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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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육군학생군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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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external/flagspot.net/kr%5Em2.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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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동수 ||<width=20%> 2대
김연각 ||<width=20%> 3대
이승남 ||<width=20%> 4대
고용복 ||<width=20%> 5대
김봉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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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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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천 || 25대
박원수 ||
|| 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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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신 || 28대
이종화 || 29대
정재학 || ||
||<-5><bgcolor=#1A00C1> ※ 초대~현임 : 소장 ||
||<-5><bgcolor=#1A00C1> ※관련 직위 둘러보기 ||




정재학
Jeong Jae-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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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86년 ~2021년
임관
학군사관 (24기)[1]
최종 계급
소장
최종 보직
육군학생군사학교장
주요 보직
대한민국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
제50보병사단
제13공수특전여단
제21보병사단 제63연대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논란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군인. 최종 계급 육군 소장이며 육군학생군사학교 학교장직을 맡았다.


2. 생애[편집]


경상북도 예천군 출신으로 우망초등학교(27회), 풍양중학교(25회), 풍양고등학교(4회)를 졸업하고 1986년 계명대학교 통계학과(82학번) 졸업과 함께 학군사관 24기로 임관했다.

영관시절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 제32보병사단 참모장, 제21보병사단 63연대장, 제8군단 작전참모을 역임했다. 준장 진급 후에는 제13공수특전여단장과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했으며, 소장으로 진급 후 제50보병사단장, 대한민국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을 역임했다. 육군학생군사학교장직을 수행하였다. 2021년 10월 27일부로 예편하였다. 최종계급은 소장.


3. 여담[편집]


  • 특전사 참모장 재직시 44년만에 특전사 서울 시대를 마감하고 경기도 이천에 새 둥지를 트는 사업을 주도하였다.

  • 50사단장 재임시 다양한 계층의 부하들과 수시로 작전지역 주요 고지, 전적지 등을 답사하였고 하회마을, 병산서원 체험 하였다.

  • 육군학생군사학교장으로서 ROTC 등 육군 초급장교의 93%를 교육하여 야전에서 즉각 임무수행이 가능한 정예 초급장교를 배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2]

  • 정재학 장군 부임 후 교육체계 변화는 상당히 강도 높은 편이다. 일단 교관 및 교육반 편성이 훨씬 세부적이 됐다.[3][4][5]


4. 논란[편집]


  • 2018년 10월, 50사단장 재임 중 회관 조리병에게 갑질을 하는 바람에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나서는 육군 장성들 사이에서는 한직으로 인식되는 육군본부 동원참모부장으로 좌천되었다.[6] 출처는 여기에 있다.
  • 제13공수특전여단장 재임 당시 포로훈련 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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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명대학교[2] 우선적으로 우수자원 획득을 위한 고교생, 학부모 등 홍보 대상을 확대하고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동영상 홍보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실습·체험 등을 통하여 야전에서 실제 임무수행에 꼭 필요한 과제를 교육훈련에 반영하고, 효율적이고 성과있는 교육이 진행되도록 교육지원체계를 개선하고 있다.또한 학교에 근무하는 교관, 훈육관 등 계층별로 '답을 내는 조직' 독서토론회를 통하여 끝장정신 발휘 등 근무자세의 변화를 추구하였고, 제 35주년 창설기념일 체육대회에서는 이등병부터 대령까지 단축마라톤을 실시하고, 25km 계주는 팀별 장교, 부사관, 군무원 등 전간부 50명이 개인별 500m 트랙을 이어 달리도록 하여 부대를 화합·단결시키고,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체육대회의 열정을 사관후보생 교육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3] 각종 교육이 굉장히 강도 높게 바뀌었다. 전술과목의 경우 조별 교안을 작성하는데 여기에 교관이 계속 돌아다니며 잘못된 내용을 피드백하고 작성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후보생에게 가점을 주는 형태가 됐다. 여기에 구술 또는 서식 형태의 개별 평가가 들어가며 평가 방식은 야전에서 요구하는 신임 장교의 능력을 피드백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수준을 도달할 때 까지 교육훈련에 매진하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은 물론 여기에 더해 학군 역시 최초로 보병학교 유격교육과 특전 공수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4] 교육의 강도가 높아진만큼 휴식 역시 잘 보장되게 됐다. 매일 19~21시까지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고 일과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체의 터치가 없으며 주말의 경우 조식 후~21시까지 폰 사용이 가능하다. PX는 평일에도 이용가능하게 하고, 교육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교장이동을 버스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5] 사실 이건 전남대학교 학군 출신인 권혁신 장군의 관록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권혁신 장군이 자신의 학군사관후보생 후배들을 많이 배려해주었다는 점으로 인하여 권혁신 장군 임기 중에 훈련을 받은 학군후보생들은 권혁신 장군을 존경한다.[6] 직능이 동원인 장군이 역임하는 보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