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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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수익(鄭秀益)
생몰
1867년 4월 16일 ~ ?
출생지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수익은 1867년 4월 16일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12일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 정국태(鄭國泰)의 집에서 천도교 전교사 김명수(金明洙)로부터 갑산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제안받자 적극 찬성했다. 이후 그는 정국태, 김명수, 정수웅과 함께 협의 끝에 거사일을 월 15일로 정했다. 그는 곧바로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15일에 갑산 교구당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을 호소하였다.

약속한 15일이 되자, 교구당에는 거사 시간도 되기 전 이미 200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오후 2시경 정수익은 회인면 후지리 천도교 교구에서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며,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정수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