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5세 다르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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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 5세 다르쿠르
Jean IV d'Harcourt
생몰년도
1320년 ~ 1356년 4월 5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사망지
프랑스 왕국 루앙
아버지
장 4세 다르쿠르
어머니
이자보 드 파르테네
형제자매
루이, 기욤, 알릭스, 잔
아내
블랑슈 도말레
자녀
장 6세, 자크 1세, 필리프, 잔
직위
아르쿠르 백작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가족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의 침공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카를로스 2세의 정파에 들어갔다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미움을 사 처형되었다.


2. 생애[편집]


초대 아르쿠르 백작 장 4세 다르쿠르와 비브라이와 본따블르의 여성 영주인 이자보 드 파르테네의 장남이다. 형제자매로 루이[1], 기욤[2], 알릭스[3], 잔[4]이 있었다. 한편, 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의 왕비인 브라반트의 마리의 조카이기도 했다.

1340년 오말레 백작 장 2세 도말레의 딸 블랑슈와 결혼하고 오말레 백작이 되었으며, 그랑빌의 수비대장으로 선임되었다. 1346년 아버지와 함께 크레시 전투에 참가했지만, 아버지는 전사했고 그는 중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건졌으며, 이후 2대 아르쿠르 백작에 선임되었다. 한편, 잉글랜드 편에서 크레시 전투에 참가했던 숙부 조프루아 다르쿠르는 형 장 4세가 전사한 걸 알게 되자 번뇌에 사로잡힌 끝에 잉글랜드 진영을 버리고 프랑스 진영에 귀순해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사면을 받았고, 루앙과 캉의 보안관에 선임되었다.

1350년 필리프 6세가 사망한 뒤 1332년부터 노르망디 공작을 맡고 있던 장 2세가 프랑스 국왕이 되었다. 노르망디 공국은 장 2세의 장남인 샤를 왕자에게 할당되었다. 하지만 장 5세는 나바라 왕국의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이며, 프랑스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카를로스 2세의 세력에 합류했다. 1356년 2월, 장 2세가 르 보드뢰유에서 노르만 귀족들을 소집한 뒤 잉글랜드와의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라고 요청하자, 그는 카를로스 2세를 따르는 다른 노르망디 영주들과 함께 거부했다.

이후 장 2세는 장 5세 다르쿠르와 카를로스 2세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했고, 장남 샤를과도 친분을 다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1356년 4월 5일, 샤를 왕자가 노르망디 영주들을 루앙에 초대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장 5세 다르쿠르도 이 연회에 참석해 카를로스 2세와 함께 샤를 왕자의 옆에 앉았다. 연회가 한창일 때, 장 2세가 투구를 쓰고 손에 검을 쥔 채 나타나 외쳤다.

"이 검에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그 직후, 장 2세의 동생 필리프 도를레앙과 차남 루이 1세를 비롯한 국왕을 따르는 인사들과 무사들이 연회장에 난입해 카를로스 2세와 그를 추종하던 인사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이때 장 2세는 카를로스 2세의 멱살을 잡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며 외쳤다.

"이 배신자! 너는 내 아들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없다!"


카를로스 2세의 종자 콜린 더블레(Colin Doublet)는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뽑았지만 왕실 근위대에 의해 즉시 체포되었다. 샤를 왕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불명예스럽게하지 말라고 간청했지만, 장 2세는 묵살하고 카를로스 2세와 장 5세 다르쿠르를 비롯한 세 명의 귀족, 그리고 콜린 더블레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날 저녁, 아르쿠르 백작과 다른 세 명의 사형수는 루앙 인근의 샹 뒤 파르동으로 끌려간 뒤 참수형에 처해졌고, 그들의 몸통은 루앙의 교수대에 내걸렸다.


3. 사후[편집]


카를로스 2세를 추종하던 장 5세 다르쿠르를 비롯한 인사들이 대거 처형된 사건은 노르망디 전역에 심대한 충격을 안겼다. 숙부 조프루아 다르쿠르는 조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카를로스 2세 추종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를 노르망디 공작으로 추대했다. 에드워드 3세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전쟁을 재개했고, 그 결과 푸아티에 전투에서 장남인 흑태자 에드워드푸아티에 전투에서 장 2세를 사로잡는 성과를 거두었따. 그러나 장 2세의 추종자들에게 쫓기던 조프루아는 1356년 11월 노르망디 베이 만의 생클레르몽에서 전사했다.

1357년 12월 3일, 잉글랜드로 끌려간 장 2세를 대신해 왕국을 다스리던 샤를 왕자는 장 5세 다르쿠르와 다른 세 희생자를 사면했다. 또한 1358년 1월 11일에 루앙에서 카를로스 2세가 그를 비롯한 4명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후 1359년 10월에 장 5세 다르쿠르의 장남인 장 6세 다르쿠르와 자신의 처제인 카트린 드 부르봉의 결혼을 주선해, 아르쿠르 가문과 완전히 화해했다.


4. 가족[편집]


  • 블랑슈 도말레(1322 ~ 1387): 오말레 백작 장 2세 도말레의 딸.
    • 장 6세 다르쿠르(1342 ~ 1389): 아르쿠르 및 오말레 백작. 1360년 브레티니 평화 협약 때 잉글랜드에 인질로 넘겨졌다가 4년 후 귀환했고, 1375년 플란데런 반란 진압에 투입되어 루즈베케 전투와 부르부르 공방전에 참여했다.
    • 자크 1세 다르쿠르(1350 ~ 1405): 몽고메리와 노이엘 남작,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고문이자 시종.
    • 필리프 다르쿠르(1354 ~ 1426): 본따블르 자작, 샤를 6세의 시종.
    • 잔 다르쿠르(1356 ~ 1413년 이후): 엥크레, 몽미레일, 라페르테고쉐, 오르노이, 바이을, 아랭쿠르의 영주인 라울 3세 드 쿠시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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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1388, 샤텔로 자작, 아르쇼트 영주[2] ? ~ 1400, 기사, 라 파르테 앵볼과 리비니의 영주[3] ? ~ ?, 퐁생피에르 남작이자 왕의 시종인 오베르 드 앙게스트의 부인.[4] ? ~ ?,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