지만 봐도 옥수수가 안들어가는 곳이 없다.[18]

기술경쟁력은 미국이 더 압도적인데, 2010년 미국의 농업인구는 단 400만명으로 당시 농업인구가 6억 5천만명이었던 인도와 4억 7천만 명이었던 중국에 비해 매우 적었고 심지어 500만 명인 일본의 농업인구보다도 적었다. 당시 한국의 농업인구는 330만 명이었다.

한국의 농업의 가장 큰 한계는 규모 문제로 국토의 70%가 산지에다 도시화율이 높아 전국 경지면적이 국토의 17% 정도로 17,000㎢ 정도여서 유럽 상당수 국가는 국토의 25~35%가 경지로 활용되는 것과 대비된다. 때문에 전체 경지 면적이 넘사벽으로 적은 편이다. 프랑스, 독일은 경지 면적이 남한 전체 넓이보다 넓고 그 외에도 영국 61,070㎢, 네덜란드 10,790㎢에 달한다. 역시 국토 대비 경지 비율이 10% 대인 미국, 중국 등은 전체 넓이가 넘사벽. 다만 일본도 국토 대비 경지 비율이 12%로 높은 인구 밀도와 맞물려 한국과 마찬가지인 낮은 식량자급률로 나타나고 있다.[19] 여기에 경지면적의 질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으로, 비료와 농약이 비교적 많이 들어가야 높은 생산량을 보장할 수가 있다. 이렇듯 쓸모있는 땅은 적은데 비해, 농업인구 비중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농업 인구가 6%로 아직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따라서 농업인구 대비 농지면적은 선진국 중에서는 최저 수준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농지를 용도 전용하여 도시화 및 공단 용도로 전환하면서 경작지는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서해안의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으로 경지면적을 보충했지만 환경파괴와 어업민들의 생계 문제로 이것도 한계에 달한 상태다.

1994년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은 0.39ha로 세계 115위, OECD 27위 수준이었으며 2010년에는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 0.56ha로 증가 했으나 미국 32.08ha, 프랑스 14.08ha에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고 심지어 일본 1.59ha와 비교해도 절반에 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어찌되었든 기계화된 대규모 농업이 우위다. 소규모 농업은 노동집약적으로 인건비의 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고 최종 가격에서 생산, 유통비용의 비중이 높은 고비용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유럽, 북미, 호주의 대규모 농업이 한국보다 인건비가 비싼 지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임에도 더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위해 정부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기업농을 육성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으나 사회구조적 부분을 손보는 것이라 단기간에 변화하기는 어렵다.

농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그나마 농업 인구가 20%에 가까웠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정치권에서 농민 표를 의식했지만, 농업 인구가 6%대로 떨어진 지금은 약간 소홀한 편이 있다. 한국의 국토 상황과 인구 밀도상 농업국가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비슷한 문화와 큰 내수 시장을 가진 일본중국에 대한 수출을 모색하고 있으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뚜렷한 성과는 없으며 한류등의 영향으로 농산물및 가공식품이 수출이 2004년 17억 달러에서 2014년 52억 2천만 달러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라면이나 고추장을 포함한 것이다. 특히 라면이 일등공신. (2016년에 전년 대비 68.1%)

한때 미국과 맞장을 뜨던 초강대국 소련이 몰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도 바로 집단농장의 실패와 덧붙여 이 작자 때문에 고질병이 되어버린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농업 자급력일 정도로[20][21] 농업은 중요하다. 게다가 미국의 다국적 농기업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수집 혹은 M&A로 인수한 기업들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파생된 종자들을 국제적 특허로 등재시켜 특허비를, 게다가 종자 자체를 한 해 농사만 지을 수 있게 마개조 [22]해 좋든 싫든 종자를 계속 사게 만드는 이른바 '종자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청양고추. 다만 Monsanto가 바이엘에게 인수당하면서, 세계 3대 종자회사중 미국 소재는 Corteva (구 다우와 듀퐁의 종자 및 농화학 사업부문) 밖에 안남았다. 바이엘-몬산토는 독일, 신젠타는 중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7. 장단점[편집]



7.1. 단점[편집]


간혹 식자들 중에 농업이 인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발 하라리도 자신의 저서에서 비슷한 논지를 편 바 있다. 농업이 채택된 이래 인류는 더 나은 인구부양력을 바탕으로[23] 문명화된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개개인의 영양 상태 면에서는 채집 수렵 시절에 비해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 그 외에도 다음의 문제들을 새롭게 떠안게 되었고 이와 같은 문제들은 거의 근대 혹은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해결되었거나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 환경 파괴- 숲, 초원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농작물을 심게 되면서 사막화 현상이 발생한다. 숲이 물을 저장하는 데 비해 농작물은 물을 굉장히 많이 소모한다. 게다가 농약, 비료는 땅과 물을 오염시키도 한다. 그리고 농업으로 인한 도시화 때문에 인구 수가 폭증하여, 그들이 버리는 쓰레기로 환경이 오염되며 자원이 고갈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스터 섬이 몰락한 원인 중 하나가 농경지의 확장이었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훨씬 초라하고 영양학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식생활을 했다. -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농경사회와 달리 수렵채집민들은 주변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먹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수렵채집민들의 식단은 과거 농업인은 물론 현대인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영양 문제로 인해 평균 신장도 감소했다. 그나마 산업화로 다양한 영양 섭취가 가능해진 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신장이 커졌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빈혈을 더 많이 앓게 되었다. - 골수에서 혈액을 만드려면 단백질이 필요하다. 농경사회가 되니까 단백질 섭취가 확 줄어들었다. 그 결과가 빈혈. 물론 감자, 브로콜리, 해바라기 씨, 케일, , 아스파라거스, 율무, 치아시드 등 단백질이 있는 농작물도 있지만, 육류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도 가축을 키우면서 해결되었다.
  • 수렵 채집 시절보다 인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생긴 문제점들 -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 데 인구 수가 폭증하게 됨으로써 토지와 주택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고, 산업 혁명 이전까지 소수의 지주에게 유리한 경제 체제가 지속되었다. 게다가 가축도 기르게 되면서 전염병의 확산에 더 취약해졌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연히 분쟁이나 범죄 등의 사회 문제도 늘어났다.
  • 수렵 채집 시절에 비해 여가 시간이 감소하였다. - 사냥을 하고 사는 경우에는 많이 얻겠다고 뛰어드는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고기는 쉽게 상하고 썩는 식재료라서 100일치 식량을 다 모아놨다고 쳐도 결국 대부분은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농업으로 얻는 작물들은 보존기간이 더 길기에 쌓아둘 수가 있다.[24] 그리고 이것은 더 많이 얻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 결과로 그리고 여가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 불평등한 계급 사회가 형성되었고 이와 함께 지배계급[25]부익부 빈익빈이 출현했다. - 사냥하고 얻은 것들은 얼마 안가 썩기 마련이라 쌓아둘 가치가 없었으며 농업 이전의 사람들은 혼자서 야생에서 살아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기에 모두 힘을 합쳐 먹을 것을 구하고 결과물을 공평하게 나눠 가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평등했다. 반면 농작물은 쌓아둘 수 '있다.' 사냥하고 얻은 것들은 얼마 안 가서 썩기 마련이라 쌓아둘 가치가 없지만 농작물은 나름대로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 쌓아둘 가치가 있고 그 결과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것.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이다.
  • 날씨, 질병 등으로 인해 흉작이 되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농경 이전에도 기후 변화나 남획 때문에 사냥감이나 채집식물이 감소하여 인류가 굶어죽었던 일은 있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 시기의 인류는 적당한 기후와 사냥감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할 수 있었던 데 비해,[26] 농경 시대에는 이러한 이동이 제한적이었다.] 이는 현대에 와서 식량 원조나 기술 등이 발달해서 어느 정도 해결.
  • 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 수렵채집 시절에는 쥐는 그저 쉬운 단백질 공급원이였지만, 식물의 씨앗을 좋아하는 쥐의 식성상 농업을 시작한 이후로 쥐는 곡식을 훔쳐먹고 전염병까지 옮기는 적이 되었다. 물론 근현대 이후로 방역 기술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어 쥐의 숫자가 줄어서 어느 정도 해결.
  • 농업은 사유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개인간의 분쟁 국가간의 전쟁이 더욱 빈번해지고 규모도 훨씬 커졌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에도 영역 문제로 씨족, 부족간 충돌이 빈번했고 오히려 사상사 비율로만 놓고 보면 더 높았지만 절대적인 숫자는 적었다.

7.2. 장점[편집]


이처럼 한계점이 넘쳐나는데도 이상한 것은, 1만년 전의 인류는 어떻게든 농경을 시작하고 확산시켰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시작으로 황하 등의 전세계 (적어도) 12개소 이상의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농경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농업 사회와 수렵 채집 사회가 공존했던 지역에서는, 일부 수렵민들도 자기들끼리 나름대로 작물을 재배해보려고 노력한 흔적까지 발견된다고 하니, 당대에 농업은 확실히 첨단 기술로 여겨졌던 듯.

농업의 기원에 있어서 어째서 당시 사람들이 농업을 이처럼 좋게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말끔하게 해결되지는 못한 문제이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의 설득력 있는 학설들이 존재한다.
  • 당시의 환경 자체가 농업을 강제했다 : 빙하기가 끝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대형동물들이 줄어들었으며 여기에 인류가 가세하면서 대부분 멸종해버렸고, 이것은 인류의 입장에서도 심각한 자원고갈 문제가 되었다. 결국 인류는 당시 새롭게 발견되던 아몬드 등을 포함한 몇몇 식물종들에 관심을 돌렸고, 곡물을 인류의 통제하에 두고자 하는 실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몇몇 야생 짐승들을 길들이려는 시도로 축산업이 탄생한 것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농경과 목축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진작에 당시 스밀로돈 같은 빙하기 포식자들처럼 먹을 식량이 없어져서 멸종하거나 수가 급감한 채 개체수가 거의 늘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27]
  • 곡물의 뛰어난 저장성 : 식량의 보관 문제는 냉장고가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했다. 고기나 과일은 금방 상해버리고, 염장 또는 훈제 같은 저장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빨리 먹어버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빼려고 노력하는 뱃살이 당시에는 유일한 에너지 저장방법이었다[28]. 하지만 곡물은 씨앗의 '휴면' 개념을 이용하면 훨씬 오래 보관 할 수 있으며 인류에게 안정적인 식량자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참고로 곡물이 자라기 힘들고 대신 서류(감자류) 같은 뿌리·뿌리줄기에서 녹말을 얻는 식물을 주로 재배했던 문화권은 저장성이 떨어지는 서류의 문제 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체계나 대국가의 형성이 불가능했다.
  • 식량의 안정성과 질이 좋아졌다 - 이동을 하면서 수렵.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사냥개와 엽총으로 무장한 현대의 엽사들조차 몇 시간을 움직여도 공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창. 화살 정도로 무장했던 고대인들이 충분한 사냥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또한 종자개량이 안 된 야생 과일과 채소들에 비해 농업을 하면서 개량된 종들은 더 크고 맛이 좋아지고 영양도 높아졌으며, 야생동물의 고기나 부산물보다 가축의 그것이 덜 질기고 살이 많으며 누린내도 줄어 질이 좋아졌다. 또한 기생충이나 세균 감염 등의 위험도 줄어들었다. 수렵채집 시대보다 인구의 수가 늘어난 이유다.
  • 농업은 개인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집단이나 사회의 차원에서는 확실히 유리했다 : 결과적으로 보면 개인의 불행을 감수하면서 사회의 생존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로 인생의 질곡들이 나타나기는 했어도 정착을 통한 출산율의 증가,[29][30] 막대한 인구밀도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 더욱 고도화하는 정치 시스템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의사결정의 고도화, 이동 반경의 단축, 정착기간 증대에 따라 출산의 증가 등 사회적 차원에서 굉장한 강점이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보면 사회에게 농업의 혜택 자체가 매력적이었다는 것. 농경에 발생에 대한 가설들은 환경과 인구의 압력에 관련된게 주류이다. 과거 수렵채집의 방식으로 환경의 변화나 인구 압력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이 과정에서 수렵채집이 주 활동이고 농경은 부수적인 활동이었던 시기가 있었다.[31]
  • 안정적인 집단을 더 크게 확보할 수 있었다 : 자연 환경과의 대항에 있어서 사냥/채집 인류는 잘해봤자 먹이 사슬 중에서 상위에 올라가는 수준의 권력을 지닌 것뿐이었다면, 농경 사회로 인한 인구 증가와 사회 체제를 구축하고 나서 비로소 인류는 환경에 의해서 좌우되는 단계를 넘어 자연과 대립하면서 독립된 인류 집단 내부 환경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 변화나 급작스러운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확률적 안전성, 유전자적 규모를 확보하게 된 것.
  • 농업을 시작한 집단이 무력으로 수렵채집하는 집단을 밀어내거나 흡수했다 : 개개인의 행복도는 떨어지고 영양상태도 안 좋아졌지만 어찌됐든 농업을 시작한 부족 및 사회는 머릿수에서 수렵채집인들을 누를 수 있었고 따라서 무력으로 수렵채집인들을 몰아내거나 노예 등으로 흡수가 가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의 수렵채집인들도 안 밀려나기 위해 똑같이 머릿수 늘리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겠지만,그 특성상 농업사회에 비해 한계가 있었다.

이 아래는 근동 지방에서의 농경 출현에 대한 가설들을 제시한 것이다. 찰스 R.레드만의 <문명의 발생>에서 나온 내용이며 책의 내용이 어렵기도하고 40년전에 나온 책이 40년 사이의 갭이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을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첫째, 근동지방은 식량의 생산과 도시의 형성이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고 여겨지고있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서구권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근동지방에 대해 다룬다. 둘째는 '가설'은 '가설'일 뿐이란 것이다. 가설은 연구를 통해 한가지 완결된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근동지방에서 이런 양상을 띄었을 것이다'는 아이디어 제출이지 정말로 그랬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니다.

  • 오아시스 가설 : 차일드의 오아시스 가설에 따르면, 최후 빙하기 끝무렵, 그러니까 기원전 10000년경에 빙하의 후퇴로 근동지방의 기후가 냉량습윤에서 고온 건조로 변화하게 됨에 따라 인간과 동물은 항상 물이 공급되는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식물은 물의 공급이 가능한 곳에 계속 밀집분포하였다. 인간이 동식물이 근접한 곳에 살게 됨으로써, 이들은 동식물의 행위와 연차적인 주기(life style)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두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는, 강물에 의한 자연관개는 곡물들이 밀집해서 자라도록 하였고[32] 이로써 낟알들을 싣고 거두는데서 인간과의 공생관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추수밭의 그루터기들이 동물들을 유인[33]하였고 이걸로 통해 동물들을 다른 동물로부터 보호하고 메마른 기간에 먹이를 줌으로써 인간과의 공생관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34] 다만, 차일드가 말한 오아시스 가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사람들이 잘 따르지않는다. 차일드가 상정한 정도의 급격한 기후변화가 실재하였는지, 중요한 문화적 혁신이 과연 기후변화와 동시에 발생하였는지, 차일드가 상정한 지역에서 최초 농경의 증거가 나타날 것인가가 문제이다.
  • 핵심지구 가설 - 로버트 브레이드우드가 말한 핵심지구(nuclear zone) 가설의 기본 전제인 핵심지구란 최후 빙하기 말에 근동지방에서 개량의 잠재성이 있는 동식물의 야생종이 집중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그의 발굴단의 작업으로 과거 1만 2천 년 동안 근동지방에서 급격한 기후변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서식지구는 오늘날 동식물들이 야생상태로 분포하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한된 지역에 재배종들의 야생 선조가 존재하였다.(기후가 유사해 오늘날과 분포지는 비슷) 식물을 이용하고 동물을 능률적으로 잡기 위해 기술이 발달하고 지역 정착의 시기에선 영구적인 공동체, 노동과 도구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기술의 발전과 식량자원의 확대는 이전에 비해 이동에 소모되는 시간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인간이 제한된 지역에 정착하면서 동식물들을 이전보다 좀더 세밀하게 관찰할 기회를 갖게되었다. 따라서 인간과 재배 가능종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발달하고 식용가능 자원의 실험기간으로 최초의 농사실습이 이루어졌다. 이후 농사짓는 것을 잘 하는 농경촌락 공동체가 확립되었다. 핵심지구 가설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 가설이 농경의 개시에 대해 아직 설명되지 않은 인간의 독창적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경이 하필이면 이 시기에 발생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가 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다만, 핵심지구 가설은 이후 연구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리고, 초기 농경의 증거를 보여주는 몇몇 유적들은 브레이드우드의 자연서식지구로 설명하기에는 고도가 너무 높거나 낮은 곳에서 발견된 바가 있다. 따라서 브레이드우드 발굴단이 제시한 정보들은 근동지방의 최후 빙하기 말에 급격한 기후변동이 있었다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즉, 근동지방 또는 이보다 넓은 지역이 기원전 9000년 이전에는 현재보다 춥고 건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후변화 양상은 차일드가 제시한 것은 매우 상이해서 오아시스 가설의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 신 기후변화 가설 - 자그로스 산맥의 다양한 지형과 자원이 동물과 사냥꾼을 유인하였다. 홍적세[35] 말기에 기후는 점차 덥고 습해졌고 이에 따라 곡물들은 자그로스 지역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겨울철이 그다지 혹독하게 춥지 않게 돼 동굴에서 개활지로 옮겨갔으며, 동물들은 자그로스 지역에 남았다. 자그로스 산맥에서 식물자원 이동과 이에 따른 환경의 압력으로 야생종의 이종교배가 활발해졌고, 이들 중 일부는 농경에 매우 적합했다. 볕 잘 드는 지저분한 지역에서 최초의 곡물이 자라나고, 개활지에서의 정착이 사냥꾼들로 하여금 양이나 애완동물, 식용가능 동물들을 지키게하였다.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농사와 가축기르기로 발전하였다. 최후 빙하기 말에 발생하는 기후의 변화 이후에야 사육에 적합한 동식물과 가까이에서 인간이 서식하게 되었다는 연구결과의 이용여부가 신 기후변화 가설과 핵심지구 가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신 기후변화 가설은 홍적세 말에 농경이 개시되는 생태학적인 근거는 밝히고 있지만 이런한 발전을 자극하는 문화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후의 변화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야생 동식물의 분포에 얼마 만큼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해서도 반론이 많이 제기되었다.
  • 인구압 가설 - 에스터 보스럽은 맬서스와는 달리 인구의 성장이 자체적 독립적으로 다양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고, 농경기술과 생산성 변화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식량생산 기술과 농경체계의 변화는 더욱 많은 생산을 위한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식량공급에서의 인구압 증가에서 기인한다는 것. 필립 스미스와 커일러 영 2세는 이러한 견해를 채택해 농경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가설을 구성했다. 기후가 좋아지는 데에 따라 식량공급이 충분해지자 홍적세 말기의 인구증가로 이어졌고, 집약적인 식량 생산(식물로의 전환)에 필요한 정착이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인구증가가 계속되었고, 식량 공급 증가의 필요성으로 인해 곡물의 밀집 장소를 인위적으로 늘려갔다. 그래도 늘어나는 인구로 휴경기간을 짧게 하고 기술을 증진시켜 집약농사로 바꿨다. 인구 증가는 계속돼 관개문명으로 이끄는 생산통제력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자원이 산재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에도 인간이 과연 다음해의 농경을 위한 종자를 저장 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거리를 지니고 있다.
  • 주변지구 가설 - 루이스 빈포드가 제시하고 켄트 플래너리가 완성하였다. 근동지방에서의 농경이 동식물의 야생종 서식에 적합한 환경지역의 주변부에서 순환적인 인구압의 반응으로 발생하였다고 설명하고있다.


8. 농업 교과목[편집]


중학교 및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남학생들을 상대로 제6차 교육과정까지 가르쳤던 교과목으로,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36] 주로 군 지역 및 지방 소도시 소재 중, 고등학교에서 많이 채택되었다. 중학교에서는 3학년에,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에 가르쳤으며, 연합고사학력고사 시험 과목이기도 했다.[37]

내용은 크게 개요/기초이론/재배/사육/조림(造林)/농기계/농가공/농촌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쌀, 보리, 콩, 감자 및 몇몇 원예작물 재배법, 소 돼지, 닭 사육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 위주로 되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여기에 담배 등 공예작물 및 양잠 관련 설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물론 교과서는 이론을 설명하는 내용일 뿐, 실제 농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교과를 배워본 사람들은 적어도 '최소양분율의 법칙'을 설명하는 그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농업 선생이 "이 그림은 잠잘 때 꿈 속에서도 나올 정도로 외워두어라"고 닥달했을 것이니.


9. 분류[편집]


  • 재배 작물에 따른 분류
    • 경종농업 - 채소, 과수, 화훼류를 제외한 나머지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수리, 관개 시설이 갖추어진 넓은 경작지에서 이루어지며, 작물의 대부분이 이용되는[38], 파종, 생육, 수확 과정을 반복하는 작물들을 위주로 한다.
    • 원예농업 - 채소, 과수, 화훼류를 재배하는 농업. 주로 텃밭 같은 소규모 땅에 서 이루어지며[39], 꽃, 잎, 과실, 뿌리 등 작물의 일부분만이 이용되는 작물들을 위주로 한다.
  • 경지에 따른 분류
    • 논농업 - 논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수도작(水稻作)이라고도 한다.
    • 밭농업 - 밭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사실상 논농업 이외에는 모두 밭농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토지 활용도에 따른 분류
    • 집약농업
    • 조방농업
  • 토지 소유에 따른 분류
    • 자작농업 - 자기 소유의 토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 소작농업 - 타인으로부터 임차한 토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 자소작농업
    • 위탁농업 - 토지 소유주의 위탁을 받아 경작하는 농업.
  • 경영 형태에 따른 분류
    • 자영농업 - 경영 주체가 농민 개인인 농업.
    • 장원형농업
    • 기업형농업
    • 집단농업
  • 생산 목적에 따른 분류
    • 자급농업 -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
    • 재식농업(플랜테이션 농업) -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


10. 관련 문서[편집]




10.1. 시설 및 기관[편집]




10.2. 작물[편집]




10.2.1. 원예작물[편집]




10.3. 농자재[편집]



10.3.1. 농기계·기구[편집]




10.4. 사회 제도, 지위[편집]




10.5. 관련 정책[편집]


  • 토지개혁
  • 농지개혁법
    • 경자유전 - 농지는 농부와 농업 기구만이 소유할 수 있게 한 원칙을 한 법규. 하지만 1996년도부터 그 대상이 완화되었다.
  • 균전제 - 북위 효문제 당시 시행된 농지 전체를 국유화 하는 정책.
  • 논농업 직불제 - 논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헥타르 당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지만 소작하는 이들 대신 땅 소유주에게 지급해 논란이 있었다.
  • 집단농장

10.6. 기타[편집]




11. 농경민족과 유목민족[편집]



11.1. 전투병력의 비중[편집]


유목민족들은 승마에 익숙한 만큼 농경민족보다 전투병력의 비중이 극도로 높다. 농경민족 관점에서 보자면, 말은 사육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고 기수를 훈련시키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목민족의 입장에서는 말이 농경민족보다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사람들 대부분은 말을 탈 줄 안다. 즉, 과거 전차나 장갑차와 같았던 기병 병종을 훨씬 쉽게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11.2. 말이 갖는 의미: 기병대, 기갑부대[편집]


지금으로 보면 유목민족은 성인 남성 대부분이 짧은 시간 안에 기병으로 전장 투입이 가능한, 고대의 기갑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말은 생물이다 보니 현대의 기갑 부대에 비하면 어처구니 없는 참패도 당하는 편이라 기병을 쉽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기병들이 올린 전설적인 전공들을 보면 보병은 현실적으로 다 죽일 힘이 부족해 불가능한 종류의 것들도 많다.

십자군 전쟁이나 윙드 후사르 등등에서는 진짜 놀라운 교환비를 세운 적도 있다. 거기다 유목민들 같은 경우 수렵까지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 각종 무기에 대해서도 농부들보다 익숙하다. 즉 기병이라는 점만으로도 무서운 것인데 숙련도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강력한 무력을 생산하기 쉬움+생산력의 상대적 저하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겹쳐서 대부분은 약탈민족 성격도 커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이나 키루스 대왕 같은 군주들에게도 유목민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나면 무시무시할 만큼 극도로 성장하며 이것은 게르만조차도 밀어버려서 서로마의 멸망까지 나비효과를 일으킨 훈족의 성장이나 거란, 몽골등 유목민족의 중국 및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졌다. 특히 몽골의 경우 칸국들까지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를 이루었으며 헝가리까지도 몽골의 피가 섞여 있는 걸 생각하면 고대에 그들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파르티아는 소수 유목민들이 중동의 정주민족 인구 400만을 정복한 다음에 인구 5,000만의 로마를 위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흔히 생각하는 사막의 민족들은 대부분 유목민족이다. 파르티아아르메니아, 베르베르, 아바르족 등등.


11.3. 유목민족의 침입후, 문화적 융합[편집]


다만 농경민족을 정복한 후 오히려 그들의 문화에 역으로 점령돼 버리는 일이 흔하다. 원래부터 인구도 적은 데다,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어서 농경민족의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접하고 급속도로 동화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민족성을 유지하겠다고 온갖 정책으로 막으려 들어봤자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 전체를 통제할 수도 없고 군주제의 한계 때문에 군주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거나 하여 결과적으로 패권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먹혀버리기 일쑤.

특히 중국.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는 농업이 정착된 후 이들 유목민족을 막거나 먹히는 역사로 점철돼 있다. 요나라, 원나라가 모두 이들의 역사이며 이들 민족의 기마 부대는 언제나 공포로 군림해 왔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농경과 목축, 그리고 물고기 잡이를 겸업하였고 심지어 여진족은 해적질로도 악명을 떨쳤다.이들의 거주지가 초원이 아닌 삼림지대였기에 순수한 의미로서의 유목민족과는 꽤나 다르다. 이러한 민족들을 수렵채집(물고기를 잡는 경우 漁獵)민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중국 한족들도 이런 반농반렵민족의 저력을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예로부터 굉장히 경계해서 만주지역에 대한 견제를 끊임없이 가했다. 결국 만주족에게 정복당하긴 했지만.

또 유목민족은 빠른 성장만큼이나 쇠퇴도 빨라서 거란의 경우 북송과 금에 의해 멸망했고, 원도 그 엄청난 영토를 생각하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고 심지어 대제국을 이룬 청도 불과 100년 만에 자기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중국에서 소수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투르크족 역시 한때 이슬람의 주도권을 쥐었으나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는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내어줬을뿐더러, 유목민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된 마자르 족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상실하게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른 민족들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북아메리카의 유목민족인 수우족 역시도 리틀 빅혼 전투 이후로는 상당수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았다.


12. 동물의 농업[편집]


지금껏 지구상에서 인류 외에 가축과 비료를 이용한 농업을 하는 동물로는 가위개미, 고동털개미 같은 개미종 몇몇과 흰개미, 그리고 자리돔과에 속하는 롱핀 댐젤피쉬가 있다. 개미류와 흰개미는 외부에서 가져온 나뭇잎이나 굴 내부에서 발생한 유기물 찌꺼기로 체계적인 균류 농사를 짓고, 롱핀 댐젤피쉬는 먹이로 섭취할 해조류를 키우며 비료로 쓰이는 배설물을 생산하는 새우류을 해조류 농장에 들여서 보호해준다.[40]

1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13.1. 게임[편집]




13.1.1. 온라인 게임에서의 농사[편집]


온라인 게임에서의 농사란, 플레이어가 일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경우 자신이 별다른 페널티를 받지 않고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만을 상대한다. 일명 노가다. 말 그대로 파밍(farming) 이란 단어를 게임의 한 용어로써 쓰는 경우 또한 다분하다. 단. 게임상에서 정말로 농사를 하는 컨텐츠가 추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확장팩 판다리아의 안개에 추가된 시스템도 있지만, 드래곤 라자 등 다른 몇몇 온라인 게임에서도 이미 농사를 선보인 경우가 있다.

농사(파밍)이란 단어를 쓰는 온라인 게임들은 다음과 같다.

  • 대부분의 온라인 웹 게임[41]
  • 던전 앤 파이터
  • 도타 올스타즈, 도타 2
  • 레알팜
  • 마비노기[42]
  • 마인크래프트
  • 언턴드[43]
  • 워프레임 - 네크로스[44]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45]
  • 천하제일상 거상[46]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엔지니어가 금속을 꾸준히 주워 와 기기들을 업그레이드해 특정 지점을 요새화하는 걸 농사라고 부른다.
  • EVE 온라인[47]
  • 두덕리 온라인

게임 모으는 게임인 스팀에는 카드농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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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우리말로는 '녀름짓기'라 했으나 현재는 사어가 되었다.[2] 정주생활이 가능해졌고 이로인해 가재살림 도구인 토기가 제작되었다.[3] 현재까지 영양제에 사용되는 성분들의 원료도 결국 자연물에서 추출하므로 농산물이나 자연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4] 한국의 농업GDP가 그나마 높은 2% 이고 외국 선진국은 1% 밖에 되지 않기도 하다. 그리스나 포르투갈처럼 선진국이면서도 1차산업 비중이 큰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5] 이는 기성세대들의 편견으로 좋은 대학 나와서 사무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한 원인이다.[6] 여기서 제값이라는 것도 팔 수는 있다는 수준이다. 가격이 폭락하면 최소 반 년을 투자한 작물을 수확하는 대신 그대로 갈아 엎어버리는 게 농사다. 거기다 수매가도 폭락이나 폭등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수매가가 폭락하면, 시내에 불만을 토로하는 현수막이 높은 확률로 걸린다.[7] 그래서 농민들은 하루 중에 가장 날씨가 더운 오후 2시 앞뒤 한 시간은 농약치는 것을 피하고 다른 일을 한다. (부득이하게 일이 밀린 경우, 그 시간 때에 농약을 치기도 한다.) 대기의 역전층이 생기며, 하루 중 제일 기온인 낮은 시간대인 '해 뜨기 직전부터' 대부분 농약을 치기 시작한다. 시원할뿐더러, 대기의 역전층 생성으로 바람이 불지 않거나 약하게 불어 농약이 다른 밭으로 날라가지 않아 다른 작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때문이다. 해뜨기 전에 기상해야 한다는 것은 함정.[8] 농약이든 화학작용제든 먹으면 죽는 건 똑같다. 워낙 힘들다보니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농약 뿌리다가 죽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케이스가 동네마다 최소 한 건씩은 다 있다. 그래서 술 먹고 농약뿌린단 말은 자살하겠단 말과 동의어로도 통한다. 지금은 안 쓰고 농도가 낮아져서 악명이 줄어들었지만, 그라목손이라는 악마의 농약도 있었다.[9] 특히 전국적으로 작황이 좋지 않을 때 더욱 심해진다. 예상하지 못한 자연재해로 다른 많은 농가가 큰 피해를 입고 자기 혼자만 소출이 좋은 경우, 로또복권 1등 당첨금 부럽지 않은 돈을 만지는 것도 가능하다. 농사 몇 십 년 해온 농부들은 이런 대박을 바탕으로 몇 해 동안은 작황이 좋지 않거나 가격이 폭락해서 망하더라도 버틴다.[10] 프로개가 노란수박농사로 그야말로 초대박을 내서 몇 억을 벌었는데, 농사가 도박같아 보여서 그 뒤로 농사를 때려쳤다고 한다.[11] 영어 기준으로 학문과 관련한 해외원서를 읽으려면 수능 이상의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대한 구글번역기가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실력까지는 필요 없고 번역이 잘 됐는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 있으면 된다.[12] 자세히 보면 작은 마을들이 보이지만 극히 일부다.[13] 지리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국 대평원 지대에서는 서쪽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강수량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사진이 실린 캔자스주에서 동쪽 끝 지역의 강수량은 1,000mm를 넘지만 서쪽 끝 지역에서는 400mm정도밖에 안 된다.[14] 현재는 점차 드론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15] 이것도 미국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비료를 쓰는 방법을 배워서 아는 것이다. 즉,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비료 쓰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16] 심지어 그 자국 소비량이 생산량을 초월해서 중국은 세계 2위의 옥수수 생산국이지만 세계 4위의 옥수수 수입국이기도 하다.[17] 물론 곡물류의 수출중지 선언은 미 곡물협회로부터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다. 미중무역분쟁만 해도 역으로 중국이 대두 수입을 차단해서 미국을 협박한 적이 있었을 정도이다.[18] 한국의 쌀 자급률은 100%에 근접하지만 그 외 보리, , (특히 밀은 자급률 1%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의 자급률은 매우 저조하다. 게다가 사료용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은 4~50%대를 유지하지만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를 웃돈다. 가축 사료용 곡물 대다수를 수입한다는 소린데 수입이 끊기는 즉시 가축들이 아사 위기에 처한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가면 국민들이 영양 불균형 사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여기다가 가공 식품에 쓰이는 옥수수까지 포함하면 더 문제가 커진다. 거기다 아직까지 사료나 식품 재료로 옥수수를 대체할 다른 마땅한 수단도 없다.[19] 때문에 OECD 주요국의 1인당 경지면적에서 일본도 한국과 함께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20] 공산주의 유머/소련에서도 나온 것이지만 미국에서 오는 곡물이 무사히 도착하도록 기도까지 하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위대해도 그럼 어디서 곡물을 수입하느냐는 개그가 나온게 다 이유가있는셈이다.[21] 사실 소련의 밀 생산량은 세계 1위였지만 가축 사료용으로 밀을 썼기 때문에 밀을 수입했다.[22] 씨를 받아서 다시 심으면 원하는 게 아니라 이상한 게(열매가 작거나,쭉정이가 나오던지)나온다. 예를 들어,수박은 F2(2세대)가 탁구공만하게 나온다.[23] 18세기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인구론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식량 등이 부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맬서스가 검토했던 기초 자료의 빈약함부터 반박할 논거는 무수하지만 분명 농업 기술의 발달이 인구 증가를 감당하는데 기여했다.[24] 냉장 기술의 발달 등이 근대에 이런 현상을 부추긴 면이 있다.[25] 일례로 신관이나 사제 등.[26] 채집 작물이나 사냥감이 멸종되는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농경에 비해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므로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거리들이 늘어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27] 물론 오늘날에도 구석기 시대처럼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원시부족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소수 부족이다. 당연히 이들 소수 부족들과 농경, 목축을 거쳐 산업화된 대다수 문명인들의 개체 수와 규모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28] 사람이 굶주림을 비교적 오래 견딜 수 있는 이유이다. 즉 음식물의 섭취가 중단되면 체내 지방을 연소시켜 에너지로 쓰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만큼 신진대사가 활발했다면 살이 찔 건덕지도 없었겠지만[29] 단순히 정착뿐 아니라 먹고 살 식량이 확보되니 출산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적어도 못 먹일 우려는 덜어도 된다. 더욱이 정착하면 여럿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고 필연적으로 사이좋게 지낼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많이 모인 집단은 집단 자체를 방어하는데도 유리할 것이고.[30] 과거 농경사회에서 동력을 사용한 농기계가 없던 시절에는 오직 가축과 사람이 농사일에 사용이 가능하였다. 가끔 수력이나 풍력이 물을 퍼내는 등의 제한적으로 쓰이는 정도.[31] 동식물 품종 개량 등을 통한 것, 종자를 심어놓고 수렵채집하다가 일정한 시기에 다시 되돌아와 곡물을 수확하는 형식.[32] 반(半)유목생활일 가능성이 있다. 종자를 파종하고 그 지역을 떠나 생활하다 일정한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33] 특히 건조기에[34] 기후의 건조화는 식량생산 경제를 채택하도록 자극하였다. 어쩔 수 없이 강가나 줄어드는 샘물의 주변에 모이게 되자, 토지를 비옥하게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동물과 인간은 점차 사막으로 인해 고립되어 가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함께 서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병렬관계가 사육으로 표현되는 동물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조장했던 것이다.[35] 현재의 인류와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어진 시기[36] 말 그대로 학교에서 선택하는 선택 과목이지, 개인이 선택하는 선택 과목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이 시기까지는 제2외국어 및 과학(생물, 지구과학)도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37] 단 학력고사의 경우 제2외국어와 함께 3교시 선택과목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자기 학교에서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본어를, 실업 과목으로 농업을 배웠다면 일본어와 농업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38] 대표적으로 벼의 부산물인 볏짚은 공예, 사료용으로도 이용된다.[39] 물론 지금은 원예농업도 경종농업처럼 대규모 경작지, 시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40] 이 때문에 새우들도 롱핀 댐젤피쉬가 운영하는 농장에 먼저 적극적으로 머무르려 한다.[41] 웹 게임 특성상 시간이 곧 재산이기 때문에 이 경향이 매우 강하다. PVP성이 짙은 웹 게임에서는, PVP를 하지 않고 자신의 진영만 끝없이 구축하고 발전해 나가는 행위 또한 농사라 일컫는다[42] 각종 ~~노기.[43] 좀비 나오고 총질하는 게임에 무슨 농사냐 싶지만, 고급 군수품 먹으려고 방사능 지대 가기 위해 맵 전역을 돌며 필터를 파밍하거나 먹고 살려고 진짜 작물을 심어 기르는 농부일을 해야 하기도 한다. 서버 따라 다르지만 멀티에서는 가끔 필터 하나로 탄약박스 몇 개를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44] 이건 위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데, 3번스킬을 이용하여 시체에서 아이템과 딸기 체력오브를 뽑아내는것을 농사라고 한다 자세한건 네크로스 참조 생존30분하면 3번스킬을 대략 900~1000번 누른다.[45] 판다리아에서 진짜로 농사 컨텐츠가 추가되어서 최근에는 후자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46] 이쪽은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한다.[47] 물론 다른 방법도 많지만 초보들의 주요 자금줄은 채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