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 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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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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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浙江 徐氏
절강 서씨

관향
중국 저장성
시조
서해룡(徐海龍)
중시조
서학(徐鶴)
집성촌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2리(대명리)
인구
758명(2015년)

1. 개요
2. 집성촌
3. 인물



1. 개요[편집]


중국 동남부 해안에 있는 저장성(절강)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귀화 성씨이다. 시조는 중국 명나라 저장성(절강) 출신인 서해룡(徐海龍)이며, 중시조는 서해룡의 증손자인 서학(徐鶴)이다. 서학은 명나라군 무관으로 유격파총(遊擊把摠)에 임명되어,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 조선에 지원군으로 파병되어 왜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전공을 세웠다. 서학은 1598년 정유재란 이후 명나라로 철군하지 않고 경상북도 성주군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렸다. 이후 후손들이 한국에서 약 400년 간 절강서씨(浙江徐氏)의 혈맥을 이어오고 있다.


2. 집성촌[편집]


서학이 정유재란 후 명나라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정착한 곳으로, 후세까지 이어서 살아온 절강 서씨의 집성촌이다. 현재는 절강 서씨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서학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시문용의 후세들도 본래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절강 시씨(浙江施氏)들이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맏질마을,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꽃질마을로 옮겨가면서 현재는 절강 서씨들만 거주하고 있다. 마을 명칭은 ‘대명(大明)마을’로 서학과 시문용이 고국 명나라를 생각하며 지었다.[1] 같은 시기에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대구광역시 중구에 정착하면서 지어진 대명동과 지명 유래가 같다.

이 마을 입구에는 1834년에 조선 사림들이 서학과 시문용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풍천재(風泉齋)’와 이듬해 1835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마을 뒤편 군성산에는 서학과 시문용 두 장수가 고국인 명나라의 중흥을 기원하며 북망사배(北望四拜)를 올린 장소인 ‘대명단(大明壇)’(1636년)이 있으며, 절강 서씨 중시조묘인 서학장군묘(徐鶴將軍墓)가 있다.


3. 인물[편집]


  • 서학(명나라)(徐鶴): 절강 서씨 중시조. 명나라 무관(武官) 유격파총(遊擊把摠) 역임.
  • 서헐세(徐歇世): 서학의 장남. 조선 종8품 문관(文官) 승사랑(承仕郞) 역임.
  • 서종길(徐宗吉): 서학의 손자. 조선 정3품 문관(文官) 통정대부(通政大夫) 역임.
  • 서의필(徐義必): 서겸세(徐士世)의 장남. 효행으로 명성을 떨침.
  • 서가행(徐嘉行): 조선 종3품 무관(武官)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역임.
  • 서응명(徐應明): 조선 종9품 문관(文官) 참봉(參奉) 역임.
  • 서반석: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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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국의 대(大)자, 명나라의 명(明)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