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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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의 배우. 중화권 3대 영화제[4] 의 여우주연상을 전부 수상한 최초의 배우이다.
2. 생애[편집]
영사산업기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3살 때부터 몰래 아버지가 일하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학교 성적이 나쁘지 않아 부모님은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바라셨지만 저우쉰은 일반 고등학교와 예술고등학교 2곳을 동시에 지원하였고 결국 절강예술학교를 선택, 민족무용과에 입학하게 된다. 달력 모델 활동으로 학비를 벌었다고 하는데 당시 달력 업계에서는 북쪽엔 취잉이 있고, 남쪽엔 저우쉰이 있다 라는 칭호가 있었다고.
1991년, 셰톄리 감독의 권유로 영화 《고묘황재》를 통해 데뷔했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이어가진 않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업을 끝마친 뒤 베이징으로 떠난다.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한다.[5] 그러다 달력 모델 시절 저우쉰을 눈여겨본 시에옌 감독으로 인하여 다시 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 후 천카이거 감독의 장국영, 공리 주연 영화 《풍월》에 출연하고 드라마 《대명궁사》로 금응상 수상, 영화 《헐리우드 홍콩》으로 첫 금마장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둥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저우쉰은 활동에 박차를 가하며 1998년에서 2003년까지 6년 남짓한 시간동안 10편의 영화가 개봉, 드라마는 14편의 작품을 촬영했다.
2005년 개봉한 진가신 감독의 영화 《퍼햅스 러브》에서 금성무와 호흡을 맞췄다. 저우쉰은 이 영화로 금마장, 금상장 등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석권한다. 이듬해 영화 《야연》으로 금상장에서 다시 한 번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데 이는 금상장 역사상 주연상 및 조연상을 받은 최초의 중국 본토 배우이다.
그리고 2009년, 제27회 금계장에서 영화 《사랑과 죽음의 방정식》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중화권 배우 최초의 삼금배우가[6] 되었다. 당시 중화권 3대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남자 배우가 없기 때문에[7] 남녀 불문 최초의 기록. 아직까지도 삼금영후의 명맥을 이어받는 배우는 장쯔이와 주동우 뿐이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중국 배우들 대부분이 중국 3대 연기학원[8] 출신인데 비해 비전공자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아주 드문 케이스다. 중국 내에서 저우쉰은 현재 활동하는 중화권 여성 배우 중 최고의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위상이다.
3. 필모그래피[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4. 여담[편집]
- 2014년 7월 16일 중국계 미국배우인 아치카오와 항저우에서 열렸던 자선 콘서트에서 결혼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2020년 6년 만에 이혼했다. 현재는 밴드 모자이크 기타리스트 卓越와 연애 중이다.
- 2017년, 절친 진곤과 함께 '동신미래'[15] 라는 소속사를 설립하여 운영중이며, 2020년에 서기를 동업자로 영입했다. 또한 제작사인 '동신영업'과 신인 배우들을 양성하는 '산하학당'도 운영 중이다. 2018년에 공개한 내부 사진.
-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
- 인형같은 외모와 달리 목소리가 꽤 허스키하다. 이 목소리를 불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인은 자신의 목소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샤넬 뮤즈로 발탁되었다.
- 중국 내에서의 높은 인기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그나마 금성무와 열연한 <퍼햅스 러브>와 2006년작 <야연>, 2008년 <화피> 등을 통하여 알려졌다. 그동안 홍콩과 대만 출신의 배우들 위주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대륙 출신 배우의 존재감을 쌓기 시작한 배우라 해도 좋다.
- 동갑내기 황보(배우)와 함께 바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황보 역시 타지에서 베이징으로 넘어와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을 이어나갔던 공통점이 있다. 당시 저우쉰이 황보에게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황보가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둘은 2019년 범죄물 영화 涉过愤怒的海에서 다시 만났는데 아직 영화는 개봉하지 못한 상태이다.
- 공항에서 파파라치들에게 도촬을 당할 때 오히려 본인이 먼저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브이 자를 지어서 포즈를 취해줄 때도 있는데, 이를 볼 때 상당히 대인배 기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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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는 홍콩과 어떠한 인연도 없는 중국 본토 태생에 본토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2009년경 홍콩 시민권을 신청해서 취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활동거점은 중국 본토이기 때문에 홍콩으로 이사가거나 집을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인이 밝혔다. 이렇게 홍콩 시민권을 굳이 신청한 이유는, 해외 영화제에 참석할 때 보다 더 편한 출입국심사를 고려해서 홍콩 여권을 가지기 위해 신청한 듯 하다. 같은 중국이어도 본토 중국 여권과 달리 홍콩 여권은 달리 발급되며, 수많은 나라에 무비자로 입국하는 것이 가능하다. 탕웨이와 비슷한 케이스.[2] 절친 천쿤과 함께 2017년에 설립한 회사. 2020년 7월부터 서기도 CEO로 합류했다.[3] 소속사에서 운영하는 계정. 저우쉰이 직접 운영하는 SNS는 없다.[4] 대만 금마장, 홍콩 금상장, 중국 금계장[5] 술 시중을 거부하다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다.[6] 중화권 3대 영화제 금마장, 금상장, 금계장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7] 남우주연상은 2023년 양조위가 '무명' 으로 금계장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최초의 삼금영제가 되었다[8] 베이징전영학원, 중앙희극학원, 상하이희극학원[9] 스톨른 라이프 시리즈[10] 1인 3역[11] 워낙 어리게 보이는 외모이지라 당시 30 가까이 되는 나이임에 불구하고 어색하지 않았다.[12] 공리의 데뷔작 영화 붉은 수수밭을 드라마화하여 리메이크한 작품. 옹정황제의 여인의 연출을 맡았던 정샤오룽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13] 마더 리메이크작[14] 37~42회 출연[15] 2021년 기준 소속된 배우는 CEO인 저우쉰, 천쿤, 서기 외에도 장정의, 이만선, 류창, 왕자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