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구(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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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Ba trieu. 삼국시대 중국의 지배를 받던 고대 베트남의 여성 독립군 지도자였다. 조국달의 여동생으로, 오빠 조국달이 전사한 후 독립 봉기를 이어받아 지휘했다. 교주 구진군[1] 출신이다.
《삼국지》시대에 극소수인 실존 여전사 중 한 명이다.
2. 이름 논란[편집]
본명은 조씨정(趙氏貞)/찌에우 티 찐(Triệu Thị Trinh)이라고 하지만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근대의 역사서인 《월남사략》(越南史略)에서 처음 보이는지라 의심의 여지가 있다.
정사에서는 조구(趙嫗)/찌에우 어우(Trieu Au) 또는 조매(趙妹)라는 호칭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구'(嫗)는 여사와 비슷한 존칭이고, '매'(妹)는 (조국달의) 여동생이라는 뜻이다.
3. 생애[편집]
그녀의 봉기를 만류한 오빠 조국달에게
라 말했고, 이를 들은 조국달은 그녀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248년, 오빠 조국달의 봉기에 합세했다가 그 용감함에 오빠가 죽은 후 지도자로 추대되었다.[2]"난 폭풍을 타고, 거친 파도를 넘으며, 동해의 범고래들을 죽이고, 강산을 되찾으며, 독립을 이룩하고, 노예들을 풀어주며, 첩이 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거에요!"
후에 구진군(九真郡)의 여인 조구(趙嫗)가〈조구(嫗)는 젖가슴(乳)의 길이가 3척이어서 등 뒤로 드러내었다. 항상 코끼리의 머리(象頭)에 타고 적과 교전하였다.〉 무리를 모아 군현(郡縣)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윤(胤)은 조구(의 무리)를 토평(平)하였다.〈《교지지》(交趾志)에서는 "구진(九真)의 산 속에 조매(趙妹)라는 여자가 있으니 젖가슴(乳)의 길이는 3척(三尺)이고, 시집가지 않았다. (조매는) 무리를 모아 군현(郡縣)을 위협해 탈취하였다. 항상 금(金)을 착용하고 이(齒)를 갈색으로 하였는데, 코끼리 머리에 (타고) 옮겨다니며 함께하였다. (조매는) 전투 중 죽었으며 신(神)이 되었다."고 하였다.〉
後九真郡女趙嫗〈嫗乳長三尺,施於背後。常乘象頭與敵交戰〉。聚眾攻掠郡縣。胤平之。〈《交趾志》:九真山中有趙妹女子,乳長三尺,不嫁。結黨剽掠郡縣。常著金褐齒,徙聚象頭。鬪戰死,面為神。〉
--《대월사기전서》 <속오진송제양기>(屬吳晉宋齊梁紀) 中
젖가슴의 길이가 3척이라 등 뒤로 드러냈고[3] 시집가지 않았다. 항상 코끼리의 머리에 타면서 전투했고, 무리를 이끌어 여러 차례 동오의 군현을 공격해 점령했지만, 육윤의 군대에게 패배해 전사한 후에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조구가 죽자 교주 지역은 동오가 통치하게 되었다.
유흔기(劉欣期)의 《교주기》(交州記)에서 이르길, 조구라는 자는 구진군 안현의 여자다. 젖가슴의 길이가 3척이었으며, 시집가지 않았다. 산속으로 들어가 무리를 모아 도적질을 하다가, 이윽고는 군현을 공격하였다. 항상 금을 손에 두르고 다녔으며, 나막신을 신었다. 싸우거나 후퇴를 할 때 늘 휘장과 장막을 나누어주었다. 젊은 남자와 통정했으며, 수십명이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자사인 오군의 육윤이 그를 평정하였다.
劉欣期《交州記》曰:趙嫗者,九真軍安縣女子也。乳長數尺,不嫁,入山聚群盜,遂攻郡。常著金扌翕,踪屐,戰退輒張帷幕,與少男通,數十侍側。刺史吳郡陸胤平之。
--《태평어람》 권371 <인사부>(人事部)12 -유(乳)조- 中
중국측 기록에서도 등장하는데 《태평어람》에 인용된 《교주기》(交州記)라는 문헌에 언급된다. 참고로 《정사 삼국지》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4. 민간 전승[편집]
조구가 전술에 능해 동오군을 여러 차례 물리치자 육윤이 군인들을 시켜 결혼하지 않은 처녀였던 조구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라고 명령했으며, 조구가 이를 보고 부끄러워 당황하자 육윤이 군인들에게 공격을 시켜 조구의 군대는 격파당하고 조구는 타인호아 성으로 피신했다가 자결했다고 한다.[4]
베트남 한인 교민 잡지 《신짜오 베트남》에 조구에 대한 민간 전승이 한국어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아버지인 찌에우(조)족 족장은 조국달, 조씨정 남매에게 무술과 학문을 배우게 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은 후 족장직을 이은 오빠 조국달이 조씨정을 어머니의 고향 뚱산으로 보내 항거 준비를 시켰는데, 뚱산에서 조씨정은 흰 코끼리를 복종시켰다. 남매가 거병했으나 오빠 조국달이 동오 구진군 복병의 독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조씨정은 오빠의 원수인 구진군 태수의 본부를 함락시킨 후 그의 목을 베어 복수했다. 조씨정이 교주를 함락하자 동오에서 파견된 육윤은 벌거벗는 전술로 조씨정을 당황시켜 전세를 역전시켰고, 조씨정은 뚱산 꼭대기로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 후 검으로 자결했는데 향년 22세에 불과했다. 조씨정이 자결한 후 그녀가 타고 다니던 흰 코끼리는 한참 울다가 행방불명 되었고,[5] 그녀의 휘하 군인들이 뚱산에 조씨정의 사당을 세워 현재까지 매년 성대한 제사가 치러지고 있다.
5. 기타[편집]
베트남에서는 오래 전부터 영웅으로 받들어졌다. 그녀를 중국인으로 볼 것인가 베트남인으로 볼 것인가는 좀 미묘한데, 한족인 것은 확실하나 이 시점에서 베트남에 살던 한족들은 중원에서 떨어진 지 오래된 후라서 한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해지고, 베트남인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6] 또한 중국에서는 그녀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듣보 수준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여성 영웅으로 오래 전부터 받들어진 것으로 보아 베트남인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6. 미디어 믹스[편집]
자세한 내용은 조구/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