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3세 드 뷔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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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 3세 드 뷔에이
Jean III de Bueil
생몰년도
1340년 ~ 1405년 11월 6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뷔에이
사망지
프랑스 왕국 뷔에이
아버지
장 2세 드 뷔에이
어머니
잔 다부아르
아내
이자벨 드 라 로슈
자녀
피에르, 장 4세, 잔, 마리, 카트린
직위
뷔에이 영주, 보케르의 세네샬, 툴루즈의 세네샬
1. 개요
2. 생애
3. 가족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맞섰다.


2. 생애[편집]


1340년경 프랑스 왕국 뷔에이에서 뷔에이 영주 장 2세 드 뷔에이와 잔 다부아르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1366년경 아버지를 계승했고, 1369년 5월 말 뤼지냥 성에서 사이먼 벌리의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고 사이먼을 생포했다. 또한 12월 말에는 루이 드 상세르의 지휘하에 존 헤이스팅스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을 푸이레논에서 격파했다. 1370년 잉글랜드군이 포위한 소뮈르 마을을 구원하기 위해 600명을 이끌고 달려왔고, 루이 드 상세르의 형제인 로베르와 함께 잉글랜드군을 교외 지역으로 밀어냈다. 다만 레 퐁드세와 생모르 쉬르 루아르 수도원을 상실했다.

1373년 8월, 곤트의 존의 슈보시를 감행한 잉글랜드군에 맞서기 위해 랑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해 9월 21일 수아송의 울시르샤토에서 월터 휴이트가 이끄는 잉글랜드 분견대를 격파하고 휴이트를 사살했다. 1377년 8월 22일, 라 라울에 있던 그는 베르주라크 성벽을 공격하고 있던 앙주 공작 루이 1세로부터 공성 무기를 가져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에 따라 이동했다. 그러던 중 에메 성 앞에 위치한 드롭트 강 돌다리를 건너려던 그는 보르도의 의원 토머스 펠튼이 7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근방에 매복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800명의 병사를 이끌고 9월 1일에 숨어있던 적군을 급습했다. 그 결과 많은 잉글랜드인과 가스코뉴인이 도주하다가 드롭트 강에 바져 익사했고, 펠튼은 가스코뉴의 여러 영주와 함께 생포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나, 뷔에이 가문 족보에 따르면 1405년 11월 6일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3. 가족[편집]


  • 이자벨 드 라 로슈: 기사 필리프 드 라 로슈의 딸.
    • 피에르 드 뷔에이(? ~ 1380년에서 1383년 사이): 기사.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
    • 장 4세 드 뷔에이(? ~ 1415): 뷔에이 영주.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
    • 잔 드 뷔에이: 라일부샤드, 두에, 로슈포르, 장세이의 영주 장의 부인.
    • 마리 드 뷔에이: 파사방, 말리에브르, 모르트랑의 영주 베르트랑 드 라 하에의 부인.
    • 카트린 드 뷔에이: 빌렌느의 영주이자 이베토 왕자인 피에르 4세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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