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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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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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京植
1937년 3월 21일 ~ (86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 본관은 동래(東萊).

2. 생애[편집]


1937년 3월 21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1]#에서 태어났다. 1957년 경북고등학교(38회)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61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검찰 공안계통에서 요직을 거쳤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 전후 국가보안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다만 특수부 검사로도 활동했는데, 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같은 보직도 거쳤다.

1987년 6월에 지검장급으로 승진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냈고, 1989년 3월에 청주지검장으로 전보, 1991년 4월에 대구지검장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1992년 7월에 부산지검장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 지역감정 조장과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승진이 유력했던 1993년 3월 인사에서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좌천되었다가 그때의 공로 덕분인지 김영삼 정권 때인 1993년 9월에 대구고검장의 직위에 올랐다.

대구고검장을 하던 도중 1994년 9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지명되었다. 지명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과거 헌법을 유린하는데 적극 참여하고 인권을 억압한 반개혁적 인사'라는 이유로 지명반대의견을 표시했다. 그래도 무사히 재판관으로 취임했으며, 6년의 재판관 임기를 마친 후 2000년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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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래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윤희·정태희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